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앞에 신축 중인 해운대관광리조트 엘시티. ⓒphoto 뉴시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앞에 신축 중인 해운대관광리조트 엘시티. ⓒphoto 뉴시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들어서는 101층 엘시티(LCT) 개발을 주도한 이영복 회장이 과거 다대지구 개발이익을 사업 밑천으로 삼았던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11월 10일, 약 100일간의 도피 끝에 검거된 이영복 회장은 1990년대 중반 ‘부산판 수서사건’으로 불린 ‘다대지구 사건’의 장본인이다. 당시 동방주택 사장으로 있던 이 회장은 부산 사하구 다대동 일대 자연녹지를 매입해 4101가구 아파트 개발을 추진해왔다. 다대지구는 해운대·태종대 등과 함께 ‘부산 8대(臺)’ 경승지로 불리는 몰운대(沒雲臺)와 다대포해수욕장이 굽어보이는 곳으로 낙동강 하구 낙조(落照)로 유명하다.

때문에 자연녹지 훼손에 따른 환경단체의 반발이 격렬했고, 추미애 당시 국민회의 의원(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15대 대선을 앞두고 로비자금의 대선 유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초대형 개발비리로 비화됐다. 결국 정관계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자 이영복 회장은 약 2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자수한 뒤 처벌을 받았다. 이 회장이 대표로 있던 동방주택 역시 ‘원풍개발’로 사명을 바꾸고 아파트 개발을 포기한 듯했다.

해당 부지는 한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되다가 ‘신부국건업’이란 신생 업체가 2003년 매입했다. 이후 롯데건설과 공동으로 아파트 건설에 나서 2007년 3462가구 규모의 ‘몰운대 롯데캐슬’이란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었다. 하지만 울산 소재 모 중견기업 자회사로만 알려졌던 신부국건업의 양대 주주 중 한 명이 이영복 회장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신부국건업 대표는 ㈜엘시티 대표로 있는 이수철씨와 동일인이었다. 신부국건업은 청안건설 서울사무소와 같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빌딩에 주소를 두고 있다. 청안건설의 명목상 대표는 구속된 엘시티PFV 박수근 대표였다. 대외적으로 이영복씨는 회장, 이수철씨는 부회장, 박수근씨는 대표로 활동해왔다. 신부국건업이 엘시티 컨소시엄 주간사인 청안건설과 사실상 같은 회사였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다대지구 개발에서 벌어들인 분양이익을 사업 밑천으로 삼아 엘시티로 재기하려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회사 측이 밝힌 몰운대 롯데캐슬의 분양금액은 약 8000억원, 분양이익은 500억원에 달한다. 신부국건업은 지금은 껍데기만 남아 있다. 회사 관계자는 “신부국건업은 없어졌고, 이수철 대표는 엘시티로 갔다”고 했다. 강남구청 세무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2억3000만원 정도의 법인세가 체납돼 서울시 ‘38세금징수과(38기동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방주택을 시작으로 원풍개발, 신부국건업, 청안건설, 엘시티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와 자금줄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조7400억 사업 밑천은 어디서?

실제 다대지구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 2007년, 청안건설이란 한 무명업체가 부산시 산하 부산도시공사로부터 ‘해운대관광리조트(온천센터)’ 민간사업자 자격을 따내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신생 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 롯데건설, 한진중공업, 부산은행 등 20개 건설사와 금융사를 끌어모았다. 또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117층(후일 101층으로 조정) 초고층 빌딩과 시화(市花)인 동백꽃을 형상화한 개폐형 유리돔을 갖춘 실내 워터파크와 해양동물쇼장 등으로 구성된 사계절 관광리조트를 짓는다는 엄청난 계획을 내놨다. “하늘과 땅, 바다가 하나가 된다”면서 ‘트리플스퀘어’란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였다.

