로하니 이란 대통령,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 ⓒphoto IRNA
로하니 이란 대통령,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 ⓒphoto IRNA

중앙아시아의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라고 불린다. 페르시아어인 ‘아자르’는 불을, 아랍어인 ‘바이잔’은 나라를 뜻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인구 940만명,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40%인 8만6600㎢로 고대부터 땅속에서 천연가스가 분출되면서 불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배화교)가 성행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한 프로메테우스가 붙잡혀 사슬에 묶인 채로 벌을 받던 캅카스산이 있는 곳도 아제르바이잔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카스피해에선 기원전 7∼6세기부터 석유가 생산됐다고 한다. 확인된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70억배럴과 1조1700만㎥에 달한다. 중동 지역보다 먼저 석유가 개발된 덕분에 옛 소련 시절 가장 각광을 받기도 했다. 20세기 초까지도 우물을 찾아 땅을 파 보면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특히 바쿠 유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석유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소련이 스탈린그라드(러시아 볼가강 하류에 있는 도시로 현재는 볼고그라드라고 불림)에서 대격전을 벌인 것도 바로 바쿠 유전 때문이었다. 스탈린그라드는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는 지금도 중요한 에너지 라인 2개의 시발점이다. 아제르바이잔~조지아~터키를 잇는 BTC 라인은 바쿠에서 조지아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 세이한을 잇는 총연장 1768㎞의 송유관이다. BTE 라인은 사베니즈 가스전에서 생산한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으로, 바쿠에서 조지아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 에르주룸까지 연결돼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또 알루미늄과 철광석 등 광물 자원도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다.

제정 러시아와 옛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때문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국제법적으론 아제르바이잔 영토지만 아르메니아가 사실상 실효지배하고 있다. 캅카스(영어로는 코카서스) 지역을 차지한 옛 소련은 1924년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자치권을 부여했다. 문제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주민 중 80%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 출신이라는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인은 터키계 언어를 사용하는 이슬람 수니파 무슬림이고 아르메니아인은 아르메니아정교를 믿는 기독교도다. 이 때문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그동안 크고 작은 민족 분쟁이 발생해왔다.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의 화해

소련 붕괴 직전인 1988년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아제르바이잔과의 분리와 아르메니아와의 통합을 선언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저지하면서 내전이 벌어졌다. 1994년 휴전될 때까지 이 지역에서 3만명이 죽고 100만명이 피란했다. 이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을 설립하고 독립을 선언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은 물론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을 자국 땅이라고 간주해왔다. 지난 4월에도 이 지역에선 양측의 무력 충돌로 110명이 숨지는 등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아르메니아의 입장을 지지해오던 러시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사태에 중립을 선언하면서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전략 변화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과감한 결정에 따른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선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의 강력한 제재조치를 벗어나려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푸틴 대통령이 구상한 전략은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을 잇는 유라시아 대륙의 남북을 관통하는 수송 회랑(回廊)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른바 남북수송로(NSTC·North South Transportation Corridor)이다. 남북수송로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지나 러시아 남부의 캅카스산맥을 넘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를 거쳐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항까지 연결된다. 남북수송로는 또 바다를 건너 인도의 뭄바이까지 도달할 수 있다. 무려 7200㎞에 달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8월 8일 바쿠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등을 만나 남북수송로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제의했다. 로하니 대통령과 알리예프 대통령이 이 제안에 동의하면서 남북수송로 건설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남북수송로가 완공되면 러시아는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중동과 서남아 지역에 각종 물품을 수송할 수 있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뭄바이까지 상품을 수송하려면 40일이 소요되는데 남북수송로를 이용할 경우 14일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송 규모도 현재 연평균 730만t에서 1000만t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도 북유럽과 동유럽 지역에 각종 상품을 보내기가 수월해진다. 양국 모두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유럽과 아시아 간 물동량을 소화하는 ‘수송 허브’가 될 수 있다. 막심 소콜로프 러시아 교통부 장관은 “이 철길이 완성되면 수에즈운하의 물동량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스피해에 설치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플랫폼. ⓒphoto 위키피디아
카스피해에 설치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플랫폼. ⓒphoto 위키피디아

