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오전 11시40분. 서울 강남구 삼성2동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저의 분위기는 흐린 날씨만큼이나 스산했다. 2층 벽돌집인 박 대통령 사저는 서쪽으로는 7층짜리 오피스텔, 북쪽으로는 삼릉초등학교 운동장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다. 동쪽에는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을 만한 진입로가 있고, 그 건너에는 롯데캐슬킹덤아파트가 있다. 양옆의 건물이 모두 사저보다 높지만 어떤 건물 위에서도 집 내부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마당에 빽빽이 자란 활엽수와 대나무가 집을 완전히 가리기 때문이다. 약 6m 높이의 붉은 담장이 빙 둘러쳐져 있어 밖에서는 집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오피스텔과 접하는 부분에 세워진 흰색 담장에는 철조망도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현직 대통령의 사저인 이곳의 경비는 삼엄했다. 붉은 담장 위에는 보안카메라가 5대나 달려 있었다. 팔짱을 낀 여경 한 명이 사저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에 서서 쉴 새 없이 주변을 감시했다. 여경 뒤에 있는 초소 안에는 남자 경찰이 한 명 있었다. 차량을 몰고 들어갈 수 있는 검은색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8년 전 삼성동으로 이사왔다는 주민 김모씨는 “최근 사저 주위를 순찰하는 경찰관 숫자가 더 늘어났다”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시설물 파손 등의 우려가 높아져서 그렇다고 한다”고 했다. 이전에는 경관만 있었으나 현재는 순찰차도 한 대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기자가 보는 사이에도 순찰차가 수시로 초소 앞에 멈춰섰다.

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1990년 이 집을 매입했다. 이곳에 오기 전 주소지는 중구 장충동이었다. 집은 2층 구조로 대지는 약 484.8㎡ 규모다. 박 대통령은 1998년 정계 입문 계기가 됐던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주소지를 대구 달성군으로 옮겼다. 하지만 주소지를 대구로 옮긴 후에도 박 대통령은 이 집을 처분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 퇴임 후 사저 부지를 국정원이 물색하고 다녔다”며 의혹을 제기했을 때 청와대가 밝힌 박 대통령의 퇴임 후 거처도 이 삼성동 사저였다. 근처 부동산 관계자는 “만약 박 대통령이 퇴임하고 돌아오신다면 경호동을 신축할 공간은 바로 앞 건물밖에 없는데 건물주에게 물어보니 ‘아직까지 청와대에서 경호동 설치와 관련해 문의가 온 적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 사저를 떠났다. 당시 이웃 주민들은 ‘임기를 잘 마치고 돌아오라’며 박 대통령을 환송했다. 주민들은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암수 진돗개 두 마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을 환송했던 이웃 주민들 역시 지금은 화가 나 있었다. 이웃에 살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며 ‘주민 박근혜’를 힐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저 근처에서 22년간 순댓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70대 여주인은 “담 하나 옆에 사는데 박 대통령은 동네 주민하고 눈도 한 번 마주친 적이 없다”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일하는데 열심히 일한 세금이 최순실에게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많은 주민들은 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사저에 살 때도 동네 주민들과 전혀 교류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민은 “내가 여기 8년 살면서 박 대통령 얼굴을 두 번 봤다”며 “그중 한 번이 대통령이 취임식을 위해 사저를 떠나던 때”라고 말했다. 롯데캐슬킹덤아파트에 20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은 “취임식 때 거리에 나와 태극기도 흔들었는데 지금은 창피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며 “직접 나간 건 아니지만 주말에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간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들에게는 담을 높이 쌓았지만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최순득 자매는 이 사저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주간조선은 2010년 11월에도 이 삼성동 사저를 밀착 취재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로 평가받던 박근혜 의원이 이웃 주민들과 얼마나 소통하는지, 이웃들의 평가는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주간조선은 삼성동 사저에 24시간 카메라를 들이대고 출입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촬영했는데, 당시 카메라에 사저를 출입하는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이 찍혔다. 문고리 3인방인 이들은 현재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주요 문건을 건네주고 청와대 출입을 도와줬다는 이유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당시 카메라에 최순실·최순득 자매는 찍히지 않았지만 이들이 삼성동 사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증언은 많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대변인을 지낸 전여옥 전 의원은 “기자들한테 사저를 두 번 개방했는데 그때마다 아줌마 두 명이 사저에서 일을 도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최순실·최순득 자매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6년 이른바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 최순득씨 집에서 요양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2010년 11월 17일 오후 4시47분 안봉근씨가 박 대통령 사저에서 짐을 옮기고 있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2010년 11월 17일 오후 4시47분 안봉근씨가 박 대통령 사저에서 짐을 옮기고 있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삼성동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최순실씨를 포함한 최씨 일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나서기 전부터 이 삼성동 사저 주변에 자리 잡고 밀접하게 교류해왔다. 최씨 일가는 박 대통령이 현재의 삼성동 사저에 살기 시작한 1990년을 전후해 근처에 집과 빌딩 등 부동산을 매입했다. 강남구 삼성동, 논현동, 신사동 등 박 대통령 사저로부터 반경 2㎞ 내에 최씨 일가의 부동산이 밀집해 있다. 이 일대에 최씨 일가가 소유한 집과 빌딩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곳만을 기준으로 해도 4곳이나 된다.

