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지난 12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지난 12월 14일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은 그는 원내대표로 일했던 ‘7개월 열흘’을 돌아보며 “폭풍 같은 시간을 뚫고 왔다”고 했다. 4선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인 그는 지난 5월, 총선 패배로 만신창이가 된 새누리당의 원내사령탑을 맡았다.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親朴) 입장에서는 김종필의 자민련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그가 마뜩지 않았지만 총선 패배로 궁지에 내몰린 상황에서 그를 새 원내대표로 밀었다.

하지만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이후 친박의 기대를 저버리고 소신대로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수평적 당청관계를 요구하며 친박과 청와대와 충돌했고, 때로는 친박의 요구를 들어주며 비박(非朴)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비박과 친박 사이에서 양쪽을 어르고 달래는 그를 두고 ‘곰 같은 여우’ ‘낀박’ 등의 별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역시 ‘최순실 쓰나미’를 피해가지 못했다. 새누리당을 초토화시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그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 가결을 지켜보는 헌정 사상 두 번째의 여당 지도부가 됐다. 그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년 5월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않고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7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제공하다가 갑자기 시간이 남아도는 처지가 됐다”면서 “홀가분하지만 한편으론 아쉽고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반기문의 메신저’를 자처해온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로운 보수의 외통수 선택”이라며 새누리당 비박계를 이끌고 탈당한 김무성 의원이 “(신당에) 반기문 캠프를 차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급변하는 새누리당 탈당 사태로 인해 12월 19일 만남 이후 몇 차례의 전화 통화로 보완했다.

- 정우택 의원이 새 원내대표가 된 후 비박과 친박이 비대위원장 인선으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비박의 집단 탈당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 의원 역시 탈당을 고민하고 있나. “당초 나는 ‘김무성 비대위원장’으로 친박·비박 간 갈등이 수습되기를 원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선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고 본인 스스로 이미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김 전 대표와는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 YS계 막내였던 그를 민주화 열기로 뜨겁던 아스팔트 위에서 만나 30년 가까이 호형호제하며 지냈다. 내가 아는 김무성은 권력만 좇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미와 포용력이 있다. 어쨌든 나도 이제 탈당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당초 비박이 요구한 건 ‘유승민 비대위원장’ 카드였는데, 그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나. “유승민 의원과는 개인적으로 많은 대화를 해보지 않았고 뭘 도모한 적도 없다. 그분이 어떤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내가 평가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 지금 새누리당의 유일한 선출직 지도부인 정우택 원내대표가 마음만 먹었으면 ‘유승민 비대위원장’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가 그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꿈과 지향점이 비슷한 걸로 알고 있다.”

-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에 책임이 큰 친박들의 2선 후퇴를 요구하고 있는데, 친박들이 왜 당의 주도권을 계속 쥐기 위해 저렇게 애쓰고 있다고 보나. “(한참 생각하다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정치 현실이 그런 것이다. 나는 친박들이 두려워한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원내대표 사퇴를 밝힌 지난 의총에서 영화 ‘명량’의 한 구절을 얘기하지 않았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를 원했던 이순신 장군처럼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려놓을 사람들은 다 내려놓고 물러날 사람들은 다 물러나야 한다.”

- 친박들이 무엇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나. “나도 그들이 뭘 원하는지 묻고 싶다. 비박하고 결별한 후 ‘제2의 친박연대’ ‘TK 자민련’으로 남자는 것인가.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면 대선후보도 내세우지 못하는 불임정당 비슷하게 될 텐데 그건 책임유기, 직무방기다. 나는 친박이 ‘김무성 비대위원장’ 정도를 받아들여 전략적 후퇴를 하는 게 옳다고 봤다.”

- 그럼 비박계와 함께 탈당할 각오인가. “같이 나갈지 아직 모르겠다. 나는 명분이 없으면 안 움직인다. 내가 지금 천착하고 몰두하고 있는 건 보수의 대반격이다. 누구를 통해 보수의 대반격을 준비하느냐 고민 중이다. 확실한 건 ‘친박 새누리당’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친박당은 이미 암 덩어리가 커버린 4기 암 환자다. 수술해도 회복이 안 된다.”

