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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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16년 하면서 야당을 10년 했고, 여당은 6년밖에 못했다. 야당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10년간 야당을 하면서 치열하게 당을 지켰고, 원내대표 때 이명박 후보를 내세워 정권교체를 이뤄냈는데 그것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안상수 창원시장이 지난 12월 13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경남 마산 출신인 안상수 창원시장은 4선 의원을 지내고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지냈다. 2014년부터 이명박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방침에 따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통합해 출범한 인구 107만 통합창원시 2대 시장으로 재임 중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함께 ‘PK(부산·경남)’의 한 축인 경남을 대표하는 유력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안 시장은 인물난에 허덕이는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자천타천 거명된다. 안상수 시장은 “내년 초에 정치 지형에 대변혁이 올 것으로 보고 있는데, 새누리당이 해체하고 새로운 당이 만들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내가 경선에 나가는 것이 보수세력 집권에 도움이 된다면 경선에도 참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 시장은 차기 대선구도와 함께 권력구조 개편에 관해서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자기 주장을 폈다. 안 시장은 권력구조에 대한 고민을 오래전부터 해온 정치인이다. 현역 의원 시절인 2009년에는 ‘한국 권력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다음은 안상수 창원시장과의 일문일답.

-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새누리당의 내분을 보는 심경이 착잡할 텐데. “내가 원내대표만 두 번 했다. 처음 원내대표를 할때 이명박 대통령을 앞세워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 정권을 이어받은 친박(親朴)들이 당을 망쳐놔서 정말 안타깝다. 10년 야당 시절 산전수전 겪으며 투쟁력과 경쟁력 있는 경륜을 쌓은 분들이 많이 잘려 나갔다. 우선적으로 친박 지도부는 책임을 지고 당을 위해 물러나고 새로운 사람을 수혈해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다. 대통령도 탈당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무관한 신당(新黨)을 만들어야 한다. 이후 제3지대와 연합해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다만 흥행을 위해 ‘추대’ 형식은 절대 안 되고 제대로 경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선에 나와서 흥행 요소를 갖게 해줘야 한다. 당의 승리와 재집권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나도 경선에 참여할 것이다.”

- 차기 대선과 함께 한편에선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대통령제는 후진국으로 건너오면서 권력이 집중된 ‘신(新)대통령제’로 변질됐다. 권력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독재정치가 됐다.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서 볼 수 있는 대통령제다. 우리나라도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의 말로가 모두 비극으로 끝났다. 그나마 5년 단임제를 하면서 평화적 정권교체는 달성했다. 그 이전에는 평화적 정권교체조차 불가능했다. 심지어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모두 자녀들이 구속되고 권력형 부정부패에 휘말려 뒤끝이 좋지 않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 어떤 권력구조가 한국에 적합한가. “나는 근본적으로 의원내각제주의자다. 의원내각제가 민주주의에 가장 가깝다. 영국을 위시해 민주주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한다. 권력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국왕이나 대통령이 있다 해도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 당파싸움, 계파갈등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에게 국정을 맡길 수 있냐는 게 의원내각제에 반대하는 여론인데. “의원내각제에서는 대통령중심제만큼 치열한 권력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의원내각제는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는 구조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연립정부를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소수당도 얼마든지 연정을 통해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제에서는 소수당의 집권 가능성이 없다. 즉 죽기 살기 식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의원내각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중심제에 비해 행정 효율이 떨어지지 않나. “의원내각제가 오히려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의원내각제에서는 국회와 정부가 같은 당에서 나온다. 내각을 국회에서 뒷받침해줄 수 있어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내각책임제를 하는 일본의 경우 초선급 의원들이 부(副)대신(옛 정무차관), 정통 관료들은 사무차관을 맡아 국정 훈련을 경험한다. 적어도 재선, 3선 정도는 돼야 대신(장관직)을 맡을 수 있다. 준비된 장관을 배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장관은 정무적 감각이 중요하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과연 어떤가. 아무것도 모르는 학문만 하던 교수들이 장관으로 오지 않나.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는 사람들이 장관으로 와서 능력부족 현상이 보인다. 대통령중심제다 보니 장관이 대통령의 말을 소극적으로 집행하는 위치에만 그친다.”

- 이원집정부제도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꼽히는데. “국민들이 정 대통령 직접 뽑기를 선호한다면 절충적으로 의원내각제로 가는 과도기 단계에서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의원내각제로 가야 한다.”

- 미국식 4년 중임제는 어떤가. “대개 경험 없는 의원들이 미국식 4년 중임제를 주장한다.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보다 못하다.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의 폐해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재선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거기에 빌붙는 사람들도 생긴다. 미국의 경우 권력이 분산돼 있다. 연방정부로서 중앙과 지방의 권한이 확실히 분산돼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이 강해 오히려 ‘입법 우위’ ‘사법 우위’라고 할 정도다. 대통령의 권한은 극히 한정돼 있다. 미국식 4년 중임제를 다른 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대통령제가 유일하게 성공한 나라가 미국이다. 요사이 미국에서도 대통령제의 실패가 엿보인다.”

