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9월 11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서 열린 ‘1만5000명 오카리나 연주 도전’ 현장을 방문해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9월 11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서 열린 ‘1만5000명 오카리나 연주 도전’ 현장을 방문해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주목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가 여권의 대선후보로 유력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양강(兩强)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데다 지난 8월 전당대회를 통해 친문(親文) 성향을 적극 드러낸 인사들로 당 지도부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 당내에도 여러 대선 후보가 있고 당 밖에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포진해 있지만 문 전 대표 측은 “이대로 대세(大勢)론을 이어가면 야권 유일 후보가 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당내 경선은 어떻게 치러도 승리”

문 전 대표 앞에 놓인 첫 번째 관문은 당내에서 치러질 대선후보 경선이다. 현재 더민주에서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의원이 경선 참여 의사를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상당히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 전 대표 측은 당내 경선은 어떤 방식으로 치러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물론 당원들까지 친문 성향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문 전 대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최근 몇 달간 ‘야권 1위’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안 지사와 김 의원 측에서는 내년 대선후보 경선 시기를 늦추자는 주장이 나오고, 문 전 대표 측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아직 대선후보 경선 시기를 포함해 룰 자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다”며 “문 전 대표로서는 야권의 1위 대선주자이자 ‘맏형’으로서 지위도 있기 때문에 다른 경선후보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주는 쪽으로 룰과 시기를 합의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했다.

물론 이런 여유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자신감 때문이다. 문 전 대표 측은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자신들이 구축한 온라인 당원 시스템을 통해 친문 의원들을 지도부로 입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10만 온라인 당원’은 문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던 시절 총무본부장이었던 최재성 전 의원이 기획했던 것으로 친노(親盧) 성향 지지층을 결집해 문 전 대표를 대선주자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 안팎에서 과거의 친노가 지금은 친문으로 변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안 지사나 김 의원이 돌풍을 일으켜도 문 전 대표와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민주의 한 비주류 의원은 “문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던 시절에는 호남 의원들과 비주류 의원들이 결집해 리더십에 수차례 문제를 제기하면서 위상에 손상이 간 적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런 의원들 대부분이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별도의 정치세력을 만든 상황에서 더민주는 문 전 대표 중심으로 뭉치는 게 자연스럽다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물론 당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문 전 대표 대세론이 너무 빨리 굳어지면 야권의 대선 경선 자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도층에서는 문 전 대표와 친노 진영의 급진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 전 대표 측은 그런 점을 감안해 안보·경제·사회 등 각종 쟁점 사안에 대해 과거보다 발언 수위를 낮추고 있다. 더민주의 한 주류 의원은 “지금 문 전 대표는 강성 발언으로 지지층을 더 결집시키기보다는 유연한 모습으로 경계심을 갖고 있는 중도층을 끌어들여야 할 시기”라며 “물론 본인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겠지만 여러 사안에 대해 현실적 판단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장 큰 숙제는 호남 민심”

이런 문 전 대표에게 가장 큰 숙제는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 민심이다. 지난 4·13 총선을 통해 신생정당인 안철수 전 대표의 국민의당이 호남 의석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더민주에서는 최근 호남 민심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동의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친노 패권주의에 지쳐 돌아선 호남 민심이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냥 돌아오기는 어렵다”는 게 보편적 인식이다. 국민의당 한 호남 의원은 “더민주 친문 진영에서 자꾸 호남 민심이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안 전 대표에 대한 관심이 식더라도 최소한 그 관심이 문 전 대표에게 가지는 않는다는 게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현장의 민심”이라고 했다. 더민주의 한 수도권 의원은 “우리 지역에도 호남 출신 유권자가 많은데 총선 직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문 전 대표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문 전 대표로서는 대선 경선 시기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호남 민심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문 전 대표 측도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문 전 대표가 공식·비공식적으로 호남을 찾는 행보를 계속하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문 전 대표는 자신의 고향이자 지역구가 있었던 부산·경남 지역 민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여권의 텃밭으로 인식됐던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을 통해 수차례 낙선했던 후보들이 당선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고비는 이른바 ‘제3지대’다. 국민의당은 최근 여권의 친박(親朴)과 야권의 친문(親文)을 제외한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는 ‘제3지대’를 자처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조선일보 인터뷰 등을 통해 “양극단 세력을 배제한 합리적 개혁 세력이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내년 대선에 임해야 한다”며 “양극단 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두 정치 세력이며 폐쇄적이고 기득권에 집착하고 늘 자신만 옳다는 독선에 빠져 있다”고 했었다. 안 전 대표를 비롯해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 손학규 전 더민주 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제3지대론’ ‘비패권지대론’ 등의 명칭으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안 전 대표는 총선 민심이 반영된 국민의당으로 오라는 얘기를 하고 있고, 손 전 고문과 정 전 의장 등은 별도의 제3지대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입장이 하나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문 전 대표는 이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단합된 힘을 갖게 될 가능성도 ‘상수’로 봐야 한다. 더민주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조차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 대선은 3자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 단일후보론’을 거듭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중도층의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 전 대표 측도 이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문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당분간은 야권 단일후보론을 강하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중간 지대에서 어떤 정치적 움직임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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