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제구 연산동 부산광역시청 ⓒphoto 부산광역시
부산 연제구 연산동 부산광역시청 ⓒphoto 부산광역시

지난 4·13 총선 때 부산에서 가장 큰 화두는 ‘서(西)부산청사’였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공약한 ‘부산시 서부산청사’ 신축을 놓고 사상구·사하구·북구·강서구 등 낙동강을 사이에 둔 4개 자치구에 출마한 후보들이 일제히 ‘서부산청사’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면서다. 서부산청사 유치전이 워낙 치열해 ‘낙동강 전투’로 불릴 정도였다. 결국 이 같은 유치전은 부산시가 지난 11월 8일 “서부산청사 예정지로 사상스마트시티가 결정됐다”고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리고 부산시는 “2076억원을 투입해 오는 2023년까지 서부산청사를 완공하고 서부산개발본부를 비롯해 건설본부, 낙동강관리본부 등 관련 부서들을 입주시킨다”는 계획을 내놨다.

서부산청사가 사실상 부산시의 ‘제2청사’가 되는 셈이다. 사실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 있는 부산시청은 1998년 입주해 아직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건물이다. 부산시청은 원래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 중앙동 영도대교 바로 앞에 있었다. 하지만 “청사가 낡고 협소해 제2도시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연제구 연산동에 시청과 시의회, 부산지방경찰청이 모두 입주하는 대규모 행정타운을 조성해 1998년 입주했다. 최고 28층 높이로, 연면적 11만㎡가 넘는 부산시청을 조성하는 데만 당시 돈으로 약 2611억원이 들었다. 신청사 준공과 함께 지하철 역명도 기존의 ‘연제역’에서 ‘시청(연제)역’으로 바꿔 달았다. 연산동의 행정타운으로 옮긴 지 채 20년도 안 돼 “서부산 개발을 촉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들어 또다시 수천억원을 투입해 제2청사 건립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부산시 인구는 연산동 청사를 착공한 1994년 390만명을 정점으로 지난해 351만명으로 40만명이나 줄어들었다. 인구가 늘어도 새 청사가 필요하고, 줄어도 새 청사가 필요한 셈이다.

인구 300만명을 돌파하며 제2도시 부산을 위협 중인 인천광역시 역시 신청사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지금의 인천시청은 1985년 입주한 건물이다. 원래 인천시청은 지금의 인천시 중구 관동에 있는 인천 중구청을 시청사로 써왔다. 구(舊)한말 개항기 때 옛 일본 조계에 있던 일본영사관 터에 지은 청사다. 인천시는 “청사가 낡고 협소하다”면서 구월동에 인천시청과 시의회, 인천시 교육청과 인천시 중앙도서관까지 함께 입주할 수 있는 대규모 행정타운을 조성해 옮겼다. 인천시 행정타운 안에는 테니스장 1면을 비롯해 운동장도 2면이나 있다.

하지만 구월동 행정타운으로 이전한 지 30년이 갓 지난 지금 또다시 “업무공간이 부족하다”는 똑같은 이유로 최고 37층 높이의 신청사 신축 방안을 들고나온 것. 신청사 신축을 놓고 큰 장이 벌어지자 인천시 서구와 남구 등에서는 서로 자기 구로 시청을 옮겨달라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특히 인천 서구청장(재선) 출신으로 서구를 지역구로 둔 이학재 의원(새누리당)은 지난해 “인천 서구로 인천시청을 옮겨달라”며 무려 9일간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학재 의원은 앞서 2010년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서구에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을 원안대로 신축하라며 10일간 단식하기도 했다.

결국 인천시는 지난 7월 구월동의 현 시청부지에 신청사를 새로 짓기로 했지만, 대신 구월동 행정타운 안에 있던 인천교육청을 서구에 신축해 옮기기로 방침을 정했다. 인천시는 신청사 신축과 교육청 이전 신축 등에 최대 4179억원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천시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인천 서구에 무리하게 주경기장을 신축하면서 빚더미에 올라 17개 광역지자체(특별시·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재정위기 주의단체’로 지정된 지자체다.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이다. 인천시 측은 “신청사를 신축해 인천시 본청 외에도 송도 미추홀타워와 G타워 등에 분산 배치돼 있는 부서들을 신청사로 통합할 방침”이라고 했다.

