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제2시민청 건립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세텍(SETEC) 부지 내 SBA컨벤션센터.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시가 제2시민청 건립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세텍(SETEC) 부지 내 SBA컨벤션센터.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시가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서울무역전시장) 부지에 제2시민청 개청을 본격 추진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 동남권 제2시민청 건립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시민청 건립을 반길 것으로 예상했던 강남구에서 1년여 넘게 “불필요한 예산 낭비” 등을 지적하며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강남구청에서는 구청이 가진 행정권한을 총동원해 서울시의 제2시민청 건립을 막아왔는데,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지난 10월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강남구에서는 행정심판위 결정의 부당성을 내세우면서 재차 저지 투쟁에 나선 상태다. 강남구청 측은 “세텍 부지는 휴식공간으로 사용할 한가한 곳이 아니다”며 “국가 경제발전과 강남의 세계화를 위해 촌각을 다투어 개발이 필요한 곳”이라고 저지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월 21일 찾아간 세텍에는 ‘서울시장은 세텍 부지 내 시민청 건립 즉각 중단하라’ ‘대표 자치구에 시민청 건립이 웬 말이냐’ 등의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토하는 현수막이 줄잡아 수십 개는 내걸렸다. 인근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세텍 입구에 컨테이너박스를 갖다 놓고 야간당번을 서면서 서울시의 공사 강행을 위한 실력행사에 대비하고 있었다. 제2시민청이 들어올 세텍 부지 내 옛 서울산업진흥원(SBA) 본사 건물에는 ‘공사(재개) 중지 명령 안내문’이란 강남구청장이 내건 노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비상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곧 부술 가건물에 수십억원을 들여 시민청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왜 필요하냐”며 “시민청이 들어서면 민원인들이 몰려와 데모할 것이 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시 김영환 시민소통담당관은 “강남구에서 공사중지명령을 내려서 법적으로 대응을 검토 중”이라며 “땅도 서울시고, 건물도 서울시 것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제2시민청 VS 전시컨벤션센터

세텍 부지 내 SBA컨벤션센터에 들어설 예정인 ‘제2시민청’은 서울시청 지하에 들어선 ‘시민청’에 이어 들어서는 두번째 시민청이다. 서울시는 SBA컨벤션센터 1~2층을 활용해 갤러리, 라운지, 북카페, 이벤트홀 등을 들인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제2시민청’ 건립을 추진하면서 “원거리 이용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지역 간 안배를 고려해 추가 건립한다”고 밝혔다. 결국 서울 강남에 들어서는 ‘제2시민청’ 이후 동북권, 서남권, 서북권 등 권역별로 제3시민청, 제4시민청 등이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실의 한 관계자는 “현재 서남권 금천구에도 시민청 건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강남구에서는 “용도나 목적도 모호한 ‘제2시민청’보다 원래 부지조성 목적에 따라 이곳을 ‘전시컨벤션센터 용도’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해당 부지는 1980년대,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에 따라 양재천 갯벌을 메워 만든 개포지구의 자투리 땅이다. 양재천과 탄천이 합류하는 물굽이로 물살이 거친 ‘학여울’에 있어 아파트를 짓기에 부적합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회의장 준비차 삼성동 ‘코엑스(한국종합전시장)’가 일부 폐쇄되자, 전시공간 부족을 해소할 목적으로 서울시 땅인 이곳에 ‘서울무역전시장(SETEC)’이란 이름의 가건물을 세우고 ‘보조전시장’으로 활용해왔다.

이후 서울시 산하 서울산업진흥원(SBA·옛 서울통상산업진흥원)은 해당부지를 2005년 코트라로부터 넘겨받아 주로 중소기업을 위한 전시컨벤션 용도로 사용했다. 하지만 서울산업진흥원이 2014년 4월, 원래 이름에서 ‘통상’이란 이름을 떼내고, 같은해 6월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 옮겨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미디어산업과는 하등의 관계없는 공공기관이지만,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옛 SH공사)가 조성한 DMC의 용지분양률과 입주율을 높이기 위해 주 사업장인 세텍과는 정반대 위치에 있는 엉뚱한 동네로 옮겨간 것. 서울산업진흥원은 DMC에만 본사를 비롯, DMC홍보관, DMC산학협력연구센터, DMC첨단산업센터 등 무려 4동의 빌딩에 입주해 센터를 운영 중이다. 결국 서울산업진흥원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2시민청’을 입주시킨다는 것이다.

강남구는 2014년 SBA가 떠난 직후부터 세텍 부지 조기개발을 주장해왔다. 3.3㎡(평)당 4000만원이 넘는 금싸라기 강남 땅에 가건물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공간낭비이자 국가적 자원낭비라는 입장이고, 영동대로 축선(軸線)상의 코엑스(COEX)와 옛 한국전력 부지에 들어서는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오는 12월 9일 개통하는 SRT수서역과 연계해 전시컨벤션 용도로 개발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에 서울시는 “향후 개발이 진행되면 비켜주면 그만”이란 입장이지만, 강남구는 “일단 들어오면 ‘알박기’처럼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한다.

