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매립지 마린시티를 덮친 태풍 ‘차바’. ⓒphoto 부산경찰청
지난 10월 5일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매립지 마린시티를 덮친 태풍 ‘차바’. ⓒphoto 부산경찰청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 사는 60대 자산가 조모씨는 최근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씨가 나고 자란 동래는 부산의 전통 부촌(富村)이다. 장성한 자녀들은 동래의 집을 팔아 전망 좋고 편의시설도 넉넉한 해운대 마린시티로 이사를 가자고 지난 수년간 졸라댔다. 하지만 조씨의 기억에 마린시티가 들어선 수영만매립지는 파도가 넘실대던 바다를 메워 만든 땅에 불과했다. 바다에 바로 접해 태풍이라도 들이치면 유리창이 깨지거나 침수돼 물난리를 치를 것이 뻔했다.

조씨의 말처럼 지난 10월 5일 태풍 ‘차바’에 마린시티는 물바다가 됐다. 바닷물이 방파제를 넘어 들이쳤고, 물고기가 잡혔다. 마치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재난영화 ‘해운대’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씨에게 마린시티는 ‘태풍의 위력을 모르는 젊은이들이나, 휴가철에 한두 번 올까 말까한 서울 사람들이나 사는 곳’이란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최근 조씨가 더욱 열받는 일이 생겼다. 부산시가 국비와 시비 650여억원을 투입해 마린시티 앞 수영만에 호안(護岸·둑)과 해상방파제를 쌓기로 하면서다. 마린시티의 월파(越波) 피해를 막는다며 수영만 일대를 추가 매립해 호안을 두르고, 해상방파제를 쌓을 경우 바닷물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 물의 흐름이 바뀌어 해수욕장의 모래 침식이 가속화되거나,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해운대 백사장이 송두리째 사라질 수도 있다. 조씨는 “애당초 얼토당토않은 매립지에 초고층 주거단지를 허가해주더니 이제는 수익자 부담이 아니라 국민 세금을 들여 건설사만 배불리고 있다”며 “방파제가 바닷물길을 돌려 해운대 백사장이 사라지면 어찌할 거냐”고 반문했다.

부산시가 수영만 한가운데 호안과 방파제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다. 태풍 ‘차바’로 물난리가 난 마린시티를 보호한다며 길이 690m의 호안을 쳐서 바다를 추가 매립하고, 길이 650m의 해상방파제 조성을 검토하고 나섰다. 마린시티를 두르고 있는 기존 방파제와 안벽을 더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입주민의 조망권을 이유로 추가 호안과 방파제 계획을 들고나온 것. 게다가 부산시는 ‘재해위험’을 이유로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아닌 국민안전처를 상대로 우회 국비지원까지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 해양레저과의 한 관계자는 “현 호안에서 7m 앞으로 공유수면을 매립한다는 것은 이미 해수부 기본계획에 반영됐다”며 “매립지 끝에 호안을 두르고 해상방파제는 그 앞 100m 전방 해상에 설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계획은 해운대·기장갑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서병수 부산시장이 힘을 싣고 있다. 서 시장은 태풍피해 후 부산에서 열린 긴급 당정회의 때 “마린시티는 2003년 ‘매미’, 2010년 ‘뎬무’, 2012년 ‘볼라벤’과 ‘산바’ 등 태풍 내습 때마다 상습적인 월파 피해를 봤다”며 방파제 국비지원을 촉구했다. 서병수 의원은 초대 민선 해운대구청장을 지낸 서석인 전 부일여객 회장의 큰아들로, 자신 역시 해운대구청장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서 시장의 계획은 사업부지 인근 해운대 해수욕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수영만매립지를 기준으로 서쪽으로는 수영강, 동쪽으로는 춘천(春川·봄내)이 흐른다. 해운대는 수영강과 춘천을 따라 흘러내려온 모래가 파도에 부딪혀 바닷가에 쌓여 형성된 자연 해수욕장이다. 반면 수영만은 수영만 매립, 민락동 매립 등 공유수면 매립과 광안대교 건설 등으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마린시티 앞에 호안을 둘러 추가로 바다를 매립하고 해상방파제까지 구축할 경우 수영만 입구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의 신현석 교수는 “마린시티를 막는다고 방파제를 치면 에너지가 양옆으로 분산돼 수영강 위쪽 센텀시티가 도리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부산시 해양레저과의 관계자는 “현재는 방파제를 쌓겠다는 방향만 정해진 상태로, 방파제 높이나 형태, 해운대에 미칠 기술적 영향은 실시 설계 단계에서 전문가들이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수영만 공유수면 매립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요트경기를 부산 수영만에서 치르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바다나 하천 등 공유수면 매립은 개발사업에 필요한 대형 부지를 빠르고 저렴하게 조성하기 위해 개발연대에 흔히 사용한 수법이다. 국가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허가만 내준 뒤 거의 공짜로 저렴한 땅을 얻고, 건설사는 조성한 땅에 아파트나 빌딩을 지어 개발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소득이 늘어난 주민들도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장사였다. 수영만매립지에는 1988년 올림픽까지 치른 후 대우건설이 대우마리나 1~3차 아파트를 지으면서 주거단지화됐다.

