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 전 차관은 취임하자마자 ‘스포츠 4대악 척결’을 부르짖었다. 2014년 5월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 개소식에 참석한 김종 당시 차관(오른쪽). ⓒphoto 뉴시스
김종 전 차관은 취임하자마자 ‘스포츠 4대악 척결’을 부르짖었다. 2014년 5월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 개소식에 참석한 김종 당시 차관(오른쪽). ⓒphoto 뉴시스

‘체육 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내 스포츠 전담 차관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향후 5년은 대한민국 스포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스포츠를 통한 복지의 확대 및 일자리 창출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매우 많다. 전문성을 겸비한 체육 전담 차관의 리더십하에 장기적인 체육 정책의 비전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정책 수행이 이뤄져야 한다.’

2013년 1월 22일자 헤럴드경제에 실린 칼럼의 일부다. 자기예언성 주문이었을까. 칼럼을 쓴 이는 8개월 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자리에 올랐다. 바로 김종 전 차관이다.

김종 전 차관은 문체부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스포츠 분야에선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1961년생, 서울 출신으로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80학번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웨스턴일리노이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뉴멕시코대학으로 옮겨 1991년 스포츠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스포츠경영학으론 국내 1호 박사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구단에 입사했다. 후에 본인 입으로 “OB맥주 사장님이 특채로 뽑아줬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구단에서 일할 당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기획·미디어 홍보 분야 일을 했는데 국내 구단 최초로 ‘미디어가이드북’을 만드는 등 미국에서 보고 들은 ‘신문물’을 들여와 좋은 평가를 듣기도 했다.

1994년 구단을 떠나 수원대 체육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2005년 모교인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로 적을 옮겼다. 그는 꽤 열정적인 교수였다. 수원대 재직 시절엔 10권이 넘는 스포츠 관련 책을 썼거나 번역했고 논문도 여러 편 발표했다. 한양대로 옮긴 이후엔 외부활동에 열심이었다. 임원진으로 참여했거나 자신이 직접 만든 단체만 해도 열 군데가 넘는다. 이 기간엔 논문은 몇 편 안 썼는데 이 중 두 편이 스포츠토토를 다룬 논문이다. 각종 토론회에서 그를 자주 마주친 스포츠계 인사는 딱 잘라 “스포츠계의 대표적인 관변 교수, 폴리페서였다”고 평가했다.

동계스포츠 ‘대부’로 불리는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오른쪽)와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 2010 밴쿠버올림픽 당시 빙상연맹 부회장을 맡아 한국팀이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 성적(전체 5위)을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photo 뉴시스
동계스포츠 ‘대부’로 불리는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오른쪽)와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 2010 밴쿠버올림픽 당시 빙상연맹 부회장을 맡아 한국팀이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 성적(전체 5위)을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photo 뉴시스

김종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막걸리 마셔”

김씨는 어떻게 차관이 됐을까. 그와 박근혜 정권 사이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었던 이재만씨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다. 김씨와 이재만 전 비서관은 한양대 선후배 사이다. 이재만씨는 경영학과 85학번이다. 이번 정권 내 한양대 인맥의 구심점으로 지목되어왔다. 김씨와 김기춘 전 실장과의 인연은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김씨 스스로 “김 전 실장이 한국야구연맹(KBO) 총재를 하던 시절부터 서로 알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기춘 전 실장은 1995년부터 1996년까지 KBO 총재를 맡았다.

김씨는 선대(先代)부터 청와대와 인연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출처는 김씨 본인이다. 차관 취임 직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동문들과의 사적인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청와대 부근에서 살았다. 우리 집이 잘살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 번씩 동네 유지들을 청와대에 초대해 막걸리를 함께 마셨다. 이때 아버지가 박 대통령 옆에 앉곤 했다.”

그의 동생도 스포츠 분야 교수다.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김종환 교수다.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웨스턴일리노이대 석사와 뉴멕시코대 박사 등 형과 똑같은 길을 밟았다. 김 교수는 서울 조계사 부근에서 일식집을 운영했다. 접대나 모임의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김씨의 2015년 12월 업무추진비 지출내역에도 이 식당이 등장한다. 지난 9월 잠정적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기춘 전 실장이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의 주장에 신빙성이 실리는 이유는, 안 의원이 김종환 교수와 함께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12년째 교수로 재직 중이고, 현재는 휴직 상태다.

