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대만 총통
차이잉원 대만 총통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2월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통화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당선 축하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에 대한 칭찬, 그리고 대만과 중국이 대만해협 문제 해결을 위해서 대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정도였다”는 것이 차이잉원 측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미 대통령 당선자가 대만 총통으로부터 당선 축하 전화를 받은 것은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파격이었다.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대변인은 즉각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관련 보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미국 측에는 엄중한 항의를 전달해놓았다. 이 세계에 중국은 하나밖에 없으며, 대만은 분할할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이는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미 관계의 정치적인 기초이며, 우리는 미국 관련 당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고 있을 것임을 촉구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Global Times)는 사설을 통해 “트럼프는 어린아이와 같이 무지한 정치인”이라고 비난하면서 “트럼프의 무능력은 그가 입을 닫고 있을 때가 제일 나을 때임을 깨닫게 한다”고 연일 비난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이번에는 신문 인터뷰와 트위터 글을 통해 중국 외교부 당국자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중국은 무역 거래에서 우리에게 양보하지도 않는데 우리만 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뿐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여러 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하지도 않고 있지 않느냐”는 말도 했고, 국무장관 지명자를 러시아 전문가인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 엑슨모빌 회장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부시·오바마 대통령 등 몇 대에 걸쳐 ‘중국의 세기(世紀)’가 계속되어오던 워싱턴과 뉴욕의 분위기에서 중국 냄새를 지우고 과거의 러시아 위주의 세계가 조성될 것임을 예고하는 흐름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중국은 트럼프가 미쳤으며, 미국의 대외 무역거래에서 무려 5000억달러라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경제를 무시하고 어떻게 미국 경제가 온전할 수 있겠느냐는 저주 담긴 비판도 퍼붓고 있다.

그러나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지난 12월 17일자에 중국계 미국인 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트럼프의 목적은 중국의 마지노선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 “트럼프의 목적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데 있으며, 대만이 미국에 팔라고 요청 중인 F-16C/D 전투기를 판매하기 위한 전초전을 편 것”이라고 보도했다. 결국 중국 외교부 당국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속성이 이전 미국 행정부의 속성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왜 우리 미국이 지켜야 하느냐”면서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거나, 겉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잘 지킬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뒤로는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등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의 중국’ 원칙을 놓고 벌인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의 ‘외교 유희’는 중국 해군이 미 해군의 수중 드론을 ‘훔치는(steal·트럼프의 표현)’ 사건으로 이어졌고, 더 이상의 외교 시험은 트럼프에게도 현명하지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국면에 이르렀다.

우리 정부 역시 24년 전인 1992년 8월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였다. 수교 한 해 전에 남북한이 각각 유엔에 가입해서 ‘두 개의 코리아’ 원칙을 만들어놓고서 말이다. 당시 북한 김일성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리펑(李鵬)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이제 더 이상 한국 정부의 유엔 가입을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다”는 점을 들이대 김일성도 북한의 유엔 가입을 마지못해 하게 됐다. 한·중수교 한 해 전에 이뤄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관한 일화는 당시 외교부장이던 첸치천(錢其琛)이 자신의 회고록 ‘외교십기(外交十記)’에 남김으로써 공개됐다. 첸치천의 ‘외교십기’에 보면, 당시 한·중수교를 빨리 하라고 재촉한 쪽은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덩샤오핑은 첸치천에게 “중·한수교를 하면 우선 한국과 대만의 정치적 관계를 단절할 수 있어 중국의 통일에 이롭고, 한국과의 경제교류는 우리 경제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수교로부터 24년 만에 우리 경제와 중국 경제의 실력 차이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볼륨을 가진 나라로서 국방력까지 확대한 가운데 우리에게 사드(THAAD) 배치가 된다 안 된다 간섭을 하는 나라가 됐다. 중국이 그렇게 나와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못 하고 있다. 어떨까, 때마침 대륙과 아예 등을 돌리고 대만 독립을 추구하겠다는 차이잉원 총통 정부가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는 점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우리 정부가 미국의 트럼프 당선자처럼 공개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재료 삼아 중국을 희롱할 수는 없겠지만 차이잉원 정부와 우리 정부가 경제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인적·문화적 교류를 눈에 띄게 확대하는 등 베이징 정부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 어느 나라가 이웃 나라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leverage) 하나 만들어놓지 않고 있을까 싶다. 사드(THAAD) 반대 등 베이징으로부터 가해지는 압력에 두 손 놓고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아닐까.

중국은 24년 전 우리와 대만의 정치·경제적 교류는 단절시킨 뒤 근년에 들어 대만과 준FTA협정을 맺는 등 활발한 경제 교류를 진행 중이다. 우리로서는 24년 전에 일방적으로 중국 대륙에 넘겨준 대만과의 우호 관계를 어떤 차원이든 격상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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