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photo 뉴시스 /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사민당 대표 photo 뉴시스 /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왼쪽부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photo 뉴시스 /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사민당 대표 photo 뉴시스 /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프랑스 사회당 정부에서 ‘친(親)시장’ 개혁을 추진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은 지난 4월 좌·우파를 아우르는 정치운동인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를 출범시켰다. 현직 장관으로서 앙 마르슈라는 정치운동을 시작한 것도 더 이상 좌파로는 프랑스를 바꿀 수 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앙 마르슈에는 무려 5만50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마크롱 전 장관은 파리 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후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를 거쳐 2012년 대통령실 부실장을 맡았고 2014년부터 지난 8월 말까지 경제장관으로 일하다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했다.

마크롱은 20대 후반에 3년간 사회당에 잠시 가입한 적이 있을 뿐 당원이 아니다. 마크롱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좌파의 금기에 도전했다. 2014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파리 샹젤리제와 같은 번화가 상점의 일요일·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개혁법을 통과시켰다.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사회당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정책을 수정한 것이다. 사회당의 대표적 노동정책인 주(週) 35시간 근무제 개정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노동자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살 수 있다고 판단해왔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또 티셔츠를 입고 시위하는 노동자들에게 “정장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프랑스 대선 ‘우파 vs 극우파’ 가능성

내년 4월 실시될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좌파인 사회당에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이 출마하더라도 재선이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이 10%대밖에 되지 않아 결선 투표에도 나서지 못하고 1차 투표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랑드 대통령은 치솟는 실업률, 경제난, 연이은 테러 등 각종 악재로 역대 최고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우파인 공화당(대중운동연합의 후신)에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알랭 쥐페 전 총리가 후보 지명을 다투고 있다. 공화당은 오는 11월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인다. 극우파에선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가 출마할 것이 확실하다. 대선 1차 투표에서 공화당 후보와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올랑드 대통령을 누르고 2차 결선 투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득표자들을 대상으로 2차 투표를 벌인다. 15~20%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마크롱이 올랑드 대통령의 대안으로 거론되고는 있지만 정통 좌파를 자처해온 사회당의 진정한 후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 후보가 탈락한다면 ‘우파 vs 극우파’라는 프랑스 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지각변동에 직면하게 된다.

올랑드 대통령과 사회당 정부는 지난 7월 말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동개혁에 나서고 있다. 개정된 노동법을 보면 주 35시간으로 제한된 근로시간을 46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고, 예외적 경우에는 주 60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또 300인 이하 기업의 경우 수익이 악화되거나 주문이 급감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선 노동자 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해고 노동자의 소송은 제한된다.

노조에 대해서도 단위노조가 회사와 합의한 경우 관련 사안에 대해 산별노조의 합의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해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내던 프랑스 노조의 힘이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그동안 파업과 시위 등을 벌이면서 노동법 개정에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사회당 정부는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해 법안을 하원에서 무투표로 통과시켰다.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각료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을 총리 책임 아래 의회 투표 없이 발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과 사회당의 이런 변신이 앞으로 재집권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 이유는 프랑스는 그동안 막대한 공공부채와 기업 경쟁력 감소, 친(親)노동정책, 높은 실업률 등으로 인해 유럽 경제를 위협하는 ‘폭탄’으로까지 지목돼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당은 독일이나 영국의 좌파인 사민당, 노동당과 비교해 볼 때도 지나치게 융통성 없는 정책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노동개혁 추진은 이미 뒤늦은 조치란 말을 듣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의 몰락 가능성은 유럽 전체로 볼 때 좌파의 퇴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 각국의 좌파 정당들이 위기에 빠지고 있는 상황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트렌드지만, 올 들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극우파의 득세, 이슬람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테러, 난민 사태, 터키의 쿠데타 등 유럽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는 바람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 사민당 지지율 20%대

독일의 경우 보수우파인 기민-기사당 연합과 대연정을 하고 있는 중도좌파인 사민당의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다. 사민당은 현 정부를 출범시킨 2013년 총선 때 25.7%를 득표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선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득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민당이 내년 10월 총선 때까지 지지율을 대폭 올릴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자, 애초 브렉시트에 반대했던 보수당과 노동당 중에서 좌파인 노동당은 더욱 타격을 입었다. 보수당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물러나고 테리사 메이 총리가 취임하는 등 브렉시트에 따른 후폭풍을 수습하면서 지지율이 30%대에서 40%대로 올랐다. 반면 노동당의 지지율은 30%대에서 20%대로 내려갔다. 노동당은 브렉시트 반대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노선 투쟁으로 내분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 전통 좌파 노선으로 참패

