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신이 만든 직장이었다. 주간조선은 K스포츠재단과 재단법인 미르의 올해 지출내역을 단독입수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소속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해당 자료에는 두 재단이 올 한 해 어떻게 살림을 꾸려왔는지 고스란히 들어 있다.

K스포츠재단(이하 K)은 올해 1월 13일 설립허가를 받았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K의 ‘분개장’에는 1월 18일부터 9월 30일까지 약 아홉 달간의 입출금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분개장은 해당 법인의 모든 입출금 거래를 최초로 기록한 내역서를 뜻한다.

이 기간 동안 K의 ‘가계부’에 드나든 돈은 약 1539억원. 이 중 350억원은 기업이 낸 ‘후원금’이다. 분개장으로 본 이들의 9개월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28일 K는 서울 강남구 언주로 114길 15-5에 사무실을 얻었다. 2개층을 월세로 빌렸다. 보증금 1억2000만원에 월세 792만원, 매월 내는 관리비 175만원까지 더하면 매월 1000만원을 내는 조건이었다. 보증금과 인테리어비 선급금 등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서 빌린 2억원으로 냈다. 후에 지불한 돈까지 하면 K가 인테리어 업체에 지불한 돈은 1억원이 넘는다. K 사무실의 인테리어 작업을 지휘한 이는 재단법인 미르(이하 미르)의 김성현 사무부총장이다.

비영리법인으로 강남구청에 설립신고를 할 당시, K의 대표는 정동구씨였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정씨는 2월 26일 사임했다. 한 달 남짓 이사장이었던 정씨는 사실상 ‘허수아비 이사장’이었다. 설립 전후 분개장엔 그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사장 급여를 받아간 흔적도 없다. 대신 분개장엔 정현식과 김필승이란 이름이 빈번히 등장한다. 각각 K의 사무총장과 상임이사다.

1월 4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이사진들의 첫 상견례였다. 정현식 사무총장을 포함해 7명이 직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무실 집기를 마련하고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인터넷을 설치하고 홈페이지를 열 준비를 했다. 직원들의 식대나 유류비는 끊임없이 기록되는데 아직 수입이 들어오지 않았다. 1월의 마지막 날 지급하기로 한 급여도 일단은 ‘미지급’으로 기록했다.

대통령 총수들 독대 후 기업 기부금 줄이어

드디어 2월 4일 기업의 기부금이 최초로 입금됐다. LS산전이었다. ‘121,200,000원’. LS그룹 계열사인 LS산전은 국내 전력인프라시장 침체로 지난해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다음 날엔 더 많은 기부금이 들어왔다.(분개장에는 기부금·후원금 대신 ‘출연금’이란 용어 사용) CJ가 5억원을 쾌척했다. 이날 직원들은 밀린 월급을 받았다. 급여 기준은 모호했다. 직급과 상관없이 들쭉날쭉했다. 세후 지급액 기준으로 정현식 총장이 651만원을 받았다. 이하 김필승 이사 711만원, 노승일 부장 294만원, 강사민 차장 619만원, 이모 부장 437만원, 박헌영 과장 381만원, 박모 사원 263만원 하는 식이다. 총 3752만원이다. 여기에 식대와 주유비 등이 실비로 지급됐다.

2월 12일 K는 전경련에서 빌렸던 2억원을 이자 137만원과 함께 갚았다. 2월 17일 부영주택과 아모레퍼시픽에서 각각 3억원, 1억원이 들어왔다. 2월 22일에는 LS엠트론에서 6240만원이 입금됐다. LS그룹 계열사인 LS엠트론은 적자 기업이다. 2월 24일 드디어 꽤 큰 금액이 통장에 찍히기 시작했다. 21억5000만원, SK텔레콤이었다.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며칠 간격으로 재계의 온정이 답지했다. 제일기획을 비롯한 삼성 계열사가 79억원을 보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43억원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7일 즈음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단독으로 면담했다고 한다.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바로는 박 대통령은 SK 최태원 회장과 롯데 신동빈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독대’했다. 2월부터 4월까지 K스포츠에 입금된 기업 후원금은 246억원이다. 전체 기업 후원금의 70%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입금된 셈이다.

정씨를 포함한 직원들은 각자 꽤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듯했다. 2월 17일에는 평창에도 다녀왔다. 이들의 동선을 일 단위로 파악할 수 있는 건 바로 ‘식대’ 때문이다. 식대는 K의 분개장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지출내역이다. 2월 한 달 동안에만 이들이 지출한 식대는 380만원. 서울 마포의 을밀대부터 당진의 횟집까지 다양한 곳이 이들의 식사처였다.

