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중국연구소가 펴낸 ‘중국 지도자의 수첩’.
성균관대 중국연구소가 펴낸 ‘중국 지도자의 수첩’.

어이없게도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탄핵 대상이 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권좌에 오르기 전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정치와 민생 현장을 다니면서 뭔가 깨알같이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만큼 정치와 민생 현장을 열심히 찾아다닌다는 긍정적인 평가에 따라 얻게 된 별명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弄斷)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헤쳐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으로서의 생활은 “도대체 수첩에 뭘 적으면서 살아왔길래 그렇게 세상사에 어둡고 국정에 등한한 대통령이 됐을까”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한다. 오히려 “그동안 수첩에 적은 것들이 쓸데없는 행정 실무부처들에 대한 인사 간여나 나라에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것들만 적어온 게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일으킨다.

이런 때에 ‘중국 지도자의 수첩’을 성균관대학교 중국연구소(소장 이희옥)가 지난해 12월 16일에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2012년 11월 당 총서기와 총리로 선출된 후 중국 전역의 현장을 누비면서 한 많은 연설들 가운데 중국공산당과 행정부인 국무원의 관리들이 대부분 수첩에 메모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구절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시진핑과 리커창이 현장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한 구절들 가운데 우선 고전에서 인용한 글귀들부터 보자.

시진핑 당 총서기는 당 총서기 선출 직후인 2012년 11월 17일 제18기 중앙정치국 제1차 집체 학습을 시작하면서 한 연설에서 소식(蘇軾)의 범증론(範增論)에 나오는 ‘물필선부 이후충생(物必先腐 而後蟲生)’이라는 글귀를 인용해서 자신이 반부패운동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먼저 썩어야 그 썩은 곳에 벌레가 생긴다”는 뜻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최근 일부 국가에서 오랫동안 쌓여온 갈등으로 인해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여 사회 혼란과 정권 붕괴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고 말하고 “여기까지 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부정부패이며, 수많은 사례들이 부정부패가 심해지면 국가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커창 총리는 2013년 3월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이정 재능정인(已正 才能正人)’이라는 구절을 힘주어 강조했다. ‘논어’ 자로편(子路篇)에 나오는 이 말은 “우선 자신이 바르게 되어야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무서운 가르침이 들어있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벼슬을 하는 것과 부자가 되는 것은 두 갈래의 다른 길이며, 공직을 맡았으면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부자가 될 생각을 애초부터 끊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리커창 총리의 이 말을 듣는 많은 중앙과 지방 관리들은 이 구절을 들으면서 가슴이 서늘했을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3년 3월 9일 브릭스(BRICS) 국가에서 온 기자들과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도덕경’에 나오는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권력자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마치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조심조심 다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심하게 내버려두면 타버릴 것이고, 노심초사 너무 자주 뒤집으면 생선이 다 부스러진다는 실생활 경험을 담은 교훈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지도자가 국가 상황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국민이 바라는 것을 잘 알아서 얼음 위를 걷거나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과 같은 위험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며,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처럼 조금이라도 태만하거나 신중하지 못하면 생선이 타버리거나 다 부스러져서 못 먹게 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은 국가부주석 시절이던 2007년 8월 당 간부들과 고위관리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을 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토론하는 석상에서 인사말을 통해 ‘논어’의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정치란 바른 것이라서 자신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政也, 正也.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면 단상에서 간부가 연설해도 단 아래에서는 그 간부를 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경고했다.

리커창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26일 국무원 제1차 청렴정치 공작회의에 나가서 “권력은 양날의 검(權力是雙刃劍)”이라는 말을 했다. ‘잘 사용하면 국민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국민에게 해를 끼치고 일도 그르치며 심지어 부패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많이 하면 정작 관여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4년 5월 4일 베이징(北京)대학 교수학생 좌담회에 나가서는 ‘관자(管子)’ 목민(牧民)편에 나오는 지도자의 몸가짐에 대한 구절을 소개했다. ‘나라에는 네 가지 기둥이 있는데 그것은 예의염치라는 것이며, 이 네 가지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멸망한다(國有四維 禮義廉恥 四維不張 國乃滅亡)’는 구절이었다. 즉 예의와 정의, 그리고 청렴함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중국공산당과 행정부 관리들의 부패는 외국인들이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시진핑과 리커창도 부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안팎의 소문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진핑과 리커창 두 최고지도자는 중국 고전에 나오는 경구(驚句)를 수첩에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 지도 간부들이 메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탈은 어느새 대한민국을 예의염치가 실종되고, 기초가 무너진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시진핑 총서기가 2013년 5월 4일 우수청소년 대표들과 좌담을 하면서 소개한 ‘국어(國語)’에 나오는 ‘선을 따르는 것은 등산을 하는 것처럼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마치 산이 무너지듯 빠르게 세상을 무너뜨린다(從善如登 從惡如崩)’라는 구절과 같은 상황이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국민들이 모르는 가운데 빠르게 진행돼 오늘의 참상에 이르고 말았다. 대통령도 국민들이 보는 가운데 거짓말을 하고, 그 비서들도 거짓말하고, 대학총장도, 학장도 모두가 거짓말을 하면서 예의염치를 모르는 뻔뻔한 얼굴을 국민들 앞에 치켜드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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