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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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든 좋든 정부는 있어야 하고 작동해야 한다.” 지난 11월 1일 김병준(62) 국무총리 후보자는 인터넷 언론사인 ‘이투데이’에 칼럼을 실었다. 이에 앞서, 김 후보자는 지난 10월 29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국무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언론에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 칼럼에서 “대통령을 대신할 총리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정국 수습 방안을 언급했다. 그는 “거국내각은 정당이나 그 지도자들이 지명한 선수들이 들어가 뛰어야 하고, 그러면 실력이 다 드러나게 되는데 과연 그렇게 하겠느냐”면서 총리직을 받아들인 배경을 우회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언론 기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주 표출했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칼럼도 여러 번 썼다. 이런 까닭에 일부 친노 인사들은 김 후보자에 대해 “정치적 욕심을 가진 돈키호테 같은 몽상가”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가 총리직을 수용한 건 국민을 위한 나름의 역할과 구상을 실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가 가졌던 ‘정치적 꿈’은 무엇일까.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1월 초까지 1년 동안 김 후보자가 동아일보, 이데일리 등 언론에 기고한 글 속에서 김 후보자의 생각을 짚어봤다.

개헌보다 국가운영체계 손질이 먼저

“개헌은 장난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국회나 여당이 총리 후보를 선출해서 추천하면 대통령은 이를 함부로 거부하지 못한다. 꼭 헌법을 개정해야만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스스로 못나 문제인 것을 헌법 탓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개헌을 하자고 하기에 앞서 국정운영체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토론해라. 지역구도, 기득권에 안주한 양당 구조, 잘못된 선거제도와 문화, 그리고 수명을 다한 의회주의와 대통령 및 국회에 모든 결정권이 집중되어 있는 시대착오적 국가운영체계 등. 국가운영의 틀을 바꾸기 위한 세 가지 원칙. 지방분권지향적이고 참여지향적이어야 한다. 숙의(熟議)가 작동되는 체제. 거버넌스 구조의 개혁은 새로운 세력 내지는 집단이 주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창조경제

“이 정부에는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도,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부처도 보기 어렵다. 그러니 늘 늑장대응에다 무책임한 결정들이다. 조정과 협의를 위한 횡적 축도 완전히 무너져 있다. 사드 문제에는 군사적 논리만, 가계부채 문제에도 금융 논리만 횡행한다. 한진해운 문제만 해도 물류 문제의 전후방 효과가 얼마나 큰지 모를 리 없었을 터, 어설픈 금융 논리 속에 이러한 상식은 설 자리를 잃었다.

창조가 이루어지자면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열정이 있는 곳으로 돈이 흘러야 한다. 융복합 사업을 지원하고 혁신센터를 여는 것 같은 산업정책이나 과학기술정책을 넘어 금융개혁과 자본시장 육성 쪽으로도 선을 쭈~욱 그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돈은 여전히 담보 있는 쪽, 크고 잘난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무슨 ‘창조’가 얼마나 이루어지겠나. 청와대가 문제다. ‘창조경제’를 위한 점들도, ‘문화융성’을 위한 점들도 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북한 문제의 해법

“한쪽에서 햇볕정책이 잘못됐다고 한다. ‘퍼주기’로 미사일 개발을 도왔다는 거다. 증명할 수 있나? 그래서 햇볕정책 지지자들 입을 닫게 할 수 있나? 어림도 없다. 햇볕정책이 없었으면 북한 미사일 없었다는 말이냐 반박할 것이고, 한·미 공조의 대북 강경 드라이브가 오히려 미사일 개발을 자극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죽기 살기로 서로를 부정하다 스텝만 꼬인다. 우리의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은 낙제다. 햇볕이면 어떻고 찬바람이면 어떠냐. 문제는 우리 스스로 어찌할 수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다. 우리 문제를 두고 남의 나라만 쳐다봐야 하나.”

사법부는 ‘유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경찰과 검찰이 그 정도로 믿을 만하고 유능해 보이지 않다. 법원이 가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워낙 엉망이다 보니 국민의 눈길이 아직 사법부와 법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황제노역’ 등 이해할 수 없는 판결에 분노하고, 법정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에 분노하고 있다.

인간관계와 돈이 수사와 기소, 그리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믿게 만드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전관예우, 브로커 문제… 사법부는 유죄다.”

기업 구조조정

“지금에서야 구조조정 이야기라니, 기가 막힌다. 이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조선을 비롯한 핵심 산업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그야말로 노래를 불렀다. (박근혜) 청와대의 정책기능은 역대 정부 중 가장 낮았다. 산업구조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 결과 노동·교육·공공·금융의 4대 개혁을 외쳤지만 막상 이러한 개혁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대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창조경제’ 이야기에, 쪼가리 권력을 두고 싸움질이나 하는 참모들 이야기였다.”

대학 개혁의 당위성

“취직 걱정이 태산 같은 학생들을 보고 말했다. 경제가 좋아져도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국가도 정부도 믿지 마라. 어느 당이 집권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렇다. 각자도생, 스스로 혁신하고 노력해서 살길을 찾아라. 학교도 믿지 마라. 교수가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줄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여기도 각자도생, 스스로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지식과 지혜, 그리고 정보를 찾아라. 많은 분야에서 지식은 더 이상 대학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학위제도를 없애거나, 기업이든 연구소든 학위를 마음대로 주게 하면 안 될까? 강의를 마친 발걸음이 무거웠다. 늘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막상 스스로는 겨울이 되어도 여름옷을 입고 있는 집단, 이게 대학이다.”

부동산… 집값 잡아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값을 잡아야 한다. 돈이 흘러갈 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도, 경제와 산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읽을 수 없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늘 해왔던 ‘짓’, 즉 부동산을 부추겨 성장률을 올리는 바로 그 ‘짓’을 하려는 거다. 하지 마라. 지속성장의 발목을 잡을 야비한 일이다.”

노동시장 개혁의 문제

“(박근혜 정부의 양대 지침은) 성과가 낮은 근로자를 더욱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과, 임금 결정에서 회사 측의 입장을 강화시켜주겠다는 것. 참여정부 당시에도 이 문제로 머리가 아팠다. 자본도 노동도 쉽게 이동시킬 수 없는 상황,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은 시장으로 갔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정부 일을 하다 보면 자본이든 노동이든 칼로 바로 내리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든다. 어느 쪽이 옳을까? (나는) 노 대통령에 걸겠다. 어렵다 하여 쉬운 방식, 즉 기업의 고용관리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내용의 양대 지침이나 만들어서야 되겠나.”

차기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들은 만신창이가 돼 청와대를 떠난다. 앞의 대통령이 그랬고, 지금의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들어설 대통령도 마찬가지, 결국은 같은 길을 갈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정치적 죽음의 길이라 생각하는 편이 옳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물어라. 그런 모든 것을 불사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절실하고도 분명한 꿈과 비전, 그리고 가치를 가졌는지. 권력의 칼이 부메랑이 돼 여러분을 향해도 좋다고 생각할 때, 그때 나서라.

‘국민성장’ 등 야당 주자들이 내놓고 있는 성장 슬로건만 봐도 그렇다. 늘 분배를 강조하다 어느날 갑자기 성장을 앞세우고 있는데,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다. 새로운 비전과 전략은 과거의 그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참회를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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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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