- 비박 신당이 새로운 보수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 같나. “단순히 당명 바꾸고 로고 바꾼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새로운 보수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왜 보수정치를 하는가. 국가적 대의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니냐. 나는 비박 신당이 결성되면 야당에서도 들어올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 신당의 궁극적 목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중추세력을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최순실 사태로 인한 이번 위기가 보수세력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바뀔 이유가 없고 안 바뀔 테지만 우리는 바뀌어야만 살길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 조기 대선이 불가피한데 급조한 비박 신당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겠나. “사실 시간이 없다. 최소 1년5개월간 대선을 준비하는 게 보통인데 이제 최대 6개월밖에는 남지 않았다. 정신 바싹 차려야 한다. 보수세력이 대선 채비를 갖추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유일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다시피했는데 새로운 보수세력이라도 빨리 책임을 다해야 한다. 보수당이 후보를 세우지 못하면 국민을 두 번 배신하는 셈이다.”

- 정치권에서 ‘반기문 메신저’를 자처해왔고 충청 동향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안다. “그분과는 30년간 알고 지냈다.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로 외무부를 출입했을 때 반 총장이 장관 비서실장이었고 1993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을 때 그분은 워싱턴 주재 정무공사였다. 내가 아는 반 총장은 험블(humble)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한국인으로서 가장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본 사람이고 글로벌 스탠더드가 뭔지 아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일자리 문제, 양극화, 고령화 문제는 세계적 난제이기도 한데 반 총장은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나름의 해법도 갖고 있다고 본다. 지금 국가 개조 얘기가 나올 만큼 대한민국이 완전 터닝해야 하는데 이럴 때 객관적이고 넓은 눈으로 우리나라를 봐왔던 반기문을 새로운 대한민국 설계에 활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그분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번쯤은 시험대에 올려야 한다.”

- 반기문 총장이 비박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보나. “나는 김무성 전 대표가 (신당에) 반기문 캠프를 차려줄 것으로 믿는다. 나는 새로운 보수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보수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외통수 인물이 반기문 총장이라고 생각한다. 반 총장은 병든 보수의 메시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대선 정국에서 나와 반 총장을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조만간 반 총장을 직접 만나볼 생각이다.”

비박·친박 모두에게 관심사로 떠오른 그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그가 1월에 귀국하는 반기문 총장과 함께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가 비박 신당에 합류할 경우 친박과 충청권 의원들이 다시 흔들리면서 현재 35명인 탈당 의원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12월 말 국회 정보위원회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반 총장과의 만남 여부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반 총장의 향후 일정과 관련해 “1월 12일쯤 귀국할 것으로 본다”며 “귀국 첫 메시지를 고민할 텐데 귀국 후 국민 속에서 주유(周遊)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 대통령 탄핵 가결 후 정 의원이 자유투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있었다. “대통령이 3차 담화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고 원로들도 직전에 그런 권유를 하지 않았나. 그래서 4월 퇴진, 6월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때 반대가 전혀 없었다. 그걸로 대야 협상을 하려 했는데 야당이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며 일절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탄핵 표결 이틀 전에 청와대에 들어가 당론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탄핵 절차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대통령에게 소상하게 설명했다. 의원 개개인이 헌법 기관으로서 양심과 소신에 따라 자유투표하기로 했다고 설명드리니까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때 대통령 표정이 어땠나. “뭐랄까, 초췌한 것은 아니고 수척해졌다고나 할까. 그걸 보니 마음이 좀 안됐더라.”

- 박 대통령 변호인단이 국회의 탄핵 의결 사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던데 대통령이 탄핵받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나.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여러 번 강조해왔지만 정작 자신은 비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게 사실이다. 이것이 국민들한테 배신감을 안겼다. 나는 지금 언론에서 보도한 의혹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과장도 있고 혹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점이다. 일개 여염집 아줌마한테 국정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면서 너무 나약한 대통령으로 비쳐졌다.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존재도 철저히 감췄다.”

