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명한 중국철학사’(형설)와 ‘중국철학사’(까치).
‘간명한 중국철학사’(형설)와 ‘중국철학사’(까치).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3월 26일 매일경제신문 34면에 ‘내 삶을 바꾼 책’이라는 기고를 했다. ‘한나라당 전(前) 대표’의 직함을 단 이 기고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의 삶을 바꾸어놓은 책으로 펑여우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를 소개했다. 해당 신문의 기획 시리즈 두 번째 기고였다. 이 글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과 ‘중국철학사’와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2살 나이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내 인생의 행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내가 꿈꾸었던 삶은 접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 아버지마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다. 20대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시련이 몰려왔다. 부모님 모두를 총탄에 보내야 했던 충격에다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온갖 비난의 화살을 감당해내야 했다.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책이 ‘중국철학사’라고 박근혜 대통령은 적어놓았다.

“그때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바로 펑여우란의 ‘중국철학사’다. 논리와 논증을 중시하는 서양철학과 달리 동양철학은 깨달음을 중시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펑여우란 선생의 ‘중국철학사’ 역시 자신을 바로 세우고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와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와 가르침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여기서 ‘그때’란 1952년생인 박 대통령이 22세 때인 1974년에서 29세가 되는 1981년 사이의 기간으로 보아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중국철학사’에서 얻은 교훈이 무엇이었던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다. ‘중국철학사’를 읽으면서도 깊이 공감이 가고 깨달음을 준 글귀들을 한 자 한 자 노트에 메모를 하면서 함축된 언어와 행간에 숨겨진 진리를 마음에 새겼다. 요즘도 가끔 옛날 노트를 들여다본다. ‘최선의 수양 방법은 고의적인 노력이나 목적을 둔 마음 없이 자기의 할 일을 다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도가들이 말하는 무위이며 무심(無心)이다.’”

“공자는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나머지 문제점을 명(命)에다 남겨두었다. 명을 안다는 것은 현존하는 세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자기의 외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상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 밖에도 ‘자기 자신을 언제나 남의 입장에 두고 살펴보라.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깊은 방안에 앉아 있더라도 마음은 네거리를 다니듯 조심하고, 작은 뜻을 베풀더라도 여섯 필의 말을 부리듯 조심하면 모든 허물을 면할 수 있게 된다’는 글귀들은 지금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글의 뒷부분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런 과정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중국철학사’를 비롯한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명상을 하고, 매일 일기를 쓰면서 나를 돌아보며 마음의 중심을 잡아갔다.… 오랜 세월 묻어두었던 동양정신의 유산을 빛나는 보석으로 닦아내서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가르침을 주는 펑여우란 선생의 ‘중국철학사’,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선거에서 당선이 됐고,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13년 1월 10일 특사로 서울에 온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부부장도 박 당선인에게 “펑여우란 선생이 바로 나의 스승”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 당선인이 2007년 3월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나, 이후 2007년 5월 월간 에세이라는 잡지에 비슷한 내용으로 기고한 글을 입수해서 읽고서 한 말이었다.

박 대통령의 ‘중국철학사’ 애호는 그렇게 해서 중국 외교가와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말 한국 대통령으로서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중국인들 사이에서 박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펑여우란 선생의 ‘중국철학사’를 읽고 인생의 슬픔을 이겨낸 한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라고 수많은 중국 온오프라인 매체들이 보도하는 바람에 엄청난 수의 퍄오진후이(朴槿惠) 미니 블로그가 생겨날 정도였다. 2013년 6월 29일 박 대통령이 칭화(淸華)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난 직후에는 1990년에 이미 사망한 펑여우란 선생의 외손녀가 ‘일편빙심 재옥호(一片氷心在玉壺·한 조각 얼음처럼 맑은 마음이 옥항아리에 담겨 있네)’라고 펑여우란 선생이 직접 쓴 족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읽은 것이 ‘중국철학사’인가, 펑여우란 선생의 또 다른 저작인 ‘중국철학간사(中國哲學簡史)’인가” 라는 물음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논쟁의 결론은 “‘중국철학사’는 대화체의 백화문(白話文)판이 없고 중국 고전과 마찬가지의 문언문(文言文)으로 되어 있어 웬만한 실력의 중국인도 읽기 힘들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20대의 젊은 시절에 읽었다는 펑여우란 선생의 저서는 1940년대 펑여우란 선생이 미국 대학에서 강의할 때 중국철학을 쉽게 설명한 내용을 영어로 출판한 ‘중국철학간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펑여우란의 ‘중국철학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시절인 1977~1981년보다도 무려 20년 가까이 흐른 1999년에야 까치출판사가 첫 한글 번역본을 내놓았다. ‘간명한 중국철학사(중국철학간사)’는 정인재 교수(현 서강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1977년에 형설출판사가 출간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20대에 보았다는 펑여우란의 저서는 정확히는 ‘중국철학간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책 이름을 ‘간명한 중국철학사’라고 붙인 데도 원인이 있을 것이며, 같은 저자가 쓴 저서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55세 때인 2007년에 20대 시절의 메모를 보아가며 “자기 자신을 언제나 남의 입장에 두고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인(仁)”이라거나 “자기의 외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상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명(命)”이라고 치열한 독서 메모를 한 박근혜는 과연 어디로 갔느냐는 점이다.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박 대통령이 젊은 날의 ‘중국철학사’ 독서 메모도 다시 읽어보고, ‘중국철학간사’가 아닌 ‘중국철학사’ 한글 완역본 상하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젊은 시절에 이어 또 한 번 마음을 가다듬기를 권해 본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