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8월 9일 새벽, 여명을 가르며 일군의 여성들이 움직였다. 서울 면목동에서 출발한 이들은 새벽 5시 마포 도화동에 닿았다. 이들은 모두 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신민당사였다. 곧바로 점거농성이 시작됐다. 그곳에 모인 172명의 여성 근로자들은 바로 YH무역 ‘여공’들이었다.

이들은 회사 정상화와 근로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이들을 다독이는 한편, 여당과 노동청에 연락했다. 협상을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대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돌아온 건 강제 진압. 8월 11일 새벽 2시 무술경관들이 투입됐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곤봉이 날아왔다. 농성자들은 물론 김 총재와 당직자들도 부상을 입었다. 진압이 끝나고 당사 뒷마당 쓰레기통 옆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김경숙씨였다.

사건의 여파로 김영삼 총재가 제명됐다. 한국 사회 전체가 술렁였다. 마포에서 펄럭인 날갯짓은 부산과 마산으로 퍼져가며 항쟁이 됐다. ‘부마항쟁’. 그리고 얼마 후 10·26시해사건이 일어났다. 마포를 뒤흔든 ‘YH사건’은 유신정권 붕괴의 전주곡이었다.

지난 1월 17일 옛 신민당사 터를 찾았다. 지금은 지상 21층, 지하 7층 규모의 오피스텔(에스케이 허브그린)이 들어서 있다. 38년 전 가발공장 여공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주변 일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마포대로를 중심으로 한 도화동, 공덕동 일대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을 견인하는 주요 거주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신민당사 터에서 마포대교 방향으로 300m가량을 걸었다. 주상복합 건물인 트라팰리스가 나온다. 신년 벽두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곳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무실이 이곳에 있다. 140㎡(42평) 오피스텔에 직원 11명이 근무 중이다. 실질적인 대선 교두보다. 반기문 전 총장 측은 내부 공개를 극도로 꺼렸다. 어떤 인사들이 출입하는지 사전에 노출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캠프를 꾸리는 초반이다 보니 여러모로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내부 구조는 잘 알고 있다. 김태랑 전 국회 사무총장이 한때 그곳에 개인 사무실을 뒀다. 방문할 때마다 정치인 사무실로 쓰기 좋은 구조라는 생각을 했다. 적당한 크기의 거실을 갖춘데다 방 세 개가 한쪽으로 몰려 있어 보좌진 업무에 쓰기 적합하다.

부근의 부동산에 들어갔다. 공인중개사 A씨는 “반 전 총장이 여기에 사무실을 얻은 걸 우리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며 “사무실을 구할 때 미리 어떤 용도라고 얘기하고 얻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40㎡의 월세는 대략 보증금 3000만원에 250만원 선이다. 여의도가 아닌 마포에 사무실을 얻은 이유를 묻자, 반기문 캠프의 김정훈 보좌관은 “여의도에 가기도 편하고 지리적으로 교통이 좋다는 추천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기문 캠프가 이목을 끌며 마포에 있는 야권 후보들의 사무실이 함께 주목받았다. 당장 반 캠프 바로 옆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싱크탱크가 있다. 성우빌딩 7층에 있는 ‘정책네트워크 내일’(이하 내일)이다. 최상용 전 주일대사와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가 각각 이사장과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내일은 2013년 마포에 터를 잡았다. 내친김에 안으로 들어가 봤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연구소는 조용했다. 직원 두 명이 업무를 하고 있었다. 여러 곳으로 전화를 돌리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업무는 중단됐다.

김경순 선임연구원은 “네트워크 개념의 연구소이다 보니 상주 직원을 여럿 두진 않는다. 그때그때 외부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식으로 일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에게 마포에 자리 잡은 이유를 물었다. “적당한 곳을 찾으려고 매물을 뒤졌는데 마침 이곳이 비어 있었다. 여의도에서 가깝고, 외부인사들이 찾아오기 쉽다. 여의도로 옮겨갈 계획은 없다.”

성우빌딩에서 마포대교 방향으로 100m쯤 걸어와 길을 건너면 일신빌딩이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이곳엔 국민의당 당사가 있었다. 어렵게 구한 자리였다. 당시 건물주를 설득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건물주들은 일반적으로 정당이나 대선 후보의 사무실이 들어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건물 안팎에서 시위가 잦아질 게 뻔하고, 경찰과 언론 종사자들이 들락거리는 걸 다른 세입자들이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신빌딩은 정치와 인연이 있는 건물인지, 16년 전에는 ‘비선실세의 터전’을 품었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내외문제연구소다. 동교동계의 계보 사무실이자, 막강한 막후 영향력 때문에 한때 ‘민주당 마포당사’로 불렸다.