취임 후 부처 파악을 마친 김씨의 일성은 ‘사정’이었다. 2013년 10월 ‘체육단체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 방안’이라는 걸 발표한다. 2014년 1월에는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 ‘4대악 근절 대책위원회’도 출범했다. MB 정권 시절 ‘왕차관’으로 통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이후 오랜만의 실세 차관 등장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체육계의 비정상적 관행을 열거하며 ‘체육계 입시비리’를 들었다는 점이다. 이후 1년간 체육계에 지겹게 울려퍼진 ‘4대악 근절’ 슬로건이 발표된 직후인 2월, 소치올림픽이 개막했다. 올림픽 기간 중 뜻밖의 문제가 불거졌다. 러시아 선수로 출전한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가 너무 잘한 게 문제가 됐다. 안 선수의 러시아 귀화에 뒷얘기가 있지 않냐는 의혹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 와중에 대통령이 ‘체육계 부조리’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2월 13일 문화체육관광부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였다. 대통령이 특정 선수의 선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언급한 것도 기이했지만, 타국에서 올림픽 경기에 매진하고 있는 대표팀 선수와 감독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김씨는 “올림픽이 폐막하면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을 특별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한국의 주력 동계스포츠 종목은 모두 빙상연맹이 관할한다.

이후 안현수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국가대표 탈락과 귀화에 비리나 뒷얘기가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기자가 당시 복수의 쇼트트랙 관계자들에게 취재를 한 결과도 같았다. “안현수는 부상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떨어졌다. 한국 국가대표팀에 있었던 코치진이 러시아 대표팀으로 스카우트되어 가면서 안현수 선수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권했다. 좋은 조건을 제시받은 안현수 선수는 제2의 선수생활을 러시아에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는 진술이 여러 관계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왔다.

소치올림픽이 끝나자 대대적인 감사가 시작됐다. 빙상연맹의 대표팀 선발과정부터 예산집행 내역까지 조사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은 나오지 않았다. 김씨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겨누고 있는지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빙상연맹 부회장이었던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였다. 별다른 게 나오지 않자 김씨는 빙상연맹을 오래 출입한 체육부 기자에게 전화해 “전명규의 비리를 알면 얘기해 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정권 차원의 압박이 짙어지자 전 교수는 결국 2014년 5월 부회장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전명규가 어떤 인물인가. 설명이 필요 없는 타고난 승부사다. 쇼트트랙 감독으로 네 차례의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만 11개를 따왔다. 전이경·김동성·안현수 모두 전 교수가 기른 선수다. 스포츠 지도자의 여러 유형 중 국제경기에 최적화된 지도자에 속한다. 쇼트트랙을 현재처럼 한국 전용 메달 텃밭으로 만들었다. 빙상연맹 부회장을 맡은 후엔 스피드스케이팅까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렸다. 밴쿠버올림픽 빙속 3총사 이상화·모태범·이승훈이 그의 제자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연아의 밴쿠버 금메달 뒤에도 전 교수가 있었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김연아의 훈련을 독려했다. 다년간 국제대회를 다닌 만큼 국제적 인맥도 넓다. 기자는 밴쿠버올림픽 당시 링크 뒤편에서 전 교수가 어떻게 대회에 임하는지 직접 확인했다. 국제빙상연맹(ISU) 관계자들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연맹 인사들이 전 교수만 보이면 다가와 ‘빅 존(Big John)’이라 부르며 말을 걸어왔다. 국제심판이나 기술위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게 얼마나 선수진에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터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동계 종목에서 이런 국제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인사는 전 교수 외에는 없다. 산이 높으면 그림자도 긴 법. 단점도 거론된다. 과거 쇼트트랙 내에 ‘파벌’이 생겼던 배경에 전 교수의 카리스마적인 지도 스타일이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지난 6월 10일 크로아티아 두브로니크에 전 세계 ISU 관계자들이 모였다. 회장 이하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은 이 자리에서 신임 집행위원에 선출됐다. 크고 작은 빙상계 사안을 결정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13조원을 들여 평창올림픽을 여는 한국엔 특히 중요한 자리다. 원래 여기엔 전 교수도 함께할 예정이었다. 쇼트트랙 기술위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내정되어 있었다. 각 국가의 연맹이 선거 출마자를 추천하는데, 빙상연맹은 4월 22일 전 교수를 추천하기로 의결했다. 그러던 것이 불과 3일 만에 없었던 일로 되어 버렸다. 빙상연맹은 쇼트트랙 기술위원 후보로 아무도 추천하지 못했다. 전 교수가 출마했으면 확보될 게 거의 확실한 자리였다. 익명을 요구한 빙상연맹 고위 임원은 “문체부 차원의 압력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이 말이 맞다면 문체부는 전 교수 한 명을 찍어내기 위해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김종은 왜 전 교수를 겨냥했을까. 복수의 빙상 관계자들은 “전 교수가 빙상연맹 부회장으로 버티고 있었다면 최순실과 장시호가 적어도 동계스포츠와 평창올림픽 관련 예산은 쉽게 못 건드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간 빙상연맹 예산 집행에 관여하고 국제대회를 치러 본 전 교수의 문제 제기에 번번이 직면했을 거란 얘기다. 당장 문제가 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도 기존에 빙상연맹이 하고 있던 빙상 꿈나무 사업을 그대로 가져간 사업을 하고 있다. 당사자인 전 교수는 “할 말은 많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키워드

#이슈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