덩치 커지는 유라시아경제연합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 3국은 이미 남북수송로 건설을 위한 재원 마련과 구체적인 철도 연결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현재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을 연결했던 철도 중 끊어진 부분을 양국 국경지대까지 연장하는 데 드는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제르바이잔 국제은행이 이란에 철도 연장에 필요한 총비용 11억달러(1조2000억원) 중 5억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남북수송로 건설 공사는 이르면 내년 말에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제르바이잔의 아스타라와 이란의 라슈트를 연결하는 172㎞의 구간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구간을 연결하고 나머지 구간의 철도와 터널 및 다리 등을 보강하는 공사만 마무리하면 남북수송로는 개통될 수 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남북수송로는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철로 연결 준비에 이미 착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또 남북수송로 프로젝트를 통해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을 자국이 적극 추진해온 유라시아경제연합(EEU·Eurasian Economic Union)에 가입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EEU는 러시아가 지난해 1월 옛 소련권 국가들과 상품·자본·인력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출범시킨 지역 경제협력체이다.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 등 5개국이 회원국이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옛 소련의 부활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EEU 출범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아제르바이잔을 가입시키려면 무엇보다 아르메니아의 반대가 없어야 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화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과 카스피해를 공동 개발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카스피해의 석유 매장량은 최대 2000억배럴, 천연가스 매장량은 16조∼19조㎥로 추정된다.

러시아는 또 이란을 EEU에 가입시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은 올해 초부터 이란산 농산물과 러시아산 건자재 등을 교환하는 형태의 무역 협상을 진행해왔다. 특히 러시아는 이란의 원자력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 남부 부셰르 원전에 원자로 4기를 신설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 계약은 이미 체결했으며, 앞으로 최대 8기까지 건설할 것이 기대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에 핵 장비와 기술 수출 금지 조치를 완화한 바 있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이 세계 4위이며 천연가스 매장량은 2위를 자랑한다.

이란도 남북수송로 건설 합의를 계기로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8월 16일 러시아 전폭기들이 자국 남서부에 있는 하마단 공군기지를 이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란이 외국 군대에 자국 군사기지를 이용하도록 허용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는 친미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주둔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러시아의 장거리 폭격기 투폴레프(Tu)-22M3과 전술 폭격기 수호이(Su)-34는 이란의 하마단 공군기지를 이용해 시리아 북부 알레포와 데이르 에조르, 이들리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슬람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공습하고 있다. Tu-22M3가 북오세티야 모즈독 기지에서 출격하면 비행거리는 3000㎞, 실을 수 있는 폭탄의 중량은 5~8t밖에 되지 않았다. 이란의 하마단 공군기지에서 이 폭격기가 출격하면 시리아까지는 700~900㎞만 비행하면 되고, 폭탄도 최대 22t까지 탑재할 수 있다. 러시아는 앞으로 시리아에서 공습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가 이란 공군기지를 이용해 시리아 공습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중동 진출에 획기적 교두보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란을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이란을 사실상 ‘동맹국’으로 대우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이란에 항만 확충 등 35개 인프라 건설 사업에 5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4월 이란과 서방 간 핵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사일 방어시스템 S-300의 판매를 재승인하는 등 이란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해왔다. 러시아는 2007년 이란과 S-300 판매 계약을 맺었지만 2010년 유엔 제재 조치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었다.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협력은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와 함께 시리아에 대한 공동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서방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도 지금까지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를 시리아에 파견하는 등 시아파 분파 중 하나인 알라위파 출신의 아사드 정권을 측면 지원해왔다.

남북수송로 건설 프로젝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나라는 인도다. 인도는 잠재적 적국인 파키스탄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에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인도는 이른바 ‘중앙아시아 연결정책(Connecting Central Asia Policy)’을 추진해왔다. 이 정책은 인도~이란~중앙아시아~러시아~유럽을 잇는 남북 수송로를 구축하는 사업을 말한다.

인도는 지난해 5월 이란과 남북수송로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인도는 이를 위해 이란 남동부 차바하르항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에서 서쪽으로 72㎞ 떨어진 차바하르항은 호르무즈해협 입구에 있으며, 인도가 이란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이다. 인도는 차바하르항 개발을 위해 5억달러를 투자해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과 다목적 화물터미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5월 인도 총리로는 15년 만에 테헤란을 방문해 로하니 대통령과 만나 차바하르항 개발 사업에 합의했다. 인도는 이란으로부터 10년간 차바하르항 운영권을 확보해 중앙아시아 진출의 통로로 삼을 계획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의 남북수송로가 앞으로 차바하르항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이란도 폭이 좁아 병목현상을 보이고 있는 호르무즈해협에 위치한 반다르 압바스항 대신 차바하르항을 새로운 무역 거점으로 삼을 것을 고려하고 있다. 차바하르항은 인도양과 직접 연결되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인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EEU와의 협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6월 EEU와 FTA 추진에 합의한 바 있다. 러시아는 인도와 EEU 간 FTA는 물론,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호의적인 이유는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실크로드경제지대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앙아시아~유럽 수송로를 담당해온 만큼 러시아는 실크로드경제지대가 만들어지면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남북수송로를 만들려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는 앞으로 세계의 패권을 둘러싼 싸움이 전개되는 체스판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중앙아시아의 천연자원과 수송 경로 확보를 차지하기 위해 21세기판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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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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