- 정 의원도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나. “전혀 몰랐다. 아마 최순실과 대면한 사람은 문고리 3인방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안종범이나 김기춘 이런 사람들도 최순실의 존재는 의식했어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그렇게 철저하게 숨기다 보니 결과적으로 최순실의 일탈은 팩트 파인딩(fact finding)이 잘 안 되고 대통령이 부적절하게 지시한 것만 증거가 남아 피의자가 된 것이 아니냐. 그런 국정운영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독일식 내각제를 지지한다는 정진석 의원이 내각제의 장점을 설명한 서울대 강원택 교수의 저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독일식 내각제를 지지한다는 정진석 의원이 내각제의 장점을 설명한 서울대 강원택 교수의 저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그는 이 대목에서 2010년 8월에 있었던 ‘이명박·박근혜 회동’을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그는 세종시 수정안 사태로 갈등이 극에 달했던 친박·친이를 오가며 두 사람의 회동을 성사시켰다. 거의 10개월간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한 결과였다고 한다. “내가 정무수석 때 이명박 대통령이 나에게 던진 임무가 정권 재창출이었다. 그래서 이 대통령한테 ‘정권 재창출하려면 박근혜부터 만나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 대통령이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다가 내가 자꾸 보채니까 결국 8월 21일 전격회동을 했고, 그때부터 두 양반이 협력관계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나한테 ‘박근혜 의원이 너무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했었다. 그때는 말뜻을 잘 이해 못 했는데 지금 사태를 보니까 이 대통령이 무엇을 우려했는지를 알겠다.”

그는 “두 사람의 회동 때도 이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한테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여러 분야 사람들을 넓은 보폭으로 만나고 다니라’고 충고했었다. 그러면서 ‘당원들이 박근혜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하면 내가 왜 안 도와주겠느냐, 팔 걷어붙이고 돕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우려했던 것은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 같은 것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세나 태도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보여진 언론의 공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속성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 과정에서 나온 언론의 보도가 모두 진실인가에 대해서는 내가 재단할 수 없다. 나중에 판단될 문제 같다. 한 가지, 탄핵 표결 이틀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대통령이 한 말이 떠오른다. 그때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얼굴 시술을 했다느니, 남자랑 연애를 했다느니, 무슨 린다 김이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데 다 사실이 아니다. 언론이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내가 일일이 해명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 대통령이 이번 사태가 터진 후 국회 추천 책임총리, 4월 퇴진 등 여러 카드를 제시했는데 결국 다 무산됐다. “나는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하고는 잘 지냈다. 인간적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파트너였다. 그는 운동권 출신이지만 유연한 협상가이고 순수한 측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상호 대표가 협상 전권을 갖고 나왔는가는 의문이다. 나하고는 얘기가 잘 됐는데 당에 돌아가서는 이른바 친노 강경세력에 의해 비토를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거국내각 책임총리도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얘기해서 우리가 수용했던 것 아니냐.”

- 우상호 대표는 거국내각 책임총리 카드로 협상할 의지가 있었다는 건가.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대통령이 2선 후퇴하고 총리와 내각에 전권을 주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께 건의드려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방문해 국회 추천 총리를 제안하지 않았나.”

- 우상호 대표가 당내 강경파와 관련해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나. “척하면 삼천리 아니냐.”

- 4월 퇴진 카드를 갖고 추미애 대표가 대통령 퇴진 일정을 상의한다며 김무성 전 대표를 찾아온 일도 있었는데. “추미애 대표의 경우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해서 청와대가 수용했는데 그것도 하루 만에 바꿔버리지 않았나. 반추해 보면 야당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빠뜨리지 않고 수용했다. 그런데도 야당은 모든 걸 대선의 유불리로만 따져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려고 했고 그러다 파국이 와버렸다.”

그는 “헌재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이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광화문에 100만명만 모이면 내려와야 한다. (좌파 대통령이 나왔을 때) 보수세력은 광장에 100만명이 모이지 못할 것 같냐”며 “이번에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87년 체제의 현 헌법에서 벌써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소추 의결을 받은 것은 헌정사의 큰 오점이다. 내가 지난 주 1987년 개헌특위 위원을 지낸 이한동 전 총리를 만났는데, 이분 말씀이 ‘지금의 5년 단임제는6월 항쟁 소용돌이 속에서 시국수습책으로 만든 헌법’ ‘한 달 만에 만든 임시방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헌법이 30년이 흘렀는데 바꿔야 하지 않겠나.”

- 현 대통령 5년 단임 권력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인가. “현 헌법은 고장난 비행기다. 조종사가 누구로 바뀌든지 위험한 불시착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번에 광장의 요구가 대통령 퇴진에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개조하고 정치를 똑바로 해서 살기 좋은 세상, 안정적인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것이 광장의 요구라고 본다. 그러면 국회는 거기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나는 그 출발점이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권력구조에 국한해서는 독일식 내각제를 선호한다.”