최씨 일가가 현재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박 대통령의 사저와 가장 가까운 집은 최순실씨의 모친인 임모씨가 살던 집이다. 박 대통령이 삼성동에 거주하기 시작한 1990년 당시 삼성동 사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최태민씨의 다섯 번째 부인이자 최순득·최순실·최순천씨의 어머니인 임모씨가 살고 있었다. 구(舊)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임씨는 이전 주인인 이모씨에게 1985년 이 건물과 토지를 매입해 최소 1993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건면적 190㎡(58평) 규모의 태양열 주택이었다.

1995년 4월 이 집은 최태민씨의 사위인 정윤회씨와 딸인 최순실씨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넉 달 뒤 두 사람은 원래 있던 집을 허물고 다세대주택 ‘팜빌라’ 두 채를 지었다. 각각 19가구와 16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다. 서류상 기록으로는 1995년 4월 정씨가 새 건물 501호에 먼저 입주했고, 이듬해 10월 최씨도 같은 주소에 입주했다. 최씨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1996년 10월생인 정유라씨가 태어났다.

2002년 최씨와 정씨는 팜빌라를 매각했다. 판매 대금은 당시 돈으로 약 4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소유주는 바뀌었지만 이 다세대주택은 지금도 있다. 11월 7일 오전 찾은 팜빌라는 건물 정면과 측면에 승용차가 각각 한 대씩 주차되어 있을 뿐 근처를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TV조선이 공개한 최태민씨 의붓아들 조순제씨 녹취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최태민씨의 역삼동 집에 사흘에 한 번꼴로 찾아갔다. 1990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는 “최태민씨의 저택은 서울 역삼동 뉴월드호텔 부근에 있었는데, 대지 200여평에 건평이 70~80평에 이르며, 시가가 20억원이 넘는 대저택이었다”라고 기록했다. 뉴월드호텔은 2003년 현재의 라마다서울호텔로 바뀌었다. 라마다서울호텔은 박 대통령 사저에서 봉은사로를 건너면 바로 나온다. ‘최태민 역삼동 저택’이 부인 임씨 소유의 집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박 대통령이 1990년이 아니라 1984년 삼성동으로 이사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6월 당원 김해호씨는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가 1984년 성북동 집을 팔고 나서 삼성동 최태민 목사 집 앞으로 이사를 했고, 차로 5분 거리에 최순실씨 집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씨는 최태민씨와 최순실씨가 육영재단 사업에 개입해 직원 140명을 해고하고 친인척들을 요직에 앉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후 김씨는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발당해 징역 6개월을 복역했다.

삼성동에는 최순실씨의 언니인 최순득씨 남편 장모씨 명의로 등기된 승유빌딩도 있다. 박 대통령 사저와는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지상 6층에 지하 3층으로 구성된 이 빌딩에는 은행, 중·고생 교육업체, 건축사 사무소 등이 입주해 있다. 대지면적 951.5㎡ 규모로, 장씨는 1985년 토지를 매입한 후 1988년 건물을 준공해 지금까지 보유 중이다. 1988년에는 빌딩 지분의 절반을 최순득씨 어머니인 임모씨에게 매매했다가 1994년 명의신탁해지 판결을 통해 다시 돌려받기도 했다.

11월 8일 오전 이 빌딩을 방문해 보니 모든 층이 임대되어 영업 중이었다. 특히 이 빌딩 1층에는 KB봉은사지점이 입주해 있는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2014년 2월 본인 소유인 신사동 미승빌딩을 담보로 언니가 건물주인 이 지점에서 3억여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등기부등본상 확인되는 최순득씨의 현주소는 강남구 도곡동의 한 고급 빌라다.