강남구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가건물이라 안전 문제 역시 상존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 또한 2015년 11월 ‘세텍 일대 연계 복합개발 방안 수립 연구용역’이란 보고서에서 “1999년 가설건축물로 건축되어 내구연한(10년)의 한계점에 도달해 있으며 재해 상황 발생 시 인명사고가 우려됨”이라고 적시한 바 있다. 해당 건물은 화성씨랜드화재(1999년), 이천냉동창고화재(2008년)와 같이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가건물이다. 전시컨벤션센터를 조립과 철거가 용이한 가건물로 짓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흔하지만, 시청사에 준하는 공공건물을 가건물로 두는 곳은 드물다.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실의 한 관계자는 “안전진단 C등급을 받은 건물은 세텍 본관으로 보강을 해서 B등급으로 올렸고, 해당 건물은 줄곧 B등급(양호)이었다”라며 “비록 가설 건축물이지만 철골로 튼튼하게 지었다”고 말했다.

시민청에 밀려난 시청 업무공간

서울시와 강남구의 싸움에 “제2시민청이 과연 필요한가”란 근원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시민청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 서울시 신청사와 구청사 지하 1~2층을 터서 조성한 공연·전시 목적 공간이다. 지하 1층에는 시민발언대, 기념품가게, 공정무역카페, 간이서점 등이 입점해 있다. 서울시는 당시 ‘관청 청(廳)’ 자가 아닌 ‘들을 청(聽)’ 자를 쓴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시민청은 사실상 노숙자 쉼터로 전락한 상태다. 지하철 1·2호선 시청역과 서울시의회 지하도에 둥지를 틀고 있던 노숙자들이 서울시 신청사와 이어지는 지하도 개통 후 밀려들어와 자리를 깔고 누운 것. 지난 11월 23일 아침, 시민청을 찾았을 때도 초겨울 추위를 피해 몰려든 노숙자들로 가득했다. ‘신발을 벗고 눕거나, 잠을 자는 행위는 삼가시길 바랍니다’란 시청에서 붙여둔 안내문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에 박원순 시장의 시민청 추가 개설 움직임에 서울시 내부에서도 일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가건물에 굳이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한 뒤 ‘시민청’으로 사용할 경우의 실익이 의문시돼서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제2시민청은 시민소통기획관실에서 주도하고 있는데 정작 서울시 경제진흥본부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며 “선거를 생각하는 정치인들하고 국가를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아무래도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SBA는 경제진흥본부 소관이다. 시민청 신설을 주도한 시민소통기획관은 박원순 시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서정협 기획관이 이끌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 출신 박원순 시장이 같은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활동 공간을 마련해주려는 것”이란 평가가 많다. 현재 시민청 자문위원으로는 문화계, 여성계, 사회적 기업 관계자들이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서울시의 방만한 청사 운용은 고질병이다. 서울시 신청사는 전임 오세훈 시장 때 착공해 박원순 시장 취임 후인 2012년 10월 개청했다. 2989억원을 들여 지은 지하 5층, 지상 13층의 건물이다. 총면적은 신청사(7만2032㎡)와 구청사(1만8711㎡)를 합쳐 9만743㎡에 달한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디자인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업무공간을 넉넉히 마련하지 못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무교청사와 청계청사 등 민간빌딩에 지급하는 임대료는 연간 81억원에 달한다. 서울시 구청사마저 서울도서관으로 내주는 바람에 업무공간은 62%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신청사 건립 후 매각하거나 임대해도 됐을 서소문청사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무교동의 옛 코오롱빌딩(더익스체인지서울 빌딩)에 무교청사, 청계천변의 프리미어플레이스 빌딩에 청계청사, 남산의 각각 옛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부속건물로 사용했던 남산제1청사(예장별관)와 제3청사(소방재난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도합 5개의 청사를 운영 중이다. 서울시 각 부서가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어 무심코 본청을 찾은 민원인이 헛걸음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2013년 지하 1·2층에 시민청을 조성한 후 업무공간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콘서트, 전시, 수공예, 중고장난감 교환 등 백화점 문화센터나 구청 문화회관에서 해도 될 법한 잡다한 행사들을 굳이 시청에서 여는 것에 더해, 심지어 지난 5월에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있던 살인사건 피해자의 추모공간까지 시청사로 옮겨왔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시민청 지하 1·2층만 다 비우고 업무공간을 조성해도 인근 무교청사, 청계청사 등에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부서들을 다 불러모아 적잖은 임대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572억원을 들여 서소문 청사에 지하 3층, 지상 7층, 연면적 1만4000㎡ 규모의 빌딩을 증축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밖에 서울시 위임사무를 처리하는 25개 자치구 건물까지 합할 경우 서울시는 부동산 재벌 못지않다. 심지어 일부 구청들은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본청 못지않은 크기와 규모를 자랑한다. 용산구청(연면적 5만8977㎡), 금천구청(3만9435㎡), 마포구청(3만6523㎡), 관악구청(3만2379㎡) 등이다. 종로구청, 광진구청, 서초구청, 동작구청도 청사 신축을 추진 중이다.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서울시나 위탁사무를 처리하는 자치구나 다를 바 없고, 도대체 이 많은 공공청사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공공청사는 ‘빛 좋은 개살구’다. 기공식, 상량식, 준공식에서 테이프커팅을 하면서 생색은 해당 지자체장이 내겠지만 결국 리모델링비를 비롯해 전기료, 수도료, 청사 유지 인력 등 운영비 부담은 납세자인 서울시민들이 낸 주민세, 재산세 등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서울시와 강남구 과연 누가 진정 시민들을 생각하는 것인가?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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