실제로 2015년 5월 총선에서 전통적으로 노동당의 텃밭이었던 스코틀랜드의 경우 59석 중 1석만을 차지했을 뿐이다. 당시 총선에서 보수당은 총 의석 650석 중 과반인 330석으로 단독 정부를 구성했지만, 노동당은 232석을 확보해 1987년 이후 최악의 기록을 세우며 참패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노동당이 앞으로 집권하려면 친기업적 의제와 공공서비스 개혁을 위한 대담한 새 아이디어를 적극 대변하는 등 중도적 입지를 되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1997년 총선에서 국유화, 소득분배 같은 전통적 좌파의 공약을 과감히 버리고 우파의 가치관을 포용하는 이른바 ‘제3의 길’을 내세워 승리함으로써 18년간의 보수당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총선 당시 에드 밀리밴드 대표는 블레어 전 총리의 노선을 폐기하고 전통 좌파 노선을 앞세웠다가 참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의 핵심인 노조는 밀리밴드 대표의 후임으로 더욱 강경한 노선을 주장해온 제러미 코빈 의원을 대표로 선출했다. 코빈이 대표를 계속 맡는다면 2020년 총선에서도 노동당이 패배할 것이란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좌파 정당들이 득세해온 북유럽에서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에선 극우 정당들이 좌파의 전통적 ‘무기’인 복지를 앞세워 득세하고 있다. 북유럽에서 ‘복지’는 좌파 정당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극우 정당들이 “이민자들을 막고, 기존의 복지는 강화하겠다”면서 국민에게 어필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2015년 실시된 총선에서 중도보수 성향의 제1야당인 자유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연합이 90석(총 의석수 179석)을 차지해 승리했다. 사회민주당 등 중도좌파 연정은 85석에 그쳤다. 강력한 이민규제 정책을 주장한 극우 정당인 국민당이 21%의 득표율(37석)을 기록해 제3당이 됐다. 당시 국민당의 득표율은 총선 역사상 최고치였다.

네덜란드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반이민·반이슬람을 표방하는 극우 정당인 자유당은 올 들어 2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내년 3월 총선에서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좌파인 노동당은 자칫하면 자유당에 밀릴 수도 있다. 노동당은 2012년 9월 총선에서 39석을 확보해 우파인 자유민주당(41석)에 이어 제1야당이 됐으며,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복지천국이라는 말을 들어온 스웨덴의 경우 2014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주도한 좌파연합은 43.4%를 얻어, 38.9%에 그친 우파연합에 승리했다. 하지만 극우 정당인 민주당이 12.9%의 득표율로 제3당이 되면서 기염을 토했다. 핀란드에선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중도당이 전체 200석 중 51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고, 보수당은 50석, 좌파인 사민당은 45석을 각각 차지했다. 극우 정당인 진짜핀란드인당은 39석을 차지해 연정에 참여했다. 반면 사민당은 8석이나 의석을 상실하면서 연정 파트너에서 배제됐다.

좌파가 강세를 보여온 남유럽에선 극좌 정당들이 중도좌파 정당을 밀어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1975년 민주화 이후 중도우파인 국민당과 중도좌파인 사회노동당이 30여년 동안 서로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양당 체제를 굳혀왔다. 하지만 정치권의 부패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제난과 청년실업, 긴축정책 등으로 국민의 불만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현 집권당인 국민당이 지난해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채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이후 지난 6월 2차 총선을 치렀지만, 국민당이 또다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8개월째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회노동당도 겨우 제2당의 지위만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극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는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포데모스는 스페인의 경제위기와 긴축정책, 부패 문제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2011년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 시위를 벌인 후 창설한 정당이다. 그리스의 경우 극좌 정당인 시리자당이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제1당(300석 중 145석)이 되면서 정권을 잡았다. 정통 좌파인 사회당(17석)은 제4당이 됐다. 그리스어로 ‘급진좌파연합’이란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조합한 시리자당은 2013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단일 정당으로 체계를 갖추었다. 반면 사회당은 1974년 창당됐으며 오랜 기간 집권해온 정당이다.

유럽 각국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좌·우파 정당이 교대로 집권하면서 지금까지 정치권을 이끌어왔다. 그런데 좌·우파 양당 체제가 최근 몇 년간 균열을 보이면서 좌파가 퇴조세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좌파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던 경제·사회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좌파가 지향해왔던 평등과 연대 및 공공부문 보호라는 가치가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전통적 노동의 소멸과 노조의 약화

현재 유럽 각국은 세 개의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전통적인 노동이라는 개념이 점점 없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실제로 기술의 발전으로 보편적인 직업이 줄어들고, 노동시장 구조가 변하고 있다.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통해 드러난 바 있듯이 인공지능 개발 등 과학·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막을 확인하면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15개 국가에서 716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는 202만개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적으로 5년간 514만개, 해마다 평균 103만개 일자리가 줄어드는 셈이다. 영국의 경우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자동화로 인해 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10년 내 1100만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노동력의 자동화로 전통적인 노동은 퇴조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규직 노동자도 줄어들고 임시직과 파트타임직,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 근무 형태도 공장이나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각 기업들이 재택(在宅) 근무를 늘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적인 노동이 사라지면 당연히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조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유럽 각국의 좌파 정당들의 핵심 지지 세력은 노조다. 노조는 그동안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임금 격차 해소, 복지 후생 강화 등을 위해 좌파 정당들을 적극 지지·후원해왔다. 하지만 노조가 약화되면서 좌파 정당들도 쇠퇴하고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좌파와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는 그동안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 확대가 자신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파는 좌파의 정책들을 차용하는 등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좌파는 세계화에 소외된 계층을 보듬기보다는 오히려 인권·동성애·환경 등에 집중했다. 세계화에 대한 분노가 좌파의 영향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약화시킨 것이다.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영국 국민은 동유럽과 이슬람권에서 밀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일자리와 복지혜택을 잃게 됐다는 불만에 차라리 고립되는 길을 택했다. 이처럼 유럽 각국의 좌파 정당들은 분노한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대부분 오래전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추종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셋째, 유럽 각국에서 극우 정당들이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삼아 약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우 정당들은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이주노동자와 난민 문제라고 선동하면서 반세계화 세력까지 흡수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유럽 각국의 좌파 정당들이 갈수록 쇠퇴할 경우 유럽 정치권은 유럽연합·자유무역·세계화를 지지하는 당과 이에 반대하는 당으로 재편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럽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권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볼 때도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닐 것이다.

키워드

#국제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