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1차 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1차 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 ⓒphoto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可決)을 전후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강성(强性) 발언이 거듭되고 있다.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는 현 상황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문 전 대표가 연일 ‘국가 대청소’ ‘권력기관 개조’ ‘재벌개혁’ ‘언론개혁’ 등의 발언을 쏟아내면서 야권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직후인 11월 초까지만 해도 ‘거국내각’ ‘대통령 2선 퇴진’ 등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주장을 거듭했던 문 전 대표는 지금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 전 대표는 12월 13일 ‘최순실 게이트’와 박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잠시 중단됐던 대선 싱크탱크 ‘국민성장 정책공간’의 첫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한완상 상임고문, 박승 자문위원장, 조윤제 연구소장, 조대엽 부소장과 전·현직 의원 30여명이 참석했다. 본격적인 ‘세몰이’가 시작된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촛불혁명은 구시대를 청산하고 구체제를 혁파할 절호의 기회이자 대한민국을 완전히 새롭게 바꿀 계기”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비전은 공정국가, 책임국가, 협력국가”라고 했다. “부정부패도 대청소하고 반칙과 특권은 반드시 응징받아야 한다”며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도 주장했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에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하루빨리 퇴진하라고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또 “어려운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이른바 ‘박근혜 리스크’를 하루빨리 해소하고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 비문(非文)계와 새누리당 비박(非朴)계, 그리고 국민의당 일부 의원이 교감하고 있는 개헌(改憲)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했다. 문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개헌 논의에 대해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오래된 적폐들에 대한 대청소,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 논의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다.

마침 이날 야권 비문 세력들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에 모였다. 민주당 김종인·박영선 의원 등과 국민의당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 박지원 원내대표, 안철수 의원 등이 참석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정진석·주호영·강효상 의원 등이 행사장을 찾았다. 대부분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로 여야에서 40여명이 모였다. 손 전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개헌 세력을 모아 ‘국민주권 개혁회의’(가칭)를 만들겠다”고 했다. 손 전 대표 측 인사는 “친박, 친문을 뺀 세력이 함께하는 창당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다. 개헌을 경계로 해서 야권이 친문과 비문으로 명확하게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비박계 여권 인사도 개헌 관련한 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급박한 정계 개편의 가능성을 관측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비선 논란 때문에 자신 판단 중시”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은 최근의 강경 행보는 대체로 본인의 결단에 따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와 지금의 문 전 대표는 정치적 역량 차원에서 천양지차”라며 “‘최순실 게이트’ 초기 온건한 대응이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오고 있다는 판단을 한 문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최근 5~6개의 별도 그룹에서 정치적 조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조직은 임종석 전 의원이 이끌고 있지만 그 외에도 노영민·최재성 전 의원, 당내 친문 의원들 등이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제언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이 가운데 어느 쪽에도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문 전 대표는 자신을 돕는 전·현직 의원들과 대체로 ‘등거리’를 유지하면서 중요한 결단은 혼자 내리고 있다”며 “기존에 언급됐던 이른바 ‘비선’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논란들 때문에 문 전 대표는 더욱 자신의 판단을 중시하고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9월 자신과 가까운 의원 10여명과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논란 대응 방안부터 최근 촛불집회에서 문 전 대표 메시지 방향에 이르기까지 수평적인 토론이 수시로 이뤄진다고 한다. 한 의원은 “실시간 채팅이 이뤄지기 때문에 문 전 대표의 솔직한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우리도 가감 없이 제안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표를 돕는 그룹 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혼재한다. ‘강경파’들은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거리와 SNS를 통해 선명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미래권력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온건파’들은 권력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 중도층의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헌재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문 전 대표는 이 가운데 일단 ‘강경파’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향후의 기조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가 탄핵 심리를 진행하고 있는 헌재를 압박하거나 개헌을 주장하는 진영을 향해 강한 비판을 가하는 방안은 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중진 의원은 “개헌에 대해서도 문 전 대표가 강하게 반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헌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는 공감을 하고 있다”며 “고민의 초점은 30년 만의 개헌을 하려면 권력구조뿐 아니라 경제민주화, 국민의 기본권, 선거제도 등 나라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일찌감치 거리에 나가 박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주장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약진이 문 전 대표의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공동 선두인 문 전 대표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2%포인트 차로 바짝 뒤쫓고 있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전까지 문 전 대표는 물론 다른 야권의 대선주자들도 이 시장의 지지율 고공 상승을 보며 말과 행동의 수위를 조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촛불집회’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기존 지지층 결집에 주력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대응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끼며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 무당층이나 여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도층을 얼마나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느냐에 대선 승리의 열쇠가 담겨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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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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