- 집권당 대표 출신이 창원시장으로 내려오게 된 배경을 듣고 싶다. “19대 총선 때 내 지역구인 과천·의왕이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됐다. 사실 상대도 없었는데 내가 ‘MB(이명박)계’ ‘정적(政敵)’으로 분류돼서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동안에는 여의도로 못 돌아가겠구나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 판단을 내리고 고향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자는 뜻에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 대선 경선에 참여하면 창원시장직은 내려놓을 생각인가. “당내 경선에 참여할 경우 시장직을 유지해도 된다. 본선에서만 사퇴하면 된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그런 상황 아닌가.”

창원시의 한 관계자는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때 김문수 경기지사도 지사직을 유지하면서 당내 경선에 참여한 전례가 있다”며 “시장직을 갖고 있어도 당헌·당규상 당내 경선 참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는 “당내 경선에 전념하겠다”며 경기지사 중도사퇴를 시사했으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시장직 중도사퇴로 서울시가 통째로 야당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본 새누리당의 강력한 만류로 사퇴 의사를 접고 경기지사직을 유지한 채 당내 경선에 참여해 2위(득표율 8.7%)로 경선레이스를 완주했다.

- 장관급 인사들을 대거 창원시에 영입한 까닭도 향후 포석인가. “이명박 정부 때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전 장관이 창원시 미래전략위원회를 맡고 있다.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이환균 장관은 창원시 균형발전위원회를 맡고 있다. 균형발전위원회에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과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 장관도 속해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무보수로 창원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내주고 있다. 내가 창원시장으로 내려온 것은 고향에 마지막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내가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도 당대표까지 하고 고향을 위해 내려왔는데 장관 출신 여러분들도 고향을 위해 재능기부 좀 해달라’고 권유했다. 다른 도시에는 아마 이런 예가 없을 것이다.”

안상수 시장은 “창원을 광역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창원시장이 됐고, 고향에 내려온 것도 창원광역시 때문”이라고 인터뷰 내내 누차 강조했다. “창원은 인구 107만명에 면적(743㎢)도 서울(605㎢)보다 넓고 지역내총생산(GRDP)은 36조원으로 대전·광주보다도 크고 전북·강원도와 비슷하다. 도시의 규모를 가늠하는 인구, 면적, 지역내총생산 등 모든 면에서 이미 광역시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안 시장은 “지금 당장 광역시가 돼도 중간 규모 정도의 광역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1월 16일에는 ‘창원광역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는 등 속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창원시청과 창원시 관내에는 일제히 관련 현수막이 내걸리는 등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앙정부와 경남도를 설득하는 것이다.

- 광역시 추가 신설에 행정자치부,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등 중앙에서는 부정적인데.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울산이 1997년 광역시가 될 때도 중앙에서는 부정적이었다. 내가 국회에 있을 때 울산광역시 승격운동이 시작됐고, 울산이 광역시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울산이 광역시가 되는 데 7~8년 정도 걸렸다. 우리도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 울산 지역 상공인들이 먼저 광역시를 만들어 달라고 청원했다. 당시 울산광역시가 될 때 울산 출신 최형우씨가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최형우는 YS의 오른팔 아닌가. 후일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도 했다. 울산은 1992년 14대 대선 때 울산광역시 승격을 YS의 대선 공약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결국 울산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 후 대선공약 이행 차원에서 광역시로 승격했다. 내가 대선공약에 창원광역시를 집어넣겠다고 하는 것은 이런 전례가 있어서다.”

- 2010년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의 앙금이 아직 남아 있다. “지금은 광역시로 가자는 데 창원·마산·진해의 내부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까지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창원·마산·진해의 내부적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광역시밖에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해가는 것 같다. 광역시가 되면 창원구·마산구·진해구 식으로 각각 자치구가 돼서 원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다. 각자 자기 손으로 자치구청장을 스스로 뽑을 수 있다.”

- 경남도청 소재지가 창원인데, 창원이 분리독립하면 경남도청은 어디로 가나. “경남도청은 진주로 옮길 것이다. 창원이 광역시가 되면 도청은 진주로 갈 수밖에 없다. 진주에 경남도 서부청사가 이미 들어가지 않았나. 진주혁신도시 이후에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거창, 함양, 산청, 하동 등 서부권 전체가 많이 낙후돼 있다. 도청이 진주로 가면 서부권도 기회를 가질 것이다. 때문에 창원광역시 승격에 진주 등 서부경남에서도 환영한다. 광역시에 별 이해관계가 없는 김해와 양산 등 부산생활권을 제외하면 경남의 3분의 2가량이 창원광역시 승격을 지지한다고 본다.”

- 홍준표 경남지사가 창원광역시에 반대하지 않나. “홍준표 경남지사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선공약으로 들어가면 홍 지사도 어찌할 수 없다. 정부 여당은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추진할 수밖에 없다. 울산도 그렇게 했다. 대통령이 하는 것을 도지사가 감히 반대할 수 있나. 일단 공천이 걸려 있지 않나. 이미 창원광역시 승격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창원 인구 107만명 가운데 유권자가 85만명이다. 이는 대선판을 좌우할 만한 숫자다. 내년 한 해는 창원광역시에 ‘올인’할 것이다. 창원을 광역시로 만들고 난 뒤의 정치 행보는 그때 가서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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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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