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설을 전후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캠프가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중앙 정치권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본격적으로 반 전 총장 지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반 전 총장의 대선캠프는 현역 국회의원 위주로 전환될 공산이 크다. 현재 외교관 중심의 캠프 운영은 “미숙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국의 흐름을 제대로 짚지 못한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이와 동시에 특정 정당을 선택해 입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반기문발 정계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도 나온다. 자금과 조직난을 호소한 바 있는 그는 현재로선 바른정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에 합류할 경우 새누리당 충청권 국회의원과 수도권 일부 의원들이 반 전 총장을 지원하기 위해 2차 탈당을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반 전 총장의 최측근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캠프 운영과 일정관리 등에서 아마추어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설 연휴를 전후한 시기에 캠프의 얼굴이 새롭게 바뀔 것이다. 아직 출마를 공식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캠프 구성이 확 달라질 것이다.”

반 전 총장 캠프의 새로운 좌장 후보군으로는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용태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충청권 출신 인사들이 설 연휴 이후 반 전 총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부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4선의 정진석 의원이 최근 “설 연휴 이후 반기문 총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충청권 다선 의원 중 한 명이다. 정 의원은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 뉴욕을 방문해 반 전 총장과 직접 만나, 귀국 후 행보에 대해 구체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반 전 총장이 귀국 시 내세운 개헌과 국민대통합 메시지 등은 정 의원과의 대화에서 구체화됐다고 한다. 최근까지 정 의원 등 현역의원들이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반 전 총장이 “순수하게 전국을 돌며 귀국 인사를 하겠다”면서 양해를 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충주)과 경대수 의원(증평진천음성)은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가진 지역 행사에 참석하며 사실상 반 전 총장 라인에 합류했다. 반 전 총장 측은 행사 참석을 제한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음성군과 충주 지역 국회의원인 이종배·경대수 의원의 행사 동행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대수 의원의 경우 “반 총장님이 정하시는 길로, 공산당만 아니면 따라가겠다”면서 친반 행보를 공식화한 바 있다. 충북 지역의 박덕흠 의원을 비롯 충남에 지역구를 둔 홍문표·이명수·성일종 의원 등이 반 전 총장 지원을 위해 새누리당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 바른정당 소속의 홍문표 의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사들은 현재 새누리당 소속으로 있다. 충청권 출신인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서청원, 최경환 등 친박 실세들을 출당조치하고 궁극적으로 반 전 총장과 함께 충청권 대망론에 뜻을 함께할지가 주목받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행보를 지원하기 위한 충청권 결집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후 충청권에서 유력 대선후보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충청권 인구가 호남을 제치고 치러지는 첫 대선이라는 점에서 반기문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 인사들의 응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19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19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photo 뉴시스

