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주말의 해당기사, ‘조선: 6조위안 보물창고, 가시를 가진 장미’.
남방주말의 해당기사, ‘조선: 6조위안 보물창고, 가시를 가진 장미’.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10일 조선노동당 70주년을 기념하는 무장 퍼레이드 행렬이 김일성광장을 통과할 때, 김정은 옆에 서서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던 류윈산(劉云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앞을 통과하던 북한의 미사일 행렬에서 미사일을 탑재한 대형 트럭의 바퀴가 북한제가 아니라 중국제임을. 현재의 북한 타이어산업 형편상 북한의 장단거리 미사일을 탑재할 트럭의 대형 바퀴가 북한제일 가능성은 낮다. 류윈산은 그 바퀴가 북한제가 아니라 중국과 오스트리아 슈타이어(Steyr·斯太爾)의 합작 중장비 회사가 생산한 대형 타이어임을 알았을 것이다.

2010년 조선노동당 65주년을 기념하는 무장 퍼레이드가 김일성광장을 통과할 때는 당시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뤄간(羅干)이 김정일 바로 옆에 서서 손을 흔들고 박수를 쳤다. 지난해의 류윈산이 공산당 이론과 선전 책임자라면, 뤄간은 중국 공안조직의 총책임자였다. 그런 뤄간은 류윈산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앞을 통과하는 미사일 행렬이 도대체 어느 나라 제품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사일은 놔두고라도 북한의 공업 수준으로는 엄두도 못 낼 대형 트럭들이 미사일을 탑재하고 통과하는 것을 보고 중국이 일찍이 중장비 생산부문을 잘 육성해온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9월 20일 중국 외교부 루캉(陸慷) 대변인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중국과 미국이 협력해서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준 중국의 기업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데, 그중의 한 기업이 훙샹업발전공사라고 확인해줄 수 있겠느냐?”

루캉 대변인의 대답은 뜻밖에도 “당신이 말한 그 기업은 현재 중국의 관련 부문이 경제범죄 등 위법행위에 대해 법에 따라 처리 중이며, 가까운 시일 내에 관련 소식을 발표하겠다”는 것이었다. 루캉은 그런 놀라운 고백을 하기 전에 “우리 중국이 조선(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한 것이다.… 중국은 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으며, 안보리 결의안 2270호를 집행하기 위한 국제적인 의무를 이행해왔으며, 지금 그 결과를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으로서는 미국 측으로부터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주는 기업의 하나”로 ‘랴오닝 훙샹실업집단(그룹)’이라는 이름을 적시당한 터라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당국이 중국 측에 랴오닝성 단둥(丹東)에 있는 훙샹실업을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준 상황을 파악한 후 통보해서 알려준 내용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중국 전문가임을 자처해온 필자를 포함해서 우리 정부와 정보수집 기관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훙샹실업이라는 기업명과 여사장인 마샤오훙(馬曉紅)의 이름을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에 넣었더니, 중국에서 유일하게 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뉴스를 싣는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발행하는 남방주말(南方週末)이 2012년 10월 18일에 게재한 기사가 하나 떴다. 우리에게 엄청난 뉴스를 담고 있는 장문의 기사가 검색되어 올라왔다.

2012년 10월 18일이면 시진핑(習近平) 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권력을 장악하기 한 달 전쯤의 시점이다. 제목은 ‘조선: 6조위안 보물창고, 가시를 가진 장미’. 우리 돈으로 990조원에 해당하는 200여종의 광물을 지하에 매장하고 있는 북한이 중국 기업들을 끌어들여 자신들이 채굴하지 못하는 광물을 중국에 팔고, 식량을 비롯한 필요한 것들을 수입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을 끌어들이기로 했다는 기사였다. 또 그런 결정이 당시에 막 권좌에 오른 김정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도 명시했다.

남방주말의 기사에 따르면 그런 김정은의 결정에 따라 2012년 9월 22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 한복판의 국제호텔에서 북한의 광산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해외투자연합회(약칭 中海投)’가 설립행사를 가졌고, 거기에 많은 중국 기업들이 와서 이름을 올렸다. 놀라운 것은 이미 4년이나 지난 남방주말의 그 기사에 ‘단둥의 여자 부호 마샤오훙과 훙샹경제무역공사’의 이름이 적시돼 있고, 마샤오훙과 훙샹실업이 무슨 일을 했는지가 밝혀져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조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석유, 천연가스, 중유, 그리고 밀가루와 국수, 옥수수 등이었다. 중국 상인들은 조선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구해 변경으로 달려왔으며, 조선의 광산 원재료와 교역하기를 희망했다. 그 가운데에는 단둥의 여자 부호 훙샹실업공사 사장 마샤오훙도 있었으며, 마샤오훙은 조선에 중유를 공급해주고 조선의 폐광 하나를 인수했다. 마샤오훙은 1997년 조선당국이 폐광 수출을 중단한 이후 평양에 광산개발회사를 설립해서 북한 광물들을 수입해왔다. 마샤오훙은 조선당국에 그 대가로 슈타이어 대형 트럭 80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마샤오훙이 북한에 제공한 대형 중장비 트럭들이 어떻게 활용됐는지, 대형 타이어 제작은 엄두도 못 내는 북한이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멋진 대형 타이어를 장착한 미사일 탑재 장비들을 확보하게 됐는지는 이제 더 이상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됐다. 남방주말의 2012년 10월 폭로 기사는 마샤오훙의 훙샹실업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중국 기업들이 “북한의 광산과 광물 확보를 위해 조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했다”고 공개했다. 통화(通化)강철집단책임유한공사, 탕산(唐山)강철집단책임유한공사, 산둥(山東)궈다(國大)황금주식유한공사, 완샹(萬向)집단, 허베이(河北) 치허(漆河)실업집단, 중국오광(五鑛)집단, 친황다오(秦皇島)스린바오(市林寶) 광산개발유한공사. 이들 중국 기업들이 북한의 광산 확보를 위해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다고 남방주말은 폭로했다.

중국 전문가를 자처해오던 필자는 그동안 도대체 중국과 북한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던가. 필자를 포함한 한국의 중국 전문 학자와 정부 정보기관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대부분 중국 정부의 묵인과 지원 아래 이루어져온 데 대해 왜 증거나 리스트를 제시하지 못했을까. 미국 정부가 중국 측에 리스트를 제시하고서야 뒤늦게 흥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를 보면서 한마디로 부끄러움(自愧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슬퍼진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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