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1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1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야권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야3당은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와 새누리당의 분당 사태 현실화로 인해 국회 탄핵안 가결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한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 결과를 ‘사상누각’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대면 조사도 거부하면서 촛불 민심도 더 거세지는 듯한 양상이다.

하지만 야당은 탄핵을 추진하면서 중요한 ‘숙제’ 하나를 미뤄 놓았다. 바로 국무총리 문제다.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 대통령 권한은 정지되고 총리가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야당은 현재의 황교안 총리는 권한대행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제안한 ‘국회 추천 총리’에는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선 총리 후 탄핵’ 입장이었던 국민의당도 새 총리 후보자 인선이 탄핵 열기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민주당 논리를 결국 받아들였다. 전혀 불가능해 보였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카드가 수면 위로 부상한 배경이다.

황교안 총리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현 정부를 덮치는 순간만 해도 당장 물러날 것처럼 보였다.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그는 지난 11월 2일 발표된 ‘김병준 총리 내정’도 사전에 전혀 통보받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문자 통보’는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하지만 황 총리는 갑작스러운 신임 총리 내정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바로 이임식 준비를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황 총리 이임식은 김병준 총리 내정이 발표된 지 29분 만에 총리실 직원들에게 통보됐다가 다시 급하게 취소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이후 황 총리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면서도 슬금슬금 제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주요 일간지 1면에 실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폐막 기념 사진은 그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황 총리는 APEC 23년 역사 만에 처음 대통령 대신 참석해 아베 일본 총리와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사이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대한민국의 얼굴은 어쨌든 황교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진이었다. 하지만 이번 황 총리의 APEC행은 초라했다는 후문이다. 정상외교에서 총리의 역할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이 출발 전부터 제기됐고 국내 언론사도 단 한 곳만 수행 취재했다.

황 총리는 앞으로 상당 기간 박 대통령을 대신해 국무회의를 주재할 가능성도 높다. 박 대통령이 주재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던 11월 22일 국무회의도 결국 APEC에 참석한 황 총리를 대신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주재했었다. 황 총리는 APEC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해 업무에 복귀했다.

야당의 고민과 계산

황 총리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진 후에도 나름대로 드러나지 않게 국정을 챙겨왔다는 평을 듣는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발표된 지난 11월 2일에도 오전 8시부터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4차 SBS미래한국리포트’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한 후 바로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해 총리·부총리협의회를 주재하면서 해운·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 총리·부총리협의회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진 후 국정 공백을 막겠다면서 황 총리 주도로 만든 국정 모임이다. 국무총리실에서는 이러다가 황 총리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장수 총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2015년 6월 취임해 1년5개월째 자리를 이어가고 있는 황 총리가 권한대행까지 맡을 경우 헌재 판결까지 최대 6개월과 탄핵 결정 후 대선까지 2개월 등 최장 8개월간 대통령직을 대행할 가능성도 있다. 황 총리를 포함해 대한민국의 역대 총리 44명(서리 제외) 중 2년을 넘겨 일한 총리는 6명에 불과하다.

‘국회 추천 총리’라는 숙제를 일단 미뤄 놓은 야당으로서도 ‘황교안 권한대행’ 카드를 비켜가기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 대안 없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될 경우 새로운 총리 후보자를 뽑을 시간은 탄핵안 발의 후부터 결의되기까지의 기간인데, 이 짧은 기간에 야당이 새로운 총리를 합의해낼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야당이 새로운 총리안을 제시해도 청와대가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이미 청와대는 ‘조건이 달라졌다’며 탄핵을 추진하는 야당이 추천한 총리는 거부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점점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황교안 권한대행’ 카드 앞에서 야당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이럴 바에야 이미 대통령이 제안한 김병준 총리 카드를 받아들이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김병준이 총리가 되면 대통령 의사에 야당이 무릎 꿇는 모양새라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반박한다. 대통령 탄핵을 전제로 ‘황교안 권한대행’을 그냥 받아들이자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탄핵될 경우 총리는 그냥 관리자일 뿐인데 황교안 권한대행으로 가도 별 탈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황교안 권한대행이 무리수를 두면 그때 가서 탄핵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을 수용하자는 입장이 강한 쪽은 추미애 대표와 친문재인계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문재인계의 한 민주당 의원은 “야권이 합의해 김종인이나 손학규 전 대표가 새로운 총리가 될 경우 권한대행으로서 개헌을 추진할 것이 분명한데 그게 친문계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야당이 황 총리에게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그가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부역자’일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공안 통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다. 황 총리는 또 지난 9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제가 이 정부 와서 3년7개월째 되는데, 비선실세란 그런 실체를 본 일이 없다”고 답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실제 황 총리는 공안통 색깔이 짙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평가받는다. 검찰에 30여년간 몸담으면서 대검 공안3과장과 1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집필해 별명이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늦깎이로 검사장에 승진했고,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 화려하게 공직에 복귀했다.

공안통에 대한 거부감

그는 법무장관이 된 후 현 정권의 일등공신 반열에 올라섰다. 2013년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국정원 댓글사건에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하자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채 총장의 혼외자 의혹 보도를 빌미로 감찰에 착수해 채동욱 교체에 앞장섰다. 그는 통합진보당을 ‘암적 존재’라고 부르며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의 최후 변론에서 이정희 통진당 대표와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야당은 그가 이념적으로 경직돼 있을 뿐 아니라 흠도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그의 총리 인준 과정에서 두드러기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과 공직에서 물러난 후 대형 로펌에 재직하면서 17개월 동안 16억원을 벌어들인 것 등을 문제 삼기도 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와 경기고 동기이기도 한 그는 국회에서 친구들과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작년 9월 이종걸 당시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총리 취임 직후 인사차 들른 황 총리를 향해 “저와 총리는 두 번이나 동창이다.(두 사람은 성균관대 법대 동문으로, 이종걸 의원은 나중에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서울대 법대에 다시 입학했다.) 근데 정말 동창이 되고 싶은 게 있다.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확대하는 데 같이 함께하는 동창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지난 11월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황 총리를 향해 “대한민국 실세 총리는 최순실이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그러자 황 총리는 “속단하지 마시라”고 반박했고 이에 대해 노 대표가 “속단이 아닌 지단”이라고 말해 웃음이 일기도 했다.

황 총리는 공직자로서는 꼼꼼하고 성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 후배들도 꼼꼼히 챙겨 평판이 좋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 신학대학을 다닐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과거 황 총리의 부인이 교회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면, 황 총리는 저녁 9시면 잠들어 새벽 2시에 일어나 교회에서 가르칠 성경교재를 만든다고 했다. 그는 선명한 이념성 때문인지 그동안 보수층 일각에서 차기주자로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그가 자의든 타의든 국정을 꿋꿋이 챙기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그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모두 7명이 거쳐갔다. 4·19혁명 직후 허정부터 2공화국의 곽상훈, 백낙준, 박정희, 4공화국의 최규하, 박충훈,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권한대행에 오른 고건에 이르기까지 모두 혼란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국정을 책임졌다. 황 총리 주변에서는 그가 요즘 교회에 더 열심히 나가 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말도 한다. 그가 대한민국의 8번째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수 있을까.

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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