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연합
ⓒphoto 연합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26%였다. 매주 발표하는 갤럽의 정치지표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20%대 중반까지 하락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도 28%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저였다. 갤럽이 10월 11~13일 전국 성인 10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박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9월 둘째 주의 33%에서 10월 둘째 주의 26%까지 4주 연속 하락했다. 박 대통령 지지율의 기존 최저치는 29%였다. 작년 1월 말 연말정산 논란, 작년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20대 총선 직후인 올 4월 등에 각각 29%를 기록했었다. 당시엔 특정 악재 때문에 지지율이 급락한 것이었지만, 이번엔 4월 총선 이후 약 6개월간 29~34%에서 박스권을 유지하다 떨어졌다. 갤럽 측은 “최순실, K스포츠·미르재단 의혹 등 정부·여당에 부정적인 여러 사안이 복합적으로 누적돼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난 대선 때부터 웬만해선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고정 지지층 규모를 전체 성인의 35~40%가량으로 보았다.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문재인·안철수 전 대표와 3자 대결에서 지지율이 35~40%를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이다.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선 “‘콘크리트’ 지지층에 금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총선 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40% 선이 무너진 데 이어 이번 갤럽 조사에선 영남과 50·60대 이상 등 전통적 지지층이 이탈하면서 20%대 중반으로 내려앉았다. 추석 직전인 9월 초의 33%에서 최근 26%까지 연속 하락했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50대(46→35%), 60대 이상(61→55%) 등 장·노년층에서 하락 폭이 컸다. 지역별로는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53→44%)에서 9%포인트, 부산·경남(34→27%)도 7%포인트 하락했다. 선거 때마다 승부처 역할을 하는 서울(30→18%)과 인천·경기(33→25%) 등 수도권의 하락 폭도 10%포인트 안팎에 달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든든한 우군(友軍)이던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도 38%에서 27%로 11%포인트 하락했다.

박 대통령과 반기문 지지율 동조 현상

최근 상황과 관련해선 역대 정권이 집권 4년 차에 예외 없이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걸었던 ‘4년 차 징크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갤럽 허진재 이사는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쟁이 조명을 받으면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측근·친인척 관련 의혹 등이 주로 임기 후반부에 부각되는 것도 지지율에 부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5년 단임제 아래에서는 구조적으로 4년 차가 가장 취약한 시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 갤럽 조사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 4년 차였던 1991년에 서울 강남구 수서·대치지구 불법개발과 관련한 ‘수서비리’ 사건이 정국을 뒤흔들며 지지율이 15%까지 하락했다.

김영삼 정부 때에는 4년 차인 1996년에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기업들에서 27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율곡사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4년 차 초반에 41%였지만 후반엔 28%로 하락했다.

김대중 정부도 집권 4년 차였던 2001년에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 정·재계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인 ‘게이트’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율은 1년 내내 25~31%에 머물렀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 4년 차인 2006년에는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정국이 시끄러웠다.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 관련됐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으면서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12%까지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4년 차인 2011년은 저축은행 비리를 시작으로 갖가지 부정부패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 측근들과 친·인척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고 구속되면서 지지율이 4년 차 초반 43%에서 연말엔 32%로 하락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내년 대선 판도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선 후보 중에서 선두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박 대통령의 지지층이 현재 거의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6%, 반 총장의 지지율은 대선 후보 다자(多者)대결에서 27%였다. 전체적 수치뿐 아니라 지역별로 대구·경북(TK)과 충청권에서의 강세도 유사하다. TK와 충청에서의 지지율이 박 대통령은 각각 44%, 32%였고 반 총장은 40%, 33%였다. 대선 승부처인 수도권에서도 지지율이 25% 안팎으로 비슷했다.

보수층 유권자에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지지가 44%로 똑같았다. 연령별로 20~40대에서 약세, 50~60대 이상에서 강세인 점도 비슷했다. 반 총장이 내년 초 귀국 이후 친박계의 지지 속에서 새누리당에 입성할 경우 박 대통령과 지지율이 함께 등락하는 지지율 동조(同調)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할 경우엔 반 총장에게 득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선 판도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대통령 지지율과 내년 대선 결과와의 관계도 관심거리다. 미국에선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의 대통령 지지율이 50%에 미치지 못할 경우엔 대부분 집권당 후보가 패했다. 집권 1기 말 지지율이 저조했던 존슨·포드·카터 대통령 등과 연임(連任)을 마치던 시기에 지지율이 낮았던 트루먼·조지 W 부시 대통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절반에게도 지지를 못 받는 정권은 교체된다’는 미국의 대선 공식이 적용되진 않는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역대 대선 1년 전 대통령 지지율은 김영삼 28%, 김대중 31%, 노무현 12% 이명박 32% 등이었다. 이 중에서 지지율이 30%를 넘었던 김대중·이명박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30%에 미치지 못했던 김영삼·노무현 정부는 여권 후보가 패했다. 과거의 경험에 따르면 대통령 지지율이 현재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야권이 희망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경우엔 전례(前例)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부를 시작하는 2015년 9월에 지지율이 54%로 상승하면서 임기 반환점을 지난 시점에 지지율 50%를 넘긴 첫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마지막 해에 지지율이 반등한 적이 없지만, 박 대통령은 이 징크스도 깰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위기 탈출을 위해선 여론을 철저히 분석하고, 국민의 예상을 뛰어넘는 충분한 조치가 이뤄지고, 민심 이탈 속도보다 빠른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답을 국민으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