사실 마포는 DJ와 동교동계의 정치적 고향이라 할 수 있다. 동교동 자체가 마포구일 뿐더러 DJ와 민주당계가 처음으로 당 소유의 건물을 가져 본 곳도 마포다. 1988년 평화민주당은 마포 용강동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을 구입했다. ‘김대중 자서전’ 한 대목이다. ‘마포에 있는 민주당사는 우리 민주 진영의 모든 것이 스며 있었다. 애환이 켜켜이 서린 곳이었다. 그러나 이기택 대표를 비롯하여 지도부가 버티고 있었다. 나는 5층짜리 마포 당사를 포기했다. 정말이지 피눈물을 흘려 마련한 당사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부에서는 들어가 대표 경선을 해서 당사를 되찾자고 했다. 물론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국민 앞에 추태를 보이기 싫었다.’

1988년 당시 마포는 가히 야권 중심가였다. 여소야대 형국이었으니 실질적인 정치 1번지였다. 제1야당인 평민당이 옮겨온 후 YS의 통일민주당도 마포로 옮겨온 덕이 컸다. 통일민주당은 공덕동 로터리 제일빌딩에 터를 잡았다. 통일민주당 당사는 일부에서 ‘카바레 당사’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제일빌딩에는 카바레가 있었다. 밴드의 음악소리가 총재실에까지 들려왔다. 지금도 제일빌딩엔 술집, 노래방 등의 유흥업소가 자리하고 있다.

마포대로변을 지키고 있던 양김(金) 외에도, 마포엔 서울 민통련 등 20여개 재야 단체가 있었다. 그해 창간한 한겨레신문도 마포구 공덕동에 사옥을 지었다. 1993년 영국에서 귀국한 DJ가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대선을 준비한 곳도 마포다. 강변북로를 달리다 보면 보이는 강변 한신코아 1411호가 바로 ‘밤섬 아지트’였다. 비밀 대선캠프. DJP연합 구상이 여기에서 탄생했다. 당시 DJ 곁을 지킨 장성민 전 의원은 가든호텔 바로 옆에 있는 아크로타워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광산회관의 문재인 싱크탱크

우연일까. 밤섬 아지트 옆 빌딩에선 정계은퇴 후 돌아온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향후 행보를 구상 중이다. 다보빌딩 11층,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사무실이다. 흔히 ‘불교방송 빌딩’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김주한 특보는 “넓은 공간을 구하느라 마포에 사무실을 구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개인 사무실이지만 캠프 사무실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충분한 곳을 찾아다녔다는 얘기다. 사무실에 가봤다. 들은 대로 사무실 앞쪽으로 공실인 공간이 있었다. 개인 사무실 분위기는 아니었다. 예닐곱 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회의실에서는 회의가 한창이다. 1월 22일 출범하는 국민주권개혁회의 때문이다. 대선을 염두에 둔 조직이다. 김 특보는 “손 대표는 국민주권개혁회의를 모태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캠프가 다보빌딩에 자리를 잡은 데는 강진 생활 동안 깊어진 불교계와의 유대도 있는 듯하다. 손 전 대표의 강진 토굴은 백련사 내에 있었다. 다보빌딩은 대한불교진흥원의 소유다. 다보빌딩 지하 커피숍엔 캠프 관계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다보빌딩을 나오니 바로 옆에 한신오피스텔이 보였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장관의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82㎡(25평)짜리 오피스텔 두 호를 합쳐 만든 사무실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한때 이인제 전 의원의 사무실도 이곳에 있었다.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마포우체국 옆길(토정로)을 따라 약 200m를 걸어가면 광산회관이 나온다. 이 건물에 ‘정책공간 국민성장’(이하 국민성장)이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싱크탱크다. 지난해 10월 출범해, 실질적으로 11월에 문을 열었다. 일종의 정책 생산 전문가그룹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실질적 좌장이다. 약 850명의 교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국민성장 측은 설명했다. 대선후보 중 최대 규모다.

만약 헌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고 두 달 뒤 선거가 치러진다면 다음 대통령은 공약을 설계하고 인수위원회를 가동할 충분한 시간 없이 집무를 시작하게 된다. 문 전 대표는 야권 지지도 1위의 대선후보다. 국민성장은 차기 정부에 바로 쓰일 수도 있는 정책을 설계하는 조직인 셈이다.

