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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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당의 간판만 내렸을 뿐, 구(舊) 통진당 세력은 여전히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촛불시위에 편승해 ‘통진당 해산 무효’까지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당시 정부 측 참고인으로 활동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지난 12월 1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헌재의 압도적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무효’ ‘RO(지하혁명조직) 이석기 석방’ 등의 유인물이 뿌려지는가 하면, 통진당 재건세력의 깃발이 나부끼는 현실을 손놓고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폭력혁명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위헌 정당”으로 통합진보당을 규정하고 정당 해산을 결정했다. 당시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은 통진당 해산에 찬성했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서울시 서초동 소재 자유민주연구원에서 만난 유동열 원장은 검찰이 2년 동안 통진당 세력에 대한 수사지휘를 미뤄왔다고 주장했다. 유 원장은 “검찰이 일종의 직무유기를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통진당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재의 결정은 이 정당이 반국가단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반국가단체에 연루된 사람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검찰은 사실상 수사를 포기했다. 경찰이 통진당 세력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려 해도 검찰이 수사지휘를 해주지 않았다. 검찰이 본연의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

김 원장의 말대로 검찰은 지난 2년간 통진당 해산에 따른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헌법에 위배된 정당을 이끈 인물에 대해 검찰 수사가 뒤따라야 하는 건 법률에 앞서 상식에 가깝다. 검찰은 심지어 2014년 12월 20일 헌법수호국민운동본부가 통진당 잔존 세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안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위헌 판결을 받아 해산된 통진당 관련자 가운데 현행법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사법부가 이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비판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 원장은 “정당해산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건에 대해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누가 정당해산을 겁내겠느냐”고 말했다.

검찰이 통진당 관련자에 대해 수사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부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에는 위헌정당 해산을 판단하는 기준만 있을 뿐, 그 결과에 따른 처벌규정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즉 통진당 세력을 처벌하려면 민사 형태로 진행된 헌재 결정과 달리 형사재판 증거로 유죄를 입증해야 한다. 사실상 통진당 관련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뒤따라야 하는데, 검찰은 이 부분에 있어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산된 통진당 잔존 세력을 소탕하겠다고 나섰다가 자칫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검찰의 수사의지를 약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유 원장은 이에 대해 “검찰 수사로 통진당 사건을 마무리지었어야 한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주장”이라면서 “그런데 대검찰청 정점식 공안부장 등 검찰 측은 이런 요구를 묵살해왔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검 공안부는 공안사건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검찰이 다룬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는 2012년 112건에서 2015년 79건, 2016년 6월 현재 22건으로 급감했다.

유 원장은 통진당 해산사건에 대해 “과거 독일 공산당 해산 과정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공산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연방헌재 판결 이후 독일 검찰은 공산당 당직자 전원과 이와 연계된 관련자 등 12만5000명을 수사했고, 이 가운데 6000여명을 사법처리했다. 유 원장은 “독일은 헌재 판결 뒤 관련자 수사를 통해 헌법가치를 바로 세웠다. 헌재 9명의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김이수 재판관도 통진당 위헌판결이 날 경우 독일처럼 관련자 전원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로 반대의견을 냈다. 정작 헌재에서 해산 결정이 났음에도 우리 검찰은 사법조치를 취하지 않아 헌재 결정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통진당 잔존 세력은 지난 2월 27일 민중연합당을 결성하고 20대 총선에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통합진보당 당직자의 상당수는 통진당 핵심세력인 범(汎)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민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민중연합당 중앙당과 지역당직자, 그리고 총선 출마자 300여명 가운데 78%는 통진당에 있던 사람들이다.

유 원장은 “헌재 결정 이후 통진당 세력은 처벌이 두려워 한동안 활동을 자제했으나,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자 버젓이 ‘도로 통진당’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총선에서 통진당 출신 중 2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해산된 정당에 몸담았던 사람이 다시 입법기관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통진당 지원금 60억 넘어

지난 12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이석기 석방’ 풍선을 등에 진 사람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photo 이정구 조선일보 기자
지난 12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이석기 석방’ 풍선을 등에 진 사람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photo 이정구 조선일보 기자

정당법 40조와 41조에 따르면 헌재에 의해 해산된 정당과 유사 단체는 정당으로 등록될 수 없다. 그러나 법의 허점을 이용하면 얼마든 유사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유 원장의 지적이다. 그의 설명이다. “통진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위헌정당이라는 이유로 정당이 해산됐다. 그러자 통진당 세력은 이런 강령을 삭제하고 민중연합당을 만들었다. 검찰이 관련자 수사와 국고보조금 환수 등의 문제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는 또 “2014년에 정부가 통진당에 지원한 보조금만 60억원이 넘는데, 통진당 해산 후 회계보고에 의하면 잔액이 238만원에 불과했다. 회계가 적법하게 진행됐는지, 해산판결을 앞두고 예산을 무리하게 집행한 것은 아닌지 등의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2의 통진당 사건이 재발되는 걸 막기 위해 정당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행 정당법에는 해산된 정당과 ‘강령 및 정책’이 유사한 정당의 등록만을 막고 있을 뿐이다. 차제에 인적구성이 유사한 정당의 경우에도 등록을 막는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통진당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통진당세력청산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통진당 해산 당시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한 법무부 장관이었기 때문에 황 대행이 통진당 해산에 따른 후속조치도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반면,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 등은 지난 12월 19일 헌재 앞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와 최순실의 비호 아래 비판세력을 제거하는 일을 벌였다. 그중 가장 악랄한 행위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통진당에 대한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을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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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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