3월에 법인카드 5장을 발급받은 이후 식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최종적으로 10장으로 늘어난 법인카드의 아홉 달 동안 사용액을 모두 합하면 1억원이 넘는다. 대부분이 식대이고 유류비가 포함되어 있다. 1월과 2월에 직원들이 개인카드로 결제한 금액을 감안하면, 10월 기준 상근직원이 10명인 단체에서 아홉 달 동안 1억원을 식대로 지출한 셈이다.

K스포츠재단의 분개장과 재단법인 미르의 올 한 해 지출내역.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K스포츠재단의 분개장과 재단법인 미르의 올 한 해 지출내역.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K스포츠 이사, 무주 태권도원 들락날락

2월 급여부터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김필승 이사의 급여가 100만원으로 내려가고, 대신 ‘사업소득’으로 805만원을 받기 시작했다. 7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난 상근직원 중 회계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등을 할 수 있는 직원은 없었던 듯하다. 회계내역 입력만을 위해 E회계법인에 매달 33만원을 지출했고, 사무실 청소를 해주는 김모씨에게 35만원, 식물을 관리해주는 회사에 30여만원을 매달 보냈다.

법인카드를 나눠 가진 후 지출액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4월 사용내역에서는 ‘황토사우나 7000원’ ‘용전라이브 12만원’ 등이 눈에 띈다. 확인 결과 용전라이브는 대전시 동구에 있는 유흥업소다. 해당 카드의 사용자로 추정되는 김필승 이사는 대전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다. 최순실씨의 심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식대 지출 외에 K스포츠가 실질적으로 한 일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태권도 공연과 교육이다. 박 대통령의 이란,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따라가 공연을 펼쳤다. 원래 대통령 해외 순방은 관행적으로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이 동행했다. 단장까지 9명인 ‘케이스피릿’ 태권도 시범단은 3월에 첫 결성됐다. 40년 넘게 이어진 관행을 깨고 두 달 된 신생 시범단 ‘케이스피릿’이 대통령 순방에 함께했다는 얘기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 7월 26일부터 8월 8일까지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무료 태권도교실’을 열었다. 자은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30여명이 2주간 태권도 강습을 받았다. 여기에 들어간 돈은 시범단 숙박비, 어린이 도복 40벌 등 물품구입비와 훈련비 등 1000여만원이다. 강습 후 K스포츠가 자은성당에 기부한 100만원은 별도다. 자은초등학교의 천경랑 교장은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K스포츠로부터 “태권도 강습 봉사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처음 받았다는 자은면 구영리의 이홍조 이장은 “왜 하필 우리한테(구영리로) 연락을 해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K스포츠 직원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했다. 이 시기 법인카드 사용내역엔 신안군에서 바다낚시를 나간 내역이 여러 건 등장한다. 태권도시범단 9명의 한 달 급여는 5월 기준 3200만원이다.

K는 태권도를 주요 사업 영역으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등기부등본에도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 지원 사업’이 재단의 목적이라고 명시했다. 김필승 이사 등 임직원들은 4월 1일부터 지속적으로 전라북도 무주의 태권도원을 자주 들락거렸다. 태권도원을 운영하는 태권도진흥재단은 태권도 홍보와 진흥을 위해 매년 100억원 이상을 쓴다. 만약 K가 태권도진흥재단의 사업들을 따온다면 기업의 후원 외에도 고정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K가 한 일 중 두 번째는 ‘가이드러너 컨퍼런스’ 등의 국제행사 주관이다. 더스포츠엠이라는 업체에 9000여만원을 주고 대행을 맡겼다. 장시호씨가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회사다.

6월이 되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은행에 예치한 예금을 해약하더니 6월 9일 롯데에 후원금 70억원을 돌려줬다. 롯데는 사실 다른 기업보다 조금 늦은 5월에 나머지 후원금을 건넸다. 제과, 케미칼, 건설, 카드, 음료 등 다섯 개 계열사가 십시일반으로 70억원을 모았다. 후원금을 받고 약 일주일 후에 다시 돌려준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6월 10일에 검찰이 롯데 본사를 압수수색한 것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만 나올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단둥에서 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체육 행사도 급히 취소했다. 6월 14일, 여행사에 152만원의 수수료까지 물며, 76명의 단둥행 항공권을 취소했다. 그리고 8월 본격적으로 미르와 K에 관한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다.

기자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K의 전·현직 직원을 수차례 접촉했다. “검찰 수사 중인 데다, 설명을 할 수 있는 직원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송기석 의원은 “11월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안과 국조계획서가 처리된 만큼 성역 없는 조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의 돈으로 벌인 돈잔치는 막을 내렸다. 그 자리에 누가 있었고 책임질 자는 누구인지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이유다.

키워드

#단독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