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photo 조선일보 DB
항저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9월 4일과 5일 항저우(杭州)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G20 정상회의는 기원전 206년 지금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열린 ‘홍문(鴻門)의 파티’를 생각나게 했다. ‘홍문연(鴻門宴)’의 주재자는 산이라도 뽑을 것 같던 ‘역발산(力拔山)의 기개세(氣槪世)’를 과시하던 항우(項羽)였다. 이 파티에 초대된 손님은 항우의 최대 경쟁자 유방(劉邦)이었다. 이 파티의 기획자는 항우의 브레인 범증(范增)이었다. “유방을 초청해서 파티를 하는 도중에 기회를 봐서 목을 베어버리자”는 것이었다.

파티가 시작되고 얼마 안 가 범증은 항장(項庄)을 들여보내 칼춤을 추게 한다. 칼춤을 추다가 기회가 오면 유방의 목을 베어버리라는 주문을 해놓고 있었다. 사태가 위험해지자 유방의 책사(策士) 장량(張良)은 무장 번쾌(樊噲)를 들여보낸다. 번쾌가 들어가 보니 항우의 삼촌 항백(項伯)이 항장과 함께 칼춤을 추고 있었다. 항장의 계획을 모르는 항백은 항장이 유방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항장의 칼끝이 유비에게 닿지 않도록 보호하는 행동을 취했다. 파티장의 유방을 구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 번쾌는 춤판 옆에 서서 항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을 부라리며 관찰하고 있었다. 항우는 그런 번쾌를 보고 훌륭한 장숫감이라고 칭찬하며 한 잔의 술을 상으로 내린다.

항우의 진영이 방만하게 돌아가는 틈을 타 유방은 슬그머니 빠져나가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 자신의 군영(軍營)으로 도망을 가버린다. 그로부터 4년, 항우는 실력을 키운 유방의 군대에 패해 오강(烏江)에서 자결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유방은 승리자가 되어 한(漢) 왕조의 창시자가 된다. 70세가 넘은 범증이 유방을 제거할 기회를 잃었고, 유방의 책사 장량이 홍문연에서 유방을 제거하려는 범증의 그런 생각을 이미 간파하고 대비책을 세운 덕분이었다.

중국 측은 사드(THAAD)를 한국에 배치하려는 미국에 대해 홍문연의 고사를 인용해서 비난해왔다. 중국 자신이 유방이고, 유방을 홍문연에 초청해서 목을 베려는 미국을 항우와 범증에 비유하면서, 그리고 칼춤을 추려는 항장을 한국에 비유하면서 “우리가 그런 미국과 한국의 간계에 놀아날 줄 아느냐”면서 사드의 한국 배치를 맹렬히 반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항저우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를 시후(西湖) 국빈관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맞이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홍문연을 주재한 항우의 기세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 측은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붉은 카펫을 깔아주지 않는가 하면, 맬컴 턴불 호주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는 호주 정부가 지난 4월 중국 측의 대규모 호주 목장기업 인수에 제동을 건 데 대해 불편한 속내를 그대로 털어놓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미국 수행원들과 충돌한 중국 외교부 관리들은 “여기는 중국이니까 중국의 법을 지켜라”고 소리치며 고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국이 차지하는 경제볼륨으로 보아도 아직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미국이나 유럽 전체의 GDP 규모에도 뒤져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이번 항저우 G20에서 너무 속을 내비치고 말았다. 중국 관영 미디어들은 중국이 이번 항저우 G20 회의를 계기로 경제적으로 전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중국 작용(역할)’을 보여주게 될 것이며, 앞으로 세계사의 흐름은 이번 항저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까지 오버하는 표현을 많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항우는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홍문연에서 스스로 왕을 자처하며 천하를 제패한 듯이 속을 내비치고도 유방을 제거하지 못하는 바람에 불과 4년 만에 스스로 자결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 홍문연 고사를 이번에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시진핑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듯했다면 과장일까.

아마도 이번 항저우 G20 회의에 참석한 세계 20강 국가원수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중국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갖고 항저우를 떠나 귀국했을 것이다. 이번에 국가원수들은 개별회담이 개최된 시후 국빈관 내 도로를 보안이라는 이유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길 양옆이 손을 흔드는 시민들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그로테스크하게 텅 비어 있는 광경을 봤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현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지지도를 걱정했을 것이다. 고압적 자세로 “사드 한국 배치 반대”를 거론하는 시진핑 주석에게 위압감을 느꼈는지 “별로 넓지 않은 저의 이 어깨에 한국 5000만 국민들의 안위가 걸려 있다”고 감성적으로, 비외교적으로 호소한 박근혜 대통령도 속으로 중국 체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 것이다.

홍문연에서 항우의 범증에 패배를 안겨준 유방의 책사 장량은 원래 전국시대 한(韓)나라 사람이었다. 부모형제를 진왕(秦王) 정(政)에게 잃은 장량은 진왕 정을 살해하기 위해 그가 다니는 협곡의 산 위에서 바윗돌을 굴러 내리게 하는 등 여러 차례 살해 기도를 했다가 서쪽으로 달아나 숨어 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숨어 사는 동안 열심히 병법(兵法)을 연구해서 마침내 유방의 책사가 되기에 이르렀고, 나중에 항우가 오강에서 자살하게 만듦으로써 부모의 복수를 한 사람이기도 하다.

진왕 정이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동진(東進)하면서 연초제조위한(燕楚濟趙魏韓)을 하나씩 무너뜨리자 이에 맞서서 종(縱)이나 횡(橫)으로 인접한 나라들끼리 동맹을 맺고 힘을 합해서 진에 맞서자는 것이 합종책이요, 연횡책이다. 어떨까. 우리의 국방 주권을 무시한 채 “한국 내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고 있는 중국에 대해 우리나라는 중국 동해 연안의 일본,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과 종으로 연결해서 중국에 맞서는 합종책을 구사해보면 어떨까. 특히 최근에 뽑힌 대만 민진당의 여성 총통과도 잘 교류한다면 훌륭한 합종책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중국 남쪽의 인도와도 교류를 확대하면 중국에 대한 훌륭한 견제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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