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억원을 주무른 단체의 장부라기엔 지나치게 주먹구구다. 재단법인 미르(이하 미르)의 회계장부 얘기다. 주간조선이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미르의 올해 지출 내역은 일반 가정에서 쓰는 가계부보다도 단순하게 정리돼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의문의 지출처가 빈번히 등장한다. 미르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학동로 42길 21에 있다. 기자는 미르 사무실을 중심으로 강남 일대에 퍼져 있는 미르의 지출처를 확인하며 미르의 흔적을 쫓았다. 의문의 지출처는 세 군데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식사업 미스터리’다. 지출내역서 초반에 등장하는 이름은 에콜페랑디다. 19억5000만원을 출금했다고 쓰여 있다. 에콜페랑디는 프랑스의 요리학교다. 미르가 주요 업적으로 내세운 게 바로 에꼴페랑디와의 업무 제휴다. 미르는 지난 4월 22일 서울에서 에콜페랑디와 합의각서(MOA)를 교환했다. 에콜페랑디의 분교를 서울에 내고, 프랑스의 본교에는 한식 교육과정을 개설한다는 내용이었다. 미르는 ‘올 연말에 서울 분교의 문을 연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지출내역을 보면 여기까지 사업을 진행해오기 위해 프랑스 현지 출장에만 6800만원 이상을 썼다. 결론적으로 사업은 없던 일이 됐다. 미르는 서울 분교를 퇴계로에 있는 ‘한국의 집’에 내려 했다. 취선관 건물을 사용하겠다고 요청했다. 한국의 집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재재단은 미르와 업무 협의를 위한 MOU를 맺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지금까지 취선관에 외부 기관이 장기 입주한 적은 없었다. 다 되어가는가 싶던 프로젝트가 틀어진 건 에콜페랑디 측의 반대 때문이었다. 학교 측은 ‘분교 안에 실습을 위한 레스토랑을 설치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고 한다. 한국의 집 안에는 이미 한식당이 영업 중이다. 9월 29일 취선관을 찾은 에콜페랑디 실사단은 프랑스로 돌아간 후 분교 설치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고 한다. 결국 21억여원이 공중으로 날아갈 위기에 처한 셈이다.

미르가 어떤 식으로 에콜페랑디 사업을 진행했는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증언이 있다. 미르의 용역을 받아 언론 홍보를 진행한 홍보대행사 P사 본부장의 말이다. “이사장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한마디로 체계가 없는 곳이었다. 막무가내로 계획에도 없던 기자간담회를 갑자기 열라고 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맞춰 홍보를 해야 한다고 하는 등 이상한 점이 많았다.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업무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지난 4월 8일엔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에 3680여만원을 지급했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은 미르재단의 대외사업인 ‘K-밀(meal)’ 사업과 연관돼 있다. K-밀 사업은 박 대통령이 지난 6월 케냐·우간다·에티오피아 순방 당시 제시했던 ‘코리아 에이드’ 중 음식사업 명칭이다. 코리아 에이드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이끈 대표적 정책 중 하나다. 비빔밥, 쌀로 만든 크래커 등 한식을 제공해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한식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미르의 지출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 있다. 바로 ‘법무법인’이다. 두 번째 의문점이다. 미르는 복수의 법무법인과 노무법인, 행정사무소 사무실에 매월 돈을 보냈다. ‘자문료’ 명목이었다. 1월부터 매월 E법무법인에 750여만원을 보냈다. 6월과 9월에는 또 다른 법무법인 S에 4300만원을 지출했다. 역시 자문료다. 1월부터 열 달 동안 법률 관련 자문에 들어간 비용만 1억원에 달한다. 복수의 법조계 인사들은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법무법인을 이끌고 있는 A 대표의 말이다. “E법무법인의 경우 업계에 거의 안 알려진 곳이다. 이런 곳에 매월 7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더군다나 비영리법인이 매월 높은 법률자문료를 지급하고 신생 법무법인에 많은 자문료를 지급한 경우는 충분히 의혹을 가질 수 있다.” 대형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B 변호사는 “자문료가 한 번에 500만원을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미르와 거래한 법무법인에 어떤 자문을 해줬는지 요청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미르에 행정자문을 해준 I행정사무소 대표는 “이사회 구성 방식이나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 등 기초적인 재단 관련 자문을 해주고 자문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미르에서 체계적으로 서류를 가져와서 자문을 구한 적은 없었고, 전화통화로만 10분 내외로 상담이 이루어졌다는 설명이다. “미르 직원들은 재단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매우 부족해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 번째 의문점은 ‘미르는 왜 모든 작업을 플레이그라운드와 진행했는가’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1억4000만원이 플레이그라운드에 건너갔다. 명목은 다양하다. ‘특화 문화 콘텐츠 기획 계약금’ ‘한·불 페스티벌 계획 계약금’, 심지어 ‘전문 디저트 개발’이라는 설명도 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실질적으로 최순실씨의 회사로 알려진 곳이다.

미르의 로고 디자인을 누가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7월 지출항목을 보면 디자인회사인 V사에 4000만원을 건넸다. 지출 이유에는 BI 제작이라고 적혀 있다. BI(Brend Identity)는 ‘브랜드와 그 브랜드의 이름 및 상징에 관련된 자산과 부채의 총체’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미르라는 브랜드와 로고, 로고의 의미를 V사가 만들어줬다는 말이다. V사는 극구 부인했다. 담당자의 설명이다. “우리는 미르재단의 브로셔 등 홍보자료만 디자인했다. 우리가 로고나 브랜드를 만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이미 누군가가 로고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브로셔나 포스터 등을 만들어주고 4000만원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용(龍)을 형상화한 미르의 로고는 국정원의 이전 엠블럼과 유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자는 이성한 사무총장 등 미르의 전·현직 직원에게 수차례 연락해 설명을 요청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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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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