사실 민원인이 많이 찾는 대부분의 업무를 자치구와 자치군에서 위임처리하는 광역시가 제2청사를 짓겠다는 것은 난센스다. 게다가 광역시는 면적이 넓고 인구가 분산돼 있는 도(道)와 다르다. 상대적으로 면적은 좁은데, 인구는 밀집돼 있고, 교통망이 잘 연결돼 있다. 울산광역시를 제외하고는 지하철까지 갖추고 있어 대부분 거리에 1시간 이내 접근이 가능하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제2청사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헐려버린 근대 문화재 시청사

실제 각각 제2청사와 신청사 신축을 추진 중인 부산시와 인천시의 경우 각각 16개와 10개 자치구와 자치군을 산하에 두고 있다. 심지어 부산은 인구 4만명에 불과한 중구, 인천은 인구 7만명에 불과한 동구 등 초미니 자치구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굳이 시청사의 업무공간이 부족하다면 초미니 자치구를 통폐합한 뒤 구청사를 별관으로 활용해도 충분하다.

청사를 이전 신축하는 과정에서 근대 문화재적 가치를 지낸 옛 청사를 아파트 재건축하듯 헐어버리는 것도 문제다. 시청사는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이지만 아무 생각없이 헐려 나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산 중구 중앙동에 있던 옛 부산시청이 대표적이다. 영도대교 앞에 있던 옛 부산시청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 지어진 ‘부산부청(府廳)’ 건물로, 6·25전쟁 때 임시수도인 부산으로 피란온 몇몇 정부 중앙부처들이 입주했던 역사적 건물이었다. 부산시는 ‘일제 잔재’라는 그럴듯한 낙인을 찍어 옛 부산시청을 철거해 버렸다. 정작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헐어 버린 옛 부산시청 자리에는 일본계 자본인 롯데그룹의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서 있다. ‘일제 잔재 청산’이 결국 신청사 신축 등 건설 공사를 위한 구실에 불과했던 셈이다.

광주광역시는 2004년 1600억원을 들여 신축한 서구 치평동 상무지구의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광주 동구 계림동의 무등로에 있던 옛 광주시청을 민간기업인 금호산업에 팔아버렸다. 옛 청사는 조선시대 때 농업용 인공호수였던 경양지(池)를 매립한 터에 세운 건물로, 1969년부터 30년 가까이 광주시청으로 써왔다. 이후 재차 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광주계림점이 옛 광주시청 자리에 들어서 있다. 그보다 앞선 일제강점기 때인 1924년 지은 동구 광산동 금남로에 있던 광주시청(옛 광주면사무소)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광복 후에도 증축을 거듭해 1969년까지 광주시청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헐리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서울시청도 구청사의 태평홀과 후일 증축된 날개 부분이 헐렸다.

그나마 대구광역시의 경우 업무공간 부족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9월 대구시 북구 산격동의 옛 경북도청을 시청 별관으로 지정하고 일부 부서들을 입주시켰다. 원래 산격동에 있던 경북도청이 지난 3월 경북 안동의 허허벌판에 기왓장을 올린 대궐 같은 신청사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대전광역시의 경우도 1999년 대전 둔산동에 신청사를 지어 이전하면서 중구 중앙로에 있던 옛 대전시청을 대전 중구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옛 대전시청 바로 옆의 옛 충남도청(등록문화재 18호)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울산광역시의 경우도 2009년 신청사를 준공하면서 옛 시청사를 그대로 별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구미(歐美) 선진국에는 100년 이상된 관공서 건물들이 즐비하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이런 시청을 볼 수 있을까.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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