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오산기지에 착륙해 일반 공개된 미 B-1 전략폭격기.
지난 9월 오산기지에 착륙해 일반 공개된 미 B-1 전략폭격기.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독일, 한국과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재협상해야 한다. 이들은 부유한 국가이며 미국은 이들 국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충분한 비용 부담이 없다면 미국은 더는 유럽의 국가들, 아시아의 국가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운동 기간 중 우리나라 등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면서 한 말들이다. 트럼프 당선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안보에 밀려올 태풍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보 이슈 가운데엔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 주한 미군 감축 및 역할 변경, 방위비 분담금 증액, 확정 억제 및 한국 핵무장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가장 관심이 쏠리고 있는 듯하다. 더 중대하고 굵직한 이슈들이 있지만 방위비 분담금이 가장 가까운 시일 내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올 방위비 분담금은 9941억원으로 1조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총 주둔비용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정부가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공식적으로 부담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5년 전인 1991년부터다. 1966년 한·미 정부가 체결한 ‘주한 미군 지위협정(SOFA)’을 근거로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을 1991년 체결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 지위협정 제5조에 따르면 미국 측은 주한 미군 유지 경비를 부담하고 한국 측은 주한 미군 주둔에 필요한 시설과 구역을 제공토록 돼 있다.

1991년 1억5000만달러를 시작으로 방위비 분담금은 매년 2.5~20여% 범위 내에서 늘어왔다. 하지만 1998년 IMF 사태 때는 우리 측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일시적으로 줄었다. 2005~2006년엔 주한 미군 감축으로 비용이 동결되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유효기간 5년의 제9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합의사항이 적용되고 있다. 전전(前前)년도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을 적용해 매년 인상하되 인상률은 4% 미만으로 하고 있다. 예산 편성 및 결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보고도 의무화했다.

방위비 분담금은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로 나뉘어 사용되고 있다. 인건비는 주한 미군에 근무 중인 한국인 근로자 임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총 인건비의 75% 이내에서 제공된다. 군사건설비는 막사·환경시설 등 주한 미군 시설 건축을 지원하는 것이다. 군수지원비는 탄약 저장, 항공기 정비, 철도·차량 수송 지원 등 용역 및 물자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중 군사건설비가 45%(2014년)로 가장 비중이 높고, 인건비(37%), 군수지원비(18%) 순이다.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의 90% 이상이 우리 주머니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인건비는 우리 근로자 임금이기 때문에 100% 국내 경제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군사건설비는 현금으로 지급하는 약 12%의 설계·감리비를 제외하곤 우리 업체가 공사계약, 발주, 공사관리를 하고 있어 집행액의 88%가 우리 경제로 되돌아온다는 설명이다. 군수지원비도 우리 업체가 사업을 시행토록 돼 있어 집행액 100%가 국내 경제에 환원된다는 것이다.

(좌) 패트리엇 미사일 수송을 준비 중인 주한 미군 UH-60헬기. (우) 훈련 중인 주한 미군 M1A2 전차.
(좌) 패트리엇 미사일 수송을 준비 중인 주한 미군 UH-60헬기. (우) 훈련 중인 주한 미군 M1A2 전차.

그러면 우리나라의 방위비 분담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일까. 전 세계에 주둔 중인 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은 국가마다 지원 형태와 산정 방식 등에 차이가 많아 획일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 당국은 대체로 “미군 주둔 비용 중 분담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일본보다는 낮지만 독일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보다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분담금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따지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2013년 정부는 미군 총 주둔비용 중 방위비 분담률이 우리는 42%로 절반 이하지만 일본은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뒤 우리 분담 비율이 조금씩 높아져 지금은 50%에 육박하는 상태다. 하지만 미군 주둔비용의 75%를 직접지원비로 지원하는 등 대부분을 직간접 비용으로 부담하고 있는 일본보다는 낮다. 나토 회원국 중 대표적인 미군 주둔 국가인 독일의 분담 비율은 2000년대 초반 30여%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30% 미만으로 낮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우리 방위비 분담금(9200억원)의 GDP 비중은 0.066%로, 일본 0.064%(2012년 기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은 4조4000억원으로 우리보다 규모는 훨씬 컸지만 경제력에 비춰 보면 우리가 일본보다 무거운 부담을 졌다는 것이다. 2012년 독일의 방위비 분담금은 6000억원으로 GDP의 0.016%에 그쳤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은 그동안 우리와 일본을 비교하며 우리가 주둔비용의 50% 이상 수준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해왔다”며 “일본이 주일 미군 해외훈련 비용까지 부담하는 등 적극적인 동맹비용 부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점을 참고하되 카투사 지원 비용 등 그동안 산정내역에서 빠진 지원 부분도 미측에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우리가 주한 미군 주둔비용의 100%인 2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증액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분담금을 올려주면서 미측에 요구할 것은 정정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종연구소가 지난 11월 10일 개최한 비공개 정책포럼에서 한 참석자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 전략자산 순환배치 보장 등을 떳떳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항공모함 전단과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 비용은 그동안 전액 미측이 부담해왔다. 미 정부와 군 일각에선 이에 대해 “한국의 경제력이 크게 성장했지만 과거 못살 때처럼 아쉬울 때마다 미군에 손만 벌린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여왔다.

또 방위비 분담금의 경우도 우리가 먼저 조바심을 내며 제기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한·미 합의 내용이 2018년까지 유효한 데다 2019년 이후의 방위비 분담금 내용은 2018년부터 협상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내년부터 양국이 줄다리기를 하며 한국 내에서 반미감정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