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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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야말로 노벨 경제학상감이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주류 경제학으로는 도저히 박정희 경제가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UCLA에서 박사를 한 좌승희 이사장은 한국은행을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경기개발연구원장,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장 등을 지낸 경제학자다. 그는 정통 경제학으로 규명 불가능한 박정희 모델에 흥미를 느껴 2000년대 초반부터 ‘박정희 경제학’의 작동원리 규명에 전념해왔다. 그 결과가 2015년에 나온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이다. 새해에는 ‘경제발전의 일반이론’을 영국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영남대에서 박정희새마을대학원 교수를 지낸 좌 이사장은 2016년 2월부터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12월 27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아버지까지 욕을 먹고 있는 것 아닌가. “딸과 아버지를 연결시켜 생각하는데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달리 지난 30년간 민주화시대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에 가깝다. 부녀간의 문제를 떠나 다른 형태의 지도자다. ‘국민의 뜻’이라고 표현하지만 장기적인 비전보다 단기적인 표로 계산해왔다. 아버지 박정희는 민주화시대의 정치지도자와 달랐다. 딸은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 최근 최순실 사건으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운영에 어려움은 없나.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취임 초기 전윤철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과 만나 함께 잘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국회가 저러니 어쩔 수 있나. 재단은 기금을 비롯해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최순실 사건 후 지난 두 달간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찾는 관람객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관람객이 줄면 후원금에도 영향을 받는다.”

- 야당과 좌파세력은 ‘친일파 박정희’ 운운하며 여전히 박정희를 깎아내린다. “요즘 해방공간 좌우대립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다. 박정희와 김일성 간 싸움의 연장선에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박정희는 경제적 번영을 통해 북한의 침략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그런데도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에서도 박정희의 성과를 폄하한다. 박정희 때는 독특하고도 놀라운 성과를 냈다. 왜 다른 나라가 못하는 일을 우리는 해냈나? 세계가 박정희 모델을 배우기 위해 온다.”

- 박정희 경제모델의 핵심은 무엇인가. “경제학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해 ‘돈을 써라’ ‘교육에 투자하라’고 얘기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들이 돈을 쓰고 교육에 투자했다. 그런데 왜 한국만 성공했나. 박정희 모델의 핵심은 ‘성과에 따른 신상필벌(信賞必罰)’과 ‘경제적 차별화’로 요약된다.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을 더 지원했다. 매년 수출실적을 등수로 매겨 ‘수출의 날(현 무역의 날)’ 행사 때 표창을 했다. 달러 표시 수출금액으로 성과 평가는 엄정했다. 지금도 은행의 대출심사 기능이 미흡한데, 은행들은 이 성적표에 따라 우수 수출기업에 지원을 집중했다. 요즘말로 하면 ‘특혜’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이게 원래 시장이 하는 일이다.”

- 박정희 시대의 재벌 위주 경제운용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당시 대기업이 어디 있었나? 박정희의 공(功)은 오히려 중소기업 육성을 잘한 것이다. 지금 있는 대기업들은 모두 박정희 때 중소기업부터 시작해 대기업으로 큰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동반성장을 이룩한 시기가 박정희 때다. 박정희 이후 대기업이 안 나왔다. 사실 대기업의 경제적 집중을 완화하고 문어발 확장을 막는다는 대기업 규제정책에 대기업들은 남몰래 웃는다. 상호 영역 확장을 막아 오히려 독점기업을 만들고 있다. 도태되는 기업도 없고, 제대로 된 경쟁이 안 된다.”

- 새마을운동에도 ‘성과에 따른 신상필벌’과 ‘경제적 차별화’가 적용됐나. “1970년 가을에 전국 3만4000여개 마을에 300포대씩 시멘트를 지급했다. 지붕개량, 도로포장, 수로설치 등 10가지 과업을 주었다. 6개월 뒤에 평가단이 전국 마을을 실사해 보니 3만4000개 마을 중 과반수가 안 되는 1만6000개 마을만 과업을 수행했다. 1만8000개 마을에서는 참여도 안 했다. 당시 야당 성향이 강한 곳에서는 새마을운동을 정치운동이라고 봤다. 이듬해 국무회의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를 반대하고 과업을 이행한 1만6000개 마을에만 시멘트를 500포대씩 추가 지원할 것을 결정했다.”

- 차등 지원에 따른 반발은 없었나.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김현옥 내무장관을 비롯해 공화당에서도 ‘차별하면 차기 총선이 위험하다’는 우려를 박정희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차등 지원을 강행했다. 그 결과 처음에 참여를 꺼렸던 1만8000개 마을 중 6000곳이 돌아섰다. 박정희는 마을을 ‘기초마을’ ‘자조(自助)마을’ ‘자립마을’ 3단계로 구분했다. 농사가 안 되면 하늘 탓, 나라 탓만 하는 마을이 기초마을이다. 박정희는 ‘나는 2, 3학년만 지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은 오히려 ‘성과 없는 사람’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나. 그 결과 ‘성과 없는 사람’들로 사회가 채워진다. N분의 1로 나누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 젊은 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본 일이 있나. “서울대 재학 때 ‘정영사(正英舍)’란 기숙사에 살았다. 박정희의 ‘정(正)’ 자와 육영수의 ‘영(英)’ 자를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는 우등생 기숙사다. 최문환 당시 서울대 총장이 프랑스에 가서 보고 제안해 1968년 문을 열었다. 한덕수 전 총리, 정운찬 전 총리 등과 기숙사를 함께 썼다. 기숙사비는 거의 무료였다. 한번은 정영사 학생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해준 적이 있다. 정영사는 후일 일반 기숙사로 바뀌었는데, 정영사만 놓고 봐도 서울대 안에서도 우수 학생을 선별 지원하는 박정희의 ‘차등화’ 정책을 엿볼 수 있다.”

- ‘경제민주화’가 차기 대선에서도 화두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하나의 ‘가치’다. 국가가 번영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어떠한 이론도 없고, 이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최첨단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하지만 선진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과 양극화가 고착됐다. 오히려 박정희 모델을 뒤늦게 채택한 중국, 인도에서 경제적 성공을 볼 수 있다. ‘경제적 차별화’가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이다. 민주주의는 사실 경제적 차별화를 하기가 힘들다. 성과 있는 기업이 더 대접받아야 하는데, 요즘은 성과 없는 기업이 더 대접받는다. 지역균형, 평준화 등 평등주의는 동기부여가 안 돼서 망한다. ‘차등’과 ‘평등’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경제적 차별화’가 곧 정의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올해 20권 분량의 박정희 총서를 펴낼 계획이다. 오는 1월 10일부터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잘살아보세’라는 박정희 특별전을 비롯해 국제학술세미나도 준비 중이다. 기념재단은 월간조선과 공동으로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 근대화의 국부(國父), 박정희를 다시 본다’는 시민강좌도 1년간 개최할 예정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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