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과거와 달리 강경하고 선명한 자세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가장 먼저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던 안 의원은 최근에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민의당 지도부와 함께 탄핵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중도적이고 온건한 이미지로 통했던 안 의원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대여(對與) 공세의 선두에 서고 있는 것은 보편적 국민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선주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안 의원은 11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대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변호인을 통해 검찰 수사 거부를 선언한 것을 두고 “특검 시작 전에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안 의원은 “모든 불행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는 국민 여론도, 11월의 거대한 시민혁명도, 검찰 수사도 모두 거부했다”며 “대통령이 헌법 파괴에 이어 사법정의까지 짓밟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또 “청와대와 대통령은 범죄사실 은폐 및 증거인멸 대작전에 돌입했다. 나아가 국회와 사법부, 국민을 향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며 “탄핵에 필요한 정치적·도덕적 요건은 이미 갖춰졌으며 탄핵 발의를 더 이상 늦출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미 국민의당 지도부가 당론을 정하기 전부터 박 대통령에 대한 하야와 탄핵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안 의원은 이날 뒤늦게 탄핵 당론을 정한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당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안 의원의 주장에 따라 자체적으로 탄핵 절차에 착수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국민의당은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안 의원의 한 측근은 “박 위원장과 안 의원이 개별적으로 비박계 의원들을 만나거나 통화하면서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며 “이미 당내에서는 탄핵안을 발의하기만 하면 최소한 국회 본회의는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며 여기에는 안 의원의 노력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일찌감치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한 거리 서명운동에 나섰으며, 지난 11월 8일 비상시국 수습을 위한 정치지도자 회의를 제안해, 결국 11월 20일 야권 대선주자들 간의 회동을 성사시켰다. 이 회동을 통해 야3당의 박 대통령 퇴진운동과 탄핵 병행 추진 공조가 사실상 추진력을 받게 됐다. 안 의원이 전방위적인 적극 행보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이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 의원은 11월 23일에는 충북 청주를 찾아 “지금의 정부는 모든 기능을 상실했고, 이 상태가 길어질수록 경제·외교 등 전 분야에서 커다란 불행에 빠지게 된다”며 “박 대통령이 자리를 내려놓고, 여야 합의로 뽑은 총리가 향후 일정을 관리하는 게 지금의 상황을 수습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했다. 또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회에서는 헌법이 규정한 대로 탄핵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안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안 의원에 대해 우유부단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번 결단을 하면 매섭게 밀고 나가는 저력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며 “작년 말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 한 자릿수 지지율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총선에서 약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새누리당의 분당과 함께 커지는 제3지대

안 의원 측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보여주고 있는 강경 행보에 대해 거리에 나선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이 이번 국면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한편,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제3지대를 확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안 의원과 국민의당으로서는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 과정을 통해 새누리당이 갈라질 경우 정치적으로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되면 새누리당이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 이른바 ‘보수 재건(再建)’의 과정을 밟을 수 있지만, 국회가 탄핵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이에 찬성하는 새누리당 비박계 일부와 강하게 반대하는 친박계 핵심은 한 지붕 아래 머물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2일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의 탈당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탄핵 절차가 진행될수록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전 대표와 친문 진영이 사실상 이끌고 있는 민주당보다 국민의당과 손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이들은 일단 원내 제4당을 목표로 별도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다. 안 의원의 핵심 측근은 “안 의원과 그 주변 인사들이 비박계 의원들과 꾸준히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재 원내에 또 하나의 정당을 만들려고 한다”며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상황이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국민의당 한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세력이 야권과 손을 잡는다면 민주당보다 국민의당일 수밖에 없다”며 “대선이 언제 치러질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정국 상황이지만 이번 대선은 기존 여야의 경쟁 구도가 아니라 중도세력이 상당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안 의원이 지난 6월 당의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당 대표직에서 사퇴한 이후 가장 힘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안 의원과 가까운 한 비례대표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안 의원의 말과 행동에 갈수록 자신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외부 인사들과의 만남에도 적극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속적으로 1위를 지키고 있는 데다가 이재명 성남시장이 박 대통령을 향한 강성 발언을 거듭하며 여론의 주목을 받아 안 의원을 위협하는 수치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의원 측은 “이 시장의 약진은 반가운 일이지만 경계할 상황은 아니다”며 “일단 박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최선을 다한 뒤 대선에 대한 고민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도 안 의원 입장에서는 큰 변수다. 12월 말 임기를 마치게 될 반 총장은 여전히 대선 출마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과거에 언급됐던 것처럼 새누리당 친박 후보로 대선에 나서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럴 경우 반 총장의 선택지는 새누리당 이탈 세력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 혹은 분권형 개헌을 통한 ‘외치 대통령’ 도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안 의원으로서는 어느 쪽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야권 핵심 관계자는 “문 전 대표는 당내 경선이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더라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고 본선 경쟁력도 상당하지만, 안 의원은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다른 여야의 중도 성향 정치권 인사들이 모인 제3지대의 후보가 돼야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말부터 정국의 핵심 변수로 주목받게 될 반 총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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