2조74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업비에 “청안건설이 누구 회사냐” “돈줄이 어디냐”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때부터 ‘동방주택 이영복’이란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부산 지역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에 한보그룹 정태수가 있다면, 부산에는 이영복이 있다고 할 정도로 전설적인 개발업자”라고 했다. 검찰 역시 지난 10월 2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특경법)’상 거액사기 및 횡령혐의로 이영복 회장을 공개 지명수배했다. 흉악범도 아닌 경제사범을 공개 수배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이에 이영복 회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이영복 회장은 해운대해수욕장 앞 옛 국방부 부지와 한국콘도 자리에 101층 높이 특급호텔 1동과 85층 높이 아파트 2개동을 올리는 해운대관광리조트(브랜드명 엘시티) 프로젝트의 실제 디벨로퍼다. 공식 직함은 없지만 ‘청안건설 회장’ ‘엘시티 회장’ 등으로 불린다. 이영복 회장이 부산에 이름을 알린 것은 해운대해수욕장 앞 오션타워를 개발하면서다.

오션타워는 해운대해수욕장 송림공원 앞에 있는 지하 5층·지상 20층, 568가구, 연면적 6만9000㎡의 대형 주상복합 빌딩이다. 극동건설이 1989년 착공해 1993년 준공한 20년이 조금 넘은 오피스텔이지만 위치가 워낙 좋아 주거용 별장은 물론 오피스텔을 이용한 불법 숙박업도 활황이다. 해운대 일대에서 유명한 한식당과 함께 지하에는 여종업원만 200명이 넘는다는 부산 최대 오션룸살롱까지 갖췄다. 지상 20층에는 혼외자 논란으로 낙마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부산지검 동부지청 근무 시절 자주 드나들었다는 오션스카이라운지도 있다.

이영복 회장은 오션타워를 아지트 삼아 부산의 스카이라인을 그려왔다. 이 회장의 옛 회사인 동방주택은 오션타워 12층에 있었다. 해운대관광리조트 컨소시엄 주간사인 청안건설은 5층, 엘시티 특수목적법인(SPC)인 ‘엘시티PFV’는 오션타워 3층에 각각 입주해 있다. 검찰이 지난 7월 압수수색을 단행해 이 회장의 거액사기 및 횡령혐의 단초를 잡은 곳도 오션타워다. 부산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과거 오션타워에 온천사우나가 있었는데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많이 드나들었다”며 “이영복 회장은 그 사우나에서 부산 지역 기관장들과 교분을 튼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검찰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안은 엘시티의 인허가 과정이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들어서는 85층 높이 2개동의 아파트다. 매년 백사장 유실이 심각한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높이 411m, 101층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것도 얼토당토아니한데 ‘해운대 관광리조트(온천센터)’란 프로젝트에 주거시설인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는 생략되고, 교통영향평가는 약식으로 진행됐다. 선진국 같으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이 같은 일은 실제로 벌어졌다. 101층 호텔과 85층 아파트 2개동은 2019년을 목표로 차곡차곡 올라가는 중이다. 여기에는 296실을 갖춘 롯데호텔 계열 6성급 호텔 ‘시그니엘’을 비롯 레지던스형 콘도미니엄 561실, 아파트(엘시티 더샵) 882가구가 들어선다.

2013년 10월 28일 부산 해운대관광리조트(온천센터) 기공식에 모습을 드러낸 이영복 회장.
2013년 10월 28일 부산 해운대관광리조트(온천센터) 기공식에 모습을 드러낸 이영복 회장.