매주 한 번 포럼을 여는데 주로 경제 분야를 다룬다. 국민성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입구 어디에도 국민성장이라는 표시는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비교적 넓은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약 200㎡(60평) 규모다. 수십 명이 제각기 바쁘게 업무를 처리 중이었다. 기자가 들어가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들락거리는 방문자가 많다는 얘기다. 긴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관계자에게 신분을 밝히니 문 밖으로 잡아끌었다. 어떤 인사가 드나드는지 기자의 눈에 띄는 걸 경계하는 눈치였다. 왜 마포에 사무실을 얻었는지 물었다. “여러 조건이 맞았다. 임대료나 크기 등등의 조건이 맞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광산회관의 소유주는 광산김씨 대종회다. 광산김씨 대종회 관계자는 “문재인 캠프로 쓰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사사로운 건물이 아니고, 대종회 건물이기 때문에 노래방이나 술집 같은 유흥업소는 안 받는다. 교수들 모이는 연구소라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원래는 영어학원이 있었는데 나갔다. 한 달 동안 공실이었는데 들어온다고 하기에 계약했다. 우리 쪽에선 2년을 원했는데 (국민성장 측에서) 1년을 원해서 1년으로 계약했다.”

광산회관 사무실의 한 달 임대료는 310만원이다. 국회 바로 맞은편 건물의 약간 더 좁은 넓이의 오피스텔 임대료는 보증금 2000만원 기준 200만원 선이다. 임대료가 저렴해 마포로 왔다는 설명은 과연 사실일까. 여의도의 부동산 관계자들 얘기는 다르다. 국회의사당 맞은편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B씨는 “임대료 때문에 마포로 가는 게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B씨의 설명이다.

여의도보다 비싼 마포로 모이는 이유

“여의도와 마포의 임대료는 비슷하거나 심지어 여의도가 좀 더 저렴하다. 대선후보들이 마포에 사무실을 얻는 유일한 이유는 ‘보안’이다. 문 열면 아는 사람이 지나다니니 신경 쓰이는 거다. 게다가 사실 여의도 건물주들은 정치인이 들어오는 걸 싫어한다. 신용이 좋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다. 단기로 잠깐 쓰면서 월세까지 안 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오피스텔 주인들 중에는 월세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쟁이 생기면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러면서 ‘그동안 소득신고 안 한 거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많았다.”

만약 세 들었던 후보가 당선이 되면 건물의 가치가 올라가지 않을까. 여의도의 공인중개사 C씨는 고개를 저었다. “당선된다고 임대료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이완구 총리가 총리 지명 당시 국회의사당 맞은편 LG에클라트에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그 방이 국무총리 나온 방이라고 각광을 받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최근 대선 후보 캠프는 깔끔하게 건물주 요구에 맞춰주는 편이다. 문제는 외곽 조직이다. 그분들도 이제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사무실을 얻으러 다닌다.”

국민성장을 나와 서교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홍대입구역과 합정역이 걸쳐 있는 지역이다. 여기에만 가도 전통적인 마포와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좁은 의미의 마포는 보통 마포역에서 애오개역을 아우르는 구간을 뜻한다. 서교동, 합정동, 연남동 쪽은 젊은이들의 거리다. 부근에 홍익대와 서강대가 있다. 경의선 숲길이 조성된 후에는 공원 풀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연트럴 파크’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인근의 망원동은 혼자 살기 좋다는 게 알려지며 1인 가구 비율이 급속히 올라가는 지역이다.

마포구의 정치적 성향을 따지면 야권에 가깝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55% 이상을 득표한 두 군데 지역 중 하나다. 다른 한 곳은 관악구다. 총선에서도 마포갑은 모두 야당이 이겼다.

서교동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싱크탱크 ‘희망새물결’이 있다. 지난해 9월 출범했다. 박 시장의 대선 행보는 4개 조직이 지원하고 있다. 희망새물결, 노동포럼, 분권나라, 시민시대포럼이다. 희망새물결은 시민사회 부문을 맡았다. 출범 당시 김용채(광주경실련 전 공동대표), 김인숙(한국여성민우회 전 상임대표), 이수호(민주노총 전 위원장), 임수진(한국농어촌공사 전 사장), 임재택(부산대 명예교수), 조명래(단국대 교수) 등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집행위원장은 오성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 운영위원장,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였다.

