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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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은 위기상황이 닥치면 덤불에 머리를 처박고 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결국 천적의 먹잇감이 된다. 나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라는 현실에 분노와 수치심을 느꼈다. 당내 주류의 무모함, 비주류의 나약함을 지켜보는 건 고통 그 자체였다.”

3선 의원인 김용태(48)는 최순실로 인해 국정이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며 연일 통음했다고 한다. 그는 새누리당 탈당을 앞두고 결국 병원신세를 졌다. 지난 1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탈당 과정에서 느낀 소회와 새로운 보수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김 의원은 “8년 이상 몸담았던 새누리당을 떠나기에 앞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뇌했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오히려 홀가분하다. 울타리(정당)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지역 주민 열에 아홉은 나의 용기 있는 행동을 격려해줬다.”

김 의원의 탈당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만큼이나 민심(民心)을 제대로 읽지 못한 집권당의 실망스러운 모습에서 비롯됐다. 그는 박 대통령이 ‘강남 주부’ 최순실에게 국정을 농단할 ‘권한’을 준 사실에 경악했다. 시민들은 매주 광화문 거리로 나와 박 대통령을 규탄하는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도 이정현 대표 등 친박 지도부는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박 대통령의 홍위병으로 나섰다.

당내 비주류는 ‘대통령 탄핵’ ‘탈당’이라는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김무성 의원을 위시한 비박계 대표 인사들은 주류와 타협점을 찾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김 의원은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집권당을 뛰쳐나왔다. 지난 11월 22일 김 의원은 남경필 경기지사와 함께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1월 말 여야 정치권에서 “새누리당 탈당 세력은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20명 선”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최소 10여명의 국회의원이 탈당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에는 원내 인사 대신 남 지사가 함께했다. 새누리당 구성원이 가진 체질적 한계, 즉 무사안일주의 때문에 비주류가 탈당대오에서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 11월 중순 최대 탈당 인원은 몇 명까지 얘기됐나. “비주류가 친박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할 때 많게는 10명 이상 탈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내가 탈당을 결심한 건 11월 17일이었는데, 동반 탈당을 저울질하던 인사들 때문에 22일이 되어서야 기자회견을 했다.”

- 혼자 탈당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중진 N의원은 탈당파 19명을 모으면 자신도 탈당하겠다고 했다.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되면 탈당하겠다는 건데, (탈당) 안 하겠다는 얘기로 들렸다. H의원은 동료 의원을 설득해 탈당대오에 합류시키겠다고 며칠 말미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한발 뒤로 물러섰다. PK지역 J의원도 주류와의 관계 때문이었는지, 발을 뺐다. 수도권 K의원은 동반 탈당할 생각이었으나 지역주민들에게 먼저 동의를 받겠다고 했다가 지지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됐다. 또 다른 중진 J의원은 해외에서 귀국하자마자 남경필 경기지사가 공항으로 마중 나가 탈당 여부를 타진했으나 이미 마음이 바뀐 뒤였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중진 Y의원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홀로 탈당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중 남 지사가 22일 동시 탈당하자고 해 둘만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

- 비주류의 대표 격인 김무성 의원이 탈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김 의원과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당에 잔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김 의원과는 ‘당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많은 대화를 나눠왔다. 공감대는 형성했으나, 아쉽게도 행동에 나서는 건 주저했다.”

- 새누리당 의원들이 탈당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뭔가. “보수당 구성원은 감당하기 힘든 사태가 불거졌을 때 이걸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는 내성이 없다. 보수당에 그런 유전자(DNA)가 없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내부에 갇혀 집단사고로 일관하는 문제가 있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촛불이 사그라들 것으로 본 것 같다. 박 대통령이 국회로 공을 넘긴 꼼수에 대해 민심이 어찌 반응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 탄핵이 가결된 후 어떤 정치지형의 변화를 예상하나. “여권 지형의 파괴가 필요하다. 탄핵에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이들이 한 울타리에 있을 수는 없다. 새로운 보수를 지향하는 세력은 박근혜 사단과 결별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분당 과정에서 가보지 않을 길을 간다는 공포와 정치적 미련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다면 국민이 다시 회초리를 들게 될 것이다.”

- 탄핵이 되면 곧바로 대선 국면이 시작될 것 같다. “친박 중심의 극보수와 새로운 보수, 문재인, 안철수의 4각 구도로 대선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내년 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국민 메시지를 잘 내놓는다면 변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보수 진영이 지리멸렬할 경우 장기간 패권을 잃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현재로선 야당 대선주자들이 강력해 보인다. “탄핵 국면에서 보수 쪽 후보들은 용기 있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반면 이재명 성남시장은 국민적 분노의 출구로서 부상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큰 실수를 하지 않고 국면을 넘겼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다. 그동안 정치력 부재 등 모멸적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성찰과 학습을 많이 한 것 같다. 문재인 전 대표와 한번 붙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 ‘국정조사’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곤욕을 치렀다. “내가 지난 10월 당내에서 처음으로 최순실 사건을 거론한 이유는 삼성 때문이다. 삼성에 다니는 지인과 10월 중순 저녁을 먹을 때 내부 분위기를 물어봤다. 그 친구는 ‘절망적’이라고 답했다. 이건희 회장은 일본 기업을 이겨 보자며 직원들과 미친 듯이 일했는데, 이재용 체제에서는 돈 안 되는 사업은 버리고 주가(株價)에만 신경을 쏟는다고 했다. 갤럭시노트7 등 돈 되는 사업에 제동이 걸린 마당에, 부회장은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나라가 어려운 판에 삼성마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최순실 모녀를 지원한 삼성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기존 정당과 차별화된 새 보수세력을 결집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다. 인구절벽과 정의의 문제에 대해 획기적 해법을 담은 소책자를 내년 초 발간할 예정이다. 두 가지 화두는 내년 대선에 출마할 대권주자가 반드시 국민에게 답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 보수는 강남 보수, 재벌 보수, 박정희 보수만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사회 나가 제 몫을 해라’ ‘애 낳고 가족을 돌보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나라를 지킨다는 자세를 가져라’ 등 가정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게 우리 사회 일반 보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강남·재벌·박정희 보수로 대변되는 세력이 최순실 게이트로 민낯을 드러냈다. 이들은 사태 수습도 가로막고 있다.”

김 의원은 “야당 일부 세력은 주도면밀하게 보수의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면서 “새로운 보수가 이런 시도를 막고 미래를 위한 답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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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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