옛 국방부 소유 땅 아파트

해당부지인 부산 해운대구 중1동 1058의 2 땅은 원래 국방부 소유다. 해운대구청 토지정보과의 한 관계자는 “향토사단인 53사단 126연대가 주둔했던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군수사령부 등 부산 주둔 부대의 대대적 재배치와 맞물려, 그해 9월 부산시 산하 부산도시공사가 넘겨받아 사계절 관광리조트 겸 온천센터로 개발하기로 했다. 대법원 등기부등본상에는 ‘이 재산은 국유재산법 제39조에 의한 용도를 지정한 매각으로 해운대관광리조트(온천센터) 도시개발구역 그 용도로 10년간 사용하여야 한다’고 명확히 부기돼 있다. 난데없이 아파트 882가구가 들어서니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청안건설 컨소시엄이 민간사업자 자격을 획득한 직후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대규모 개발사업에 필수적인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 등 돈줄이 사실상 막혔다. 결국 컨소시엄 측은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징징거렸고, 부산시는 2009년 12월 해당부지를 ‘중심지미관지구’에서 ‘일반미관지구’로 변경해줬다. 사실 엘시티가 들어서는 해운대 미포(尾浦) 일대는 와우산(달맞이고개)을 등지고 해운대백사장과 동백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운대에서 풍광이 가장 수려했던 곳이다. 1966년 부산 최초 특급호텔이자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는 극동호텔(현 팔레드시즈)이 들어선 곳도 이 일대다. 엘시티는 옛 극동호텔 바로 옆이다.

당연히 해운대해수욕장과 맞닿은 해운대 미포 일대는 중심지미관지구로 묶였고, 기반시설에 부담을 주는 아파트와 같은 주거시설은 철저히 불허됐다. 또 해운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건축물 높이는 백사장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60m로 묶였다. 해운대 일대 특급호텔들의 높이가 일률적으로 15~20층 남짓한 것은 이 같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서다. 이에 오션타워 바로 옆의 해운대 그랜드호텔 등 노후한 특급호텔도 그간 중심지미관지구 고도제한을 풀고 사업성이 높은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하려 했으나 계속 불발됐다. 하지만 이영복 회장이 주도한 엘시티는 보란 듯이 엄격한 고도제한을 단번에 풀어 버리며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개발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합법적으로 비켜간 것도 대단한 수완이다. 이는 ‘해운대관광리조트(온천센터)’라는 원래 프로젝트 이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해운대 일원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제주, 경주, 설악(속초), 유성(대전)과 함께 관광진흥법상 국내 최초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관광특구라 함은 ‘관광’ 자가 붙으면 관련 법 적용에 예외를 적용받는 특구다. 또 부산시 조례에 따르면, ‘관광단지 개발’ 항목의 경우 관광진흥법상 사업면적이 15만㎡ 이상일 때만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적시돼 있다. 온천법 역시 15만㎡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도시 개발’ 항목의 경우는 ‘도시개발법’에 따라 사업면적이 12만5000㎡ 이상일 때만 해당된다.

엘시티의 경우 바닥면적을 모두 합친 연면적의 경우 서울 여의도 63빌딩(약 16만㎡)의 4배가 넘는 66만㎡에 달하지만, 사업면적은 6만5000㎡에 불과한 터라 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열외가 된다. 건축물의 초고층화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낡은 규제가 오히려 허점이 된 것. 부산시는 이 같은 비난에 직면해 2012년 1월에야 환경영향평가 관련 조례를 일부 개정, 연면적 10만㎡ 이상인 건축물과 50층 이상이나 높이 200m 이상인 초고층 건물에까지 환경영향평가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하지만 소급적용을 할 수 없는 뒷북 규제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이영복 회장은 환경영향평가에 따른 추가 부담금을 고스란히 아낄 수 있었다.

엘시티에 한해 부동산 투자이민제도가 적용된 것도 사업성을 배가시켰다. 엘시티 측은 2013년 초 “중국 상하이의 모 기업과 1조2000억원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이를 근거로 해운대관광리조트를 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으로 지정할 것을 법무부 측에 요구했다. 투자이민제는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 한해 거주권(F-2)을 부여한 뒤 5년이 지나면 영주권(F-5)을 발급하는 제도다. 법무부는 2013년 5월 엘시티의 콘도미니엄(561실)에 한해 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으로 지정했다. 투자금액은 부산의 지가 등을 고려해 7억원 이상으로 책정했다. 현 황교안 국무총리가 법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단행된 조치다.