태풍 길목에 초고층 개발?

하지만 수영만으로 툭 튀어나온 지금의 마린시티가 있는 매립지는 개발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빈 땅으로 남았다. 바다와 직접 맞닿아 있어 주거지로 부적합해서다. 또한 부산은 태풍의 길목에 있어 매년 여름철 거센 바람과 함께 밀어닥치는 집채만 한 파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김우중 회장은 이곳에 주거시설이 아닌 당시로서 국내 최고층 높이인 102층 특급호텔과 콘도미니엄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건립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직전 해당부지를 팔면서 끝이 나는 듯했다.

2000년대 초 주상복합 신축 열풍은 수영만매립지를 비켜가지 않았다. 당초 호텔과 콘도 같은 시설이 들어서려던 곳에 사실상 아파트에 해당하는 초고층 주상복합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특히 마린시티는 바로 위 옛 수영비행장을 재개발한 센텀시티와 경쟁적으로 초고층화가 진행됐다. 마린시티의 스카이라인은 2011년 두산건설의 높이 80층 ‘위브 더 제니스’와 현대산업개발의 높이 72층 해운대 아이파크로 완성됐다.

하지만 수영만매립지의 초고층화로 해운대 해수욕장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적어도 바다와 맞닿은 해변만큼은 바람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한 고도제한을 적용해야 한다. 반면 부산시는 해운대 일대의 높이 200m 이상 초고층화를 방조했다. 현재 해운대해수욕장 우측에서도 최고 101층 높이의 해운대 엘시티가 올라가고 있다. 백사장 좌우측이 모두 초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것이다. 태풍의 길목에 있고 대양(大洋)과 직접 맞닿은 곳을 초고층으로 개발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태풍의 길목에 있는 홍콩은 해협에, 상하이는 강변에서 초고층화가 이뤄진다. 오사카나 도쿄는 옴폭 들어간 만(灣)으로 보호가 된다.

공유수면 추가 매립과 해상방파제, 초고층화가 해운대 해수욕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미지수다. 해운대 백사장은 일제강점기 때인 1942년 수영강 상류를 막고 회동수원지를 조성한 이후 모래 공급이 줄며 백사장 면적이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1963년부터 춘천의 물길을 돌리고 복개한 뒤 그 위에 해변도로와 주차장을 조성한 후로는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매년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유실된 모래를 벌충하기 위해 서해안 모래를 퍼올려 백사장을 채워왔다. 지난해에는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유실을 방지한다”며 435억원을 들여 동백섬과 미포 앞 바닷속에 각각 150m와 180m의 수중방파제(잠제)까지 설치했다. 백사장 유실은 난개발에 따른 인과응보가 아닐까.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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