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우)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photo 연합
(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우)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photo 연합

지난 11월 8일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캐나다 이민국 사이트가 한때 마비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이트는 캐나다 이민이나 시민권 신청 방법 등을 안내한다. 이 사이트가 다운된 이유는 대선 결과에 절망한 상당수 미국 국민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고려하면서 접속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구글에서 ‘캐나다로 이민 가는 방법(How to immigrate to Canada)’에 대한 검색이 급증하기도 했다.

캐나다가 일부 미국인에게 이민의 최적지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그동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는 반대 방향으로 각종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4일 취임한 트뤼도 총리는 이민 문제만을 놓고 볼 때도 ‘개방’이라는 원칙을 적극적으로 내세워왔다. 캐나다는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총 32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이는 1971년 이래 연간 유입된 이민자 중 가장 많은 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수용한 시리아 출신 난민은 3만명이나 됐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시리아 난민 출신 이민자와 대화하고 있다. ⓒphoto 트뤼도 페이스북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시리아 난민 출신 이민자와 대화하고 있다. ⓒphoto 트뤼도 페이스북

2017년 이민자 30만명 받기로

캐나다는 2017년 이민자 수용 목표도 올해와 같은 30만명으로 확정했다. 존 매컬럼 캐나다 이민 장관은 “내년에 수용할 이민자 30만명은 미래 성장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며 “인구 구조를 감안할 때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정책”이라고 밝혔다. 매컬럼 장관은 올해 16만6000명 수준이었던 숙련노동자, 돌봄노동자 등 취업과 투자 목적의 경제 이민자가 내년에는 17만2500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귀화한 캐나다 시민권자와 배우자, 자녀 등을 수용하는 가족 이민은 8만4000명으로 책정됐다. 나머지는 난민과 인도주의적 이민으로 채워진다. 캐나다는 2100년까지 인구를 현재(3500만명)보다 3배 정도 늘릴 계획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침체하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인구 증가가 필수 요소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은 테러 위험 등을 이유로 난민이나 이민자를 미국에 입국시키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트럼프는 “시리아 난민들 중 상당수는 위험한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또 불법 이민자 1100만명 중에서 범죄 경력이 있는 200만~300만명을 미국에서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인종과 종교, 문화, 언어 등이 융합된 개방적인 이민자들의 국가라는 말을 들어왔다.

트럼프의 입장은 이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뜻으로 ‘멜팅폿(melting pot)’이라고 불려왔는데, 이제는 캐나다가 이 이름을 갖게 된 셈이다. 실제로 캐나다 정부는 12월 1일부터 멕시코인에 대한 비자 제한을 완화했다. 캐나다 이민국은 멕시코인들에게 전자여행 허가증만 구비한다면 캐나다를 방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멕시코인들의 입국을 통제하겠다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정책이다. 트뤼도는 “멕시코인들이 캐나다를 보다 쉽게 방문할 수 있으면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비자 완화의 취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당선으로 멕시코인들이 대거 캐나다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미 대륙에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그동안 형제국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캐나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회원국으로서 군사동맹을 맺어왔다. 캐나다는 또 미국과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를 만들어 공동의 안보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캐나다의 최대 교역상대국은 미국으로, 매일 양국 국경을 통해 23억달러 상당의 상품과 서비스가 오가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캐나다 수출의 76.8%, 수입의 53.2%를 차지했다. 세계 최장의 국경선(8893㎞)을 맞대고 있으면서 양국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프로야구와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스포츠 경기도 같은 리그로 운영되고 있다. 양국 국민들도 여권만 있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가 앞으로 상당히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무역 정책을 보면 트럼프와 트뤼도는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앞으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캐나다에 대해서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자고 주장해왔다. NAFTA는 미국·캐나다·멕시코가 1994년 맺은 자유무역협정으로 3개국 간의 관세를 없애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첫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할 계획이다. 트럼프는 또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코노미스트의 표지 그림. ‘자유의 여신상’ 머리에 캐나다를 상징하는 단풍나무 잎을 씌웠다.
이코노미스트의 표지 그림. ‘자유의 여신상’ 머리에 캐나다를 상징하는 단풍나무 잎을 씌웠다.