희망새물결이 입주한 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엔 인테리어 자재가 놓여 있었다. ‘희망새물결’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160㎡쯤 되는 사무실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 흩어져 앉아 있는 사람이 몇 명 눈에 띄었다. 업무가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침체되어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개점 휴업 상태라는 말이 떠올랐다. 박 시장 측 관계자에게 어찌된 사정인지 묻자 “재정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희망새물결은 임의단체다. 안철수 의원 측의 싱크탱크인 내일은 사단법인이다.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

연구소·재단… 외곽조직도

싸늘한 분위기 때문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이하 더연)가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외곽조직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2013년 문을 열었다. 더연 측은 일단은 안 지사와 선을 긋고 있다. 박다원 총무팀장은 “안 지사는 더연의 상임고문일 뿐이며 연구소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8명가량의 상근 연구원들이 근무 중이다. 안 지사와 상관없다고는 하지만 곳곳에서 안 지사와의 관련성이 보였다. 전면 책장엔 안 지사가 쓴 책들이 표지가 잘 보이게 놓여 있었다. 평균연령 30대의 연구원들은 밝은 표정이었다. 전체적으로 여유가 느껴졌다. 야권 후보 중 비교적 ‘길게 보며’ 대선을 준비 중인 안 지사 캠프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공용 테이블 위에는 후원 방법을 알려주는 리플렛이 놓여 있었다. 되도록 연구소 자체적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해 긴 안목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려는 듯했다.

원래는 여의도 금산빌딩에 있었다. 201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이유를 물었다. 박 팀장의 답이다. “금산빌딩보다 여기가 임대료가 훨씬 싸다. 월세만 보면 약 50만원가량 절약된다. 당시 연구원들이랑 상의를 해보니 다들 교통이 좋은 곳으로 옮기자고 했다. 연구소 성격을 바꾸려 옮겨온 면도 있다. 국회 바로 앞에 있을 때는 연구소라기보다는 사랑방으로 많이 쓰였다. 지금은 연구 쪽으로 중점을 두려 한다. 대중 접점을 넓히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마포역 부근과 서교동 사이에 있는 신수동도 야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1995년 창당 때부터 2006년 해산 시점까지 자민련의 둥지였던 자민련 당사가 신수동에 있었다. 마포당사는 1996년 15대 총선 대승(50석), 1997년 ‘DJP 연대’를 통한 공동정권 창출 등 자민련의 전성기를 쭉 지켜봤다. 2006년 7월 개인사업가에게 팔렸다. 매각 금액은 52억5000만원. 당시 김학원 자민련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식으로 합당이 진행됐기 때문에 매각 대금도 한나라당에 귀속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선관위의 브레이크로 귀속은 불발됐다. 정당은 아니지만 노무현재단도 신수동에 터를 잡고 활동 중이다. 마포는 ‘큰 그림을 그리는’ 야권 세력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해왔다. 크고 작은 정당이 마포에서 꿈을 키웠다. 국민참여당을 창전동, 사회당과 노동당은 각각 공덕동, 서교동에 당사를 뒀다.

여의도와 광화문 사이에서 야권 중심가로, 와신상담의 기지로, 야권의 인큐베이터로 변신하며 시대를 지켜본 마포. 올해는 대권으로 가는 정류장이 될 수 있을까.

풍수로 본 마포

“원래는 버려진 땅… 서울의 풍수가 변했다”

“마포는 풍수적으로 버려진 땅이다.” 풍수학자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말이다. “풍수적으로 버려졌다는 건 어떤 ‘격’이라든가 땅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마포는 서울이 아니었다. 마포나루가 있어 젓갈 유통을 해 돈을 번 사람이 꽤 있었다. 그 시대에는 돈을 많이 벌었다고 대우받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얕잡힐 수도 있었다.” 동양학자 조용헌씨도 같은 얘기를 했다. “마포는 풍수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조선시대에는 경강상인들을 위한 객주가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1층엔 화물을 부리고 2층에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도 마포에서는 매년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가 열린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이종석 별장’도 마포 젓갈과 관련이 있다. 유적의 역사를 조사해 정리한 행정안전부 향토자원 조사를 보면, 1900년 이곳에 별장을 지은 이종석은 마포의 젓갈 거상이었다. ‘사대문 안 사람들’은 마포 부자들을 은근히 깔봤다고 한다. 마포에서 돈을 번 젓갈 상인이 성북동에 집을 지은 이유다.

시대가 변하는데 풍수는 변하지 않을까? 최 교수는 “서울의 풍수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징성을 부여하기 시작하면 땅의 성격이 변한다. 여의도를 봐라. 이름 자체가 ‘너나 가지라’는 뜻이다. 한강에 홍수만 지면 덮이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세상이 바뀌니 정치와 금융의 중심가가 됐다. 마포도 같다. 과거 부를 일구는 터전이었던 곳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권력과 동일시 못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의미는 붙이기 나름이다.”

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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