- 조속히 개헌을 해서 이번에 새 헌법으로 정부를 탄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 문재인 전 대표 한 사람만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 자기는 100미터 경주에서 50미터를 앞서가고 있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 선거를 빨리 치르자며 골인 지점까지 앞당기려고 한다. 욕심이 과하다. 그건 최고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 요구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시해야 하는데 자기 선거에만 질주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는 이와 관련 “문재인 전 대표는 반(反)노무현의 길을 걷고 있다”는 비판도 했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철저한 개헌론자였고 제도론자였다. 국정운영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원포인트 개헌까지 제안하지 않았었나. 근데 문재인 전 대표는 정반대다. 그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말한다. 역대 대통령을 보면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불행한 말로를 맞았는데 이건 시스템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 지금의 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나. “불안하다. 하나만 얘기하면 지금 야당은 민주노총과 절대 끊을 수 없는 관계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축이 민주노총 아니냐. 그런데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로 인해 이중적인 임금구조가 됐고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과거의 마름모꼴 형태의 사회가 삼각형의 사회가 된 것 아니냐. 나는 야당이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고 본다. 중향 평준화를 위해서 대기업뿐 아니라 노조도 양보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그는 “야당뿐 아니라 우리도 솔직해져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저쪽은 귀족노조와 끝까지 같이 가겠지만 우리는 대기업과 무작정 같이 갈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자영업자들, 하청업체들, 일자리에 허덕이는 청년들, 소외받는 노인층으로 타깃을 재조정해야 한다. 어떤 것이 과연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인구절벽에 대응하는 해법인지 솔직히 내놓고 야당과 경쟁해야 한다. 연금체계를 지금처럼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하며 솔직하게 새로운 설계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인기 영합을 못 하더라도 솔직하게 얘기하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문재인 전 대표가 최근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는 길이 없다고 했는데. “지지도의 한계를 느끼니까 초조한 것이라고 본다. ‘100만’ 촛불집회를 몇 차례 겪고서도 여전히 초조한 것이다. 나는 문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한참 뒤진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소양이나 자기 아이디어가 없는 것 같다. 반대를 위한 반대, 반대 세력을 운집해서 끌고 가겠다고만 하면 좀 회의적이다.”

- 원내대표를 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내 스스로 고독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어느 영국 정치가가 ‘중도의 길을 걷는 것은 고속도로 중앙선에 서 있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했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나는 청와대에 대놓고 노(No)라고 얘기했다. 과거 어떤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정무수석 교체를 요구한 적이 있느냐”면서 새로운 당청관계를 위한 자신의 노력을 강조했다.

- 현기환 정무수석 교체를 왜 요구했나. “내가 5월 3일 원내대표가 되자마자 현 수석을 만나 재량권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그가 거부했다. 그는 과거와 같은 수직적 당청관계를 원했고 나는 수평적 당청관계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인선을 계속 요구해 갈등이 심화됐다. 결국 대통령을 찾아가 현 수석하고는 소통을 못 하겠으니 둘 중 하나를 택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를 하고 10일쯤 뒤에 현 수석이 교체됐다. 대통령이 나를 선택한 셈이어서 내내 부담으로 남았다.”

그는 “내가 48세인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앉히려다 전국위원회가 무산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 배경에도 현 수석이 있다고 봤다”며 “김기춘·우병우 등 내가 공개적으로 물러나라고 한 인사들이 지금 전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정치인은 말이 생명’이라는 선친(정석모 전 의원)의 말을 인용했던데 무슨 의미였나. “내가 2000년 처음 금배지를 달고 아버님을 찾아뵙고 큰절을 했는데 그때 딱 한 말씀 하신 게 ‘정치인은 말이 생명이다. 말이 화근이니 말조심해라’였다. 아버님은 ‘입안에서 오물거리는 것을 70%만 내뱉어도 뜻이 전달된다’며 말의 절제를 강조하셨다. 나도 아버님의 당부를 다 지키진 못했지만 요즘 정치를 보면 서로 철천지 원수들한테 저주를 퍼붓는 듯한 언사를 너무 많이 한다. 그건 지양해야 한다.”

그는 “선천적인 아웃사이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한테는 아직 기자정신이 있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고 주류가 국민들의 바람이나 응답과 동떨어지면 국민들 쪽을 바라본다.” 다시 국민들 쪽을 바라보기 시작한 그가 어디로 향하느냐가 대선 정국의 한 변수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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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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