CETA·FTA… 무역장벽 확 낮추는 트뤼도

반면 트뤼도는 지난 10월 30일 캐나다와 EU 간의 자유무역협정인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을 체결했다. CETA는 EU의 입장에서 주요 7개국(G7)과 맺는 첫 FTA이고, 캐나다의 입장에선 NAFTA 이후 최대 FTA다. 이 협정 체결로 양측은 상호 교역 품목의 99%에 대해 관세를 없앤다. 관세 철폐로 연간 무역액이 120억달러(13조7500억원)가 증가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캐나다는 5억80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EU 시장에 접근할 기회를 얻게 됐다. 트뤼도는 직접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EU·캐나다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CETA에 서명하기도 했다. 트뤼도는 “캐나다는 무역에 의존해온 나라”라면서 “앞으로 CETA가 두 지역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트뤼도가 EU와 CETA를 체결한 것은 트럼프의 뒤통수를 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뤼도는 중국과의 FTA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45%의 상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노선이다. 트뤼도는 지난 9월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FTA 추진에 합의했다. 트뤼도는 또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가입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트뤼도는 개인적으로도 중국과 인연이 깊다. 그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2000년 작고)는 1968년 총리 취임 이후 서방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1970년 중국과 수교했으며, 1973년 캐나다 총리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은 트뤼도가 적극적으로 자국과의 관계 강화 의사를 보이자 이에 화답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9월 23일 캐나다 오타와를 방문해 트뤼도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오는 2025년까지 교역량을 두 배로 늘리는 등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은 미국과 EU에 이어 캐나다의 3대 교역 대상국으로 지난해 양국 간 교역액은 858억달러에 달했다. 양국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캐나다산 카놀라 수입제한 및 소고기 수입금지 조치도 해결됐다.

중국은 2003년 광우병 발생 이후 수입을 금지해온 캐나다산 육우 수입을 전면 재개하고 품질 문제를 들어 제한해온 캐나다산 카놀라 수입도 2020년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식용유 원료인 카놀라는 캐나다의 주요 농산물 수출품목 중 하나로 국내 생산량의 42%가 중국에 수출된다. 양국 관계는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히 껄끄러웠다. 2009년 당시 스티븐 하퍼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왜 이제야 왔느냐”면서 미국만 중시하던 캐나다를 기자들 앞에서 타박하기도 했었다. 하퍼 총리는 2012년에도 중국을 방문해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트뤼도는 트럼프가 추진할 외교 정책에도 반기를 들고 있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그늘 밑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던 캐나다가 독자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뤼도가 지난 11월 15일 쿠바를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트뤼도의 쿠바 방문은 캐나다 총리로는 1998년 이래 18년 만에 처음이다. 지금까지 캐나다와 쿠바와의 관계는 서방 국가로서는 비교적 돈독하게 이어져왔다. 지난해 쿠바를 방문한 캐나다 관광객은 130만명에 달해 외국인 방문객 중 최다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국 간 교역은 매년 10억달러를 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지난 9월 유세 중 “오바마 정부가 체결한 미국과 쿠바 간 관계복원 협상은 카스트로 정권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이라면서 “쿠바가 정치적 자유 보장 등의 조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에 대한 포용정책에 따라 2014년 12월 쿠바와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이후 지난 2월 두 나라를 오가는 정기 항공노선까지 재개통했으며, 지난 3월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미국·쿠바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양국 관계 개선에 부정적이다. 트럼프는 지난 11월 25일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하자 “피델 카스트로는 60년간 자기 국민을 억압한 야만적인 독재자”라고 비판했다.

기후변화·양성평등도 제각각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두 지도자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트뤼도는 지난해 말 파리기후변화협약 발효에 맞춰 각 주정부가 탄소세나 배출 거래세를 오는 2018년까지 도입토록 하되 이를 시행하지 않는 주에 대해서는 연방정부가 t당 10캐나다달러(8500원)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탄소가격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 특히 트뤼도는 오는 2030년까지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조기 퇴출시키기로 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내에 개발되지 않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의 가치가 50조달러에 달한다며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트럼프는 또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트뤼도와 트럼프는 양성평등 문제에서도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 트럼프는 대선과정에서 과거 여성비하와 음담패설 및 성추행 등의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당한 비판을 받았었다. 당시 트뤼도는 미국 대선에 관한 언급을 피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트럼프를 직접 비판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으나 여성에 관한 견해를 밝혀 트럼프와 자신을 대비시켰다. 트뤼도는 “성추행 등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한다는 나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고 밝혔다. 트뤼도는 2014년 자유당 대표 시절 다른 야당의 여성 하원의원을 성추행한 자유당 소속 의원 2명을 출당 조치한 바 있다. 트뤼도는 총리로 취임하면서 장관 30명 중 15명을 여성으로 임명해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게다가 장관 중에는 장애인, 성소수자, 시크교도, 원주민, 난민 출신도 포함됐다. 당시 트뤼도는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2015년이기 때문이다”라고 단순명쾌하게 대답했다. 트럼프는 아직 장관들을 모두 임명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백인 남성과 부자, 군 출신 등을 기용하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트럼프는 백인우월주의자란 비판을 들어온 극우 인터넷매체인 ‘브레이트 바트’ 창립자인 스티브 배넌을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지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신고립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트뤼도의 캐나다가 관용, 개방, 다양성, 자유무역 등에서 국제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캐나다를 “마지막 남은 자유국가”라면서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나무 잎을 머리에 쓰고 하키 채를 겨드랑이에 끼운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표지 그림으로 제시했다. 트럼프의 미국이 이민 규제와 보호무역에 나선다면 자유의 여신상을 갖고 있을 자격이 없다고 비꼰 것이다. 아무튼 이민자들이나 난민들에게 ‘아메리칸 드림’보다 ‘캐나디안 드림’이라는 말이 더욱 현실적인 목표가 될지도 모른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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