2010년 11월 17일 오전 9시29분 정호성씨가 박 대통령 사저 앞에 서 있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2010년 11월 17일 오전 9시29분 정호성씨가 박 대통령 사저 앞에 서 있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논현동

논현동은 최순실씨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최씨가 다른 비선들과 접촉한 장소로 알려진 카페 ‘테스타로싸’가 있던 위치는 박 대통령 사저에서 도보로 약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곳이다. 테스타로싸가 있던 건물에는 현재 다른 업체가 입주해 리모델링까지 마친 상태다. 최씨의 측근인 차은택씨와 관련된 회사들도 이 근처에 있다. 차씨가 대표로 있는 광고회사 아프리카픽처스, 차씨의 최측근인 제일기획 출신 김홍탁씨가 대표로 있는 광고기획사 인터플레이그라운드, 모스코스 등이 모두 이 카페에서 100m 내외의 거리에 있다. 최순실이 측근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건네받은 문건을 보면서 ‘논현동 청와대 회의’를 연 곳으로 지목되는 비밀 사무실 역시 이 근처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 의혹인 미르·K스포츠재단 역시 모두 논현동에 있다. 미르재단은 박 대통령 사저에서 도보로 30분 거리다. K스포츠재단은 더 가까워서 10분이면 도착한다. 11월 8일 오후 6시쯤 찾아간 미르재단 사무실은 폐쇄되어 있었다. 미르재단이 3층을 쓰던 이 건물의 1층은 현재 한복 전문점, 2층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 측면의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통하는 유리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2층에서 만난 건물 관리인은 기자에게 “검찰이 온 뒤로 직원만 한두 명씩 더 왔다갔다 할 뿐 3층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재단이 해체될지 어떨지 결정이 안 난 상태라 그냥 기다리는 상황”라고 말했다.

신사동

최순실씨가 언론의 추적을 받기 전 주로 거주한 곳으로 알려진 곳은 최씨 본인 소유인 신사동의 미승빌딩이다. 미르재단에서 약 1.5㎞ 떨어져 있다. 지상 7층, 지하 2층 규모의 이 빌딩에는 쌀국수 전문점과 마사지숍 등이 들어서 있다. 최씨는 이 건물 5·6층을 개조해 자신의 주거공간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이 빌딩 5층에서 최씨와 딸 정유라씨 소유의 명품 구두 수백 켤레가 쏟아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11월 7일 찾아간 이 빌딩은 완전히 영업을 하지 않는 곳처럼 보였다. 1층의 쌀국수 전문점과 3층의 마사지숍만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압수수색 이후 건물 내 입점한 대부분의 점포는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4층까지만 눌러졌고,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 역시 잠겨 출입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신사동에는 최순천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주식회사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이 소유한 554-32빌딩이 있다.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빌딩 1층에는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음식점 ‘콜라메르까토 신사점’이 입점해 있다.

청담동

“거처가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구속된 최순실씨의 모습이 출국 전 언론에 마지막으로 포착된 곳은 청담동의 최고급 오피스텔인 ‘피엔폴루스’다. 이 빌딩은 최씨 일가의 소유는 아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거처 중에서는 최씨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다. 최씨는 독일로 출국하기 직전인 7월, 이 오피스텔 지하에서 TV조선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 건물 내에는 프리미엄 마켓과 VIP 전용 병원이 입점해 있어 밖에 나오지 않아도 쇼핑과 의료서비스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최순실씨는 딸 정유라씨와 함께 이곳 110평대(약 360㎡)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오피스텔과 같은 건물에는 차병원의 의료전문 토털 클리닉센터인 ‘차움’이 입점해 있다.

피엔폴루스는 청담사거리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다. 청담교차로에서 청담동 명품거리로 이어지는 입구에는 역시 최씨 일가의 소유인 서양빌딩이 있다. 지하 4층, 지상 9층, 대지면적 1161.5㎡ 규모의 이 건물은 최순실씨의 여동생 최순천씨가 남편 서모씨의 지분이 있는 회사를 통해 사실상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다. 근처 부동산 업자들이 추산한 이 빌딩의 가치는 1100억원에 달한다. 지상 9층, 지하 4층 규모의 이 빌딩의 지분은 1991년 서씨가 절반을, 나머지 25%씩을 최순천씨와 시아주버니인 서모씨가 보유했다. 이후 2002년 서양네트웍스의 예전 상호인 서양물산이 2016년 9월 최씨가 대표로 있는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로 합병했다. 최씨는 이 빌딩 이외에도 부산·광주 등에도 추가로 빌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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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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