기존에 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으로 지정된 곳은 특별자치도인 제주도를 비롯해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평창, 국제공항이 자리한 인천 영종지구, 엑스포를 개최했던 전남 여수 경도 등지다. 투자이민제가 대개 일정 지역에 한해서 설정되는 것에 반해, 해운대관광리조트의 경우 해운대 전체가 아닌 특정 건물에 한해 설정된 것이 이례적이다. 엘시티 측은 투자이민제 지정을 근거로 중국에까지 엘시티를 홍보하며 사업성을 배가할 수 있었다. 2013년 10월 17일, 세계 최대 건설사인 중국 국영 건설사인 ‘중국건축(CSCEC·중건)’과 시공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결국 시공계약을 체결한 지 불과 열흘 만인 같은 해 10월 28일, 이영복 회장은 해운대관광리조트 기공식을 열고 제일 가운데 자리에서 첫 삽을 떴다. 당시 이 회장의 바로 옆으로는 허남식 당시 부산시장이 자리 잡았고, 해운정사(寺)를 창건한 조계종 종정(宗正) 진제스님을 비롯, 배덕광 당시 해운대구청장(현 새누리당 의원·해운대을)과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있는 조성제 BN그룹 회장, 홍보모델인 탤런트 유동근·전인화 부부 등이 참석했다. 2007년 신부국건업이란 업체를 앞세워 다대지구에서 분양사업을 했을 때 철저히 2선에 숨어 있었던 것과 정반대 행보였다.

하지만 2015년 4월 원 시공사였던 중국건축이 돌연 손을 떼고 떠나면서 중국 자본 유치 가능성이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투자이민제 적용을 고스란히 받는다. 주 시공자격만 포스코건설이 열흘 만에 넘겨받았고, 해당 아파트 역시 포스코건설 브랜드인 ‘엘시티 더샵’으로 바뀌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 관련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대목이다. 이 회장은 최순득·최순실 자매와 함께 친목계를 모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엘시티는 시공사 교체 후인 지난해 10월, 재차 착공식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두 번째 착공식은 이영복 회장 대신 이수철 부회장이 주관했고, 내빈으로는 배덕광·이만우(비례) 의원 등이 참석했다.

해운대부터 몰운대까지

이영복 회장은 이런 식으로 해운대를 야금야금 잡아먹을 수 있었다. ‘땅의 해결사’란 별명으로 불린 수서비리 주역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못지않은 독보적수완을 부산 바닷가에서 발휘한 것. 하지만 신출귀몰한 이영복 회장의 배경에 관해서는 출신지 외에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각종 설(說)만 난무한다. 부산 지역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충청도 청주 사람으로 아는데 범일동 조방(조선방직) 앞 나이트 보이부터 시작해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부산 지역의 한 고위 언론인은 “광고 수주 때문에 건설사를 운영하는 이 회장과 만날 일이 가끔 있었는데 씀씀이가 너무 커 위험하다고 생각해 일대일로는 절대 안 만났다”고 했다.

그 사이 해운대부터 몰운대까지 부산의 해안선은 개발업자의 탐욕에 의해 무너져내렸다. 부산 지역 토착 정치권이 이를 방조해왔음은 물론이다. 다대지구 사건 때는 해운대구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운환씨가 “5억원을 받고 용도변경에 힘을 썼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이 회장이 입을 꾹 닫는 바람에 김 전 의원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고 ‘제약사 세무조사 무마’ 등 별건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엘시티와 관련해서는 전·현직 부산 지역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이 공공연히 회자된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경제특보였던 정기룡 전 부산시 정책개발실장이 엘시티AMC의 사장으로 활동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자본의 논리에 충실했던 사업가와 묵인방조한 정치인 중 누구의 죄가 더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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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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