충청 인구, 호남 제치고 치르는 첫 대선

지난 1월 14일 반 전 총장이 충북 음성군에 있는 선친 묘를 방문할 당시 충청 출신 각계 인사들이 행치재 마을 입구에 운집해 인산인해를 이룬 게 대표적 징후로 손꼽힌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 이날 반 전 총장을 만나기 위해 음성군을 찾은 인사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 일부 반씨 문중 인사들은 돌배기 손주를 데리고 현장을 찾았다. 이날 반 전 총장은 예정보다 1시간30분가량 늦게 선친 묘에 도착했다. 당시 현장에 참석했던 손인석 전 JC 중앙회장은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충북뿐만 아니라 충남에서 반기문 전 총장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반 전 총장을 에워싸는 바람에 정작 반씨 대종회 측 인사들은 반 전 총장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도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반풍(潘風)몰이’가 확대되길 내심 바라고 있다. 반 전 총장 캠프 소속 김봉현 전 호주대사는 이날 음성군과 충주시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반 전 총장의 귀국 환영행사를 자제해 달라고 사전에 요청했다. 음성군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충주시 측은 반 전 총장의 귀국 환영행사를 강행했다. 행사 직후 반 전 총장은 “자발적 환영행사 개최는 막을 이유가 없다”면서 “추운 날씨에도 체육관을 가득 메운 충주시민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났지만 초·중·고교는 모두 충주시에서 다녔기 때문에 충주에 그의 학연이 집중돼 있다. 충주 출신의 윤진식 전 장관 등이 반 전 총장을 적극 돕고 있는 것도 충주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검사 출신의 김홍일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반기문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연말 시사저널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본격적인 검증대에 올랐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무현 정권 당시 정관계 로비로 사세를 확장했다는 의혹이 일어 2008년 말부터 국세청과 검찰의 집중조사를 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 박 회장의 일부 비자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밝혀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에 연루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 전 총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반 전 총장 측의 대응은 미온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숙 전 유엔대사 등 국내에서 반 전 총장 측 인사들은 해당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선에서 대응했다. 반 전 총장이 귀국을 앞두고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정치권 일각에서 “반기문 총장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됐다. 김숙 전 대사는 “기사가 사실무근이라면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조언을 수용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반 전 총장 캠프 측에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정무적 판단 미스’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김홍일 전 중수부장이 반기문 캠프에 합류한 것은 앞으로 이와 같은 네거티브 전략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김홍일 전 중수부장은 그동안 정치권과 인연이 없던 인물이다. 반 전 총장이 입국과 동시에 충청권 대망론에 불을 지피자 반 전 총장의 법률자문팀에 선뜻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중수부장은 특수부 검사 출신의 박민식 전 의원도 법률자문팀에 끌어들였다. 이로써 김숙·김봉현 전 대사, 곽승준 고려대 교수, 이상일 전 의원, 이도운 전 서울신문 부국장 등으로 짜여졌던 초기 반기문 캠프의 외연이 점차 비외교관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맞고 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연광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 최형두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이 주도하는 여의도팀은 반 전 총장의 45년 지기인 충남 서산 출신의 김모씨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충청권 출신의 현직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과 오랫동안 친분을 나눠온 인사다. 김덕룡 전 의원 등 김영삼 전 대통령 측과도 가깝다.

충북을 대표하는 이시종 충북지사는 현재 민주당 소속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대학 선배인 반 전 총장의 대권가도에 역할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북도의회 의장으로 이 지사와 함께 2년 동안 도정을 함께 이끌어온 이언구 전 충북도의회 의장은 주간조선과 전화통화에서 “이시종 지사도 (반 전 총장을 돕지 못해) 꽤 답답해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나면 어떻게든 도울 방법을 찾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언구 전 의장은 반 전 총장의 충주고 후배다. 그는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장기간 해외에 체류할 때 반 전 총장의 어머니에게 김장을 해드리는 등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의장의 말을 들어 보자. “충청도 사람들은 나서서 뭔가를 하는 성격이 아니다. 대부분 심정적으로 반 전 총장을 응원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나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설 연휴가 지난 뒤에는 지금과 다르게 움직이시지 않을까 싶다.”

충북 지역 지자체 단체장은 대체로 반 전 총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 전 총장의 고향 지자체장인 이필용 음성군수와 반 전 총장 부인 유순택 여사의 고향인 괴산군(김창현 부군수)이 앞장서고 있다. 이밖에도 새누리당 소속의 충청도의회 의원들이 반 전 총장의 고향에서 든든한 우군으로 역할하고 있다. 지역 출신 원로 중에는 신경식 헌정회장과 박봉식 전 서울대 총장,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 김충배 육군사관학교 총동문회장 등이 반 전 총장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글로벌반기문국민협의체’를 만들어 반 전 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반하다3040·충청포럼 등 외곽조직 활발

반 전 총장의 외곽조직도 충청권 출신을 중심으로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충청권 유력인사들의 모임인 백소회(백제의미소)는 충남 논산이 고향인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이 총무를 맡아 반 전 총장을 지원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충청권 출신 정치인과 언론인 등이 대거 포진해 있다. 임 회장은 또 반사모(반기문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의 상임고문도 맡고 있다. 지난 1월 8일 반사모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중앙회 출범식을 갖고 전국 단위 조직으로 확대를 추진 중이다.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최근 충청포럼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대신 김현일 부회장이 당분간 회장을 맡기로 했다. 중앙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김현일 부회장은 충북 음성 출신이며 반기문 총장의 충주고·서울대 후배다. 지역에서는 반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주도하는 반기문 팬클럽인 ‘반하다3040’은 한국JC 소속의 충청권 인사들이 주도해 만든 단체다. 이밖에도 안홍준 전 의원과 장청수 전 대통령 통일고문이 이끄는 인망정책포럼은 반 전 총장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출범했다. 팬클럽 ‘반딧불이’도 최근 정책자문을 위해 ‘글로벌시민 포럼’을 만들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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