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에서 열린 대학 입시 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에서 열린 대학 입시 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2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교육혁명 토론회’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안철수 의원이 이날 오전 내놓은 학제개편안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고 이른바 ‘5-5-2’ 학제로 학교를 재편하겠다는 공약이다.

학제개편안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앞당기는 것과 같은 학제개편안을 정부와 학계에서 논의한 적 있다. 2015년 당시 새누리당에도 초등 입학연령을 만 5세로 하고 ‘5-5-4’ 학제를 기본으로 하는 학제개편안을 제시한 적 있다. 그러나 당시 교육부에서는 “예산이 많이 들고 효용이 낮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 안 의원이 들고나온 학제개편안에 대해서도 교육계에서 다시금 찬반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2월 8일 열린 토론회에 참가한 교육학자·교사들은 “당장 학제개편이 필요한지부터 논의가 필요하다” “학제개편의 단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의견이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안선회 중부대 교육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경감, 진로교육 확대, 직업능력 향상 같은 문제의식에는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제개편이 그 문제를 해결해줄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 교수는 “학제를 개편해야 한다면 초등학교를 1년 단축하고 고등학교를 1년 늘리는 ‘5-3-4’ 등 소규모 학제개편으로도 충분하다”면서 “학제개편안은 교육의 기본 틀을 흔드는 정책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안 교수처럼 학제개편안 자체의 효과와 효율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교육학자가 많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이미 여러 번 학제개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결국 시행하지 못한 이유는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총장의 말에 따르면 학제개편안은 “얻는 효과보다 잃는 피해가 더 크다”. 학제개편안은 학제만 조정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5학년으로 늘어나는 중학교는 시설은 물론 교원도 확충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과정 중 무엇을 중학교 과정으로 넘기고 고등학교 3학년 과정 중 어떤 것을 당겨올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붕 뜨는’ 학년이 생기기 마련이다. “6학년까지 마치고 졸업하는 학생과 5학년만 마치고 졸업하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졸업하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2배가 되는 순간이 옵니다.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을지는 나중에 논하더라도 당장 피해 입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확합니다. 학생들이죠.”

학제개편이 가져올 혼란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는 교육학자도 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6년-3년-3년’인 학제와 ‘9년-3년’인 교육 과정, ‘6년-6년’인 교원 양성 과정 간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학제는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으로 진행되는데 국민교육공통과정은 9년으로 끝난다. 그런데 교원 양성은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와 중·고교 6년 과정을 양성하는 사범대학으로 나뉘어 있다. “이 상황에서 학제만 따로 개편된다면 교육 과정과 교원 양성 과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는 게 홍 교수의 말이다.

5세 입학을 반대하는 이유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안 의원의 학제개편안에서 가장 큰 반발을 사는 부분 중 하나는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춘다는 것이다. 입학연령을 낮추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저출산 시대에 좀 더 이른 시기에 인력을 배출해 젊은 취업자를 늘리고 나아가 결혼·출산 연령도 낮추자는 의도에서다. 여기에 빨라진 아동들의 발달·성장 속도를 고려해 보면 만 6세 입학이 늦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먼저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초등 입학연령을 낮추는 것은 “근시안적인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간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최악의 취업난이 계속된다고 합니다. 취업난의 원인은 공급과 수요가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들을 더 빨리 풀어놓자고 하는 것은 취업률을 악화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봐도 만 5세 입학보다는 만 6세에 의무교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각 주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이 다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만 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주에서도 연령을 상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한 주도 있습니다.”

만 5세보다 만 6세가 의무교육을 시작하기에 적절하다는 의견은 유아 교육 전문가들이 주로 주장하는 바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정신과 의사, 뇌신경학자, 유전학자들이 모두 지적하는 바를 보면 최소한 만 5세까지는 부모나 부모에 준하는 사람의 밀착된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가르치는 것,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 모든 것이 다릅니다. 교원들의 자세도 다르고 교수 방법도 다르지요. 만 5세에 입학한다고 하면 초등학교 교사가 유치원 교사와 같은 보육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유치원보다 더 공적이고 큰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만 5세 입학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주장이고 아이들을 직업 능력을 키워야 하는 기계적인 존재로 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주의 경우 만 5세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1년간은 우리의 병설유치원에 해당하는 파운데이션 코스(foundation course)를 거치게 돼 있다. 즉 유아교육의 1년 과정이 공교육에 편입된 형태다. 이 명예교수는 “유아 교육을 공교육에 편입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해야 할 상황에서 유아 교육을 축소시키고 학교 교육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초등학교 과정을 5년으로 축소하는 것 또한 여러 반박에 부딪히고 있다. 2006년 당시 전방위적으로 논의되던 학제개편 문제에 대해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미래사회에 대비한 학제개편 방안’ 보고서를 보면 초등학교 과정을 단축하는 데 대한 단점이 제시돼 있다. “중·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인교육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인 초등학교 기간을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함으로써 그만큼 학업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위기하에서 인성교육 및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 역시 이 같은 근거로 초등학교 학제 단축을 반대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중 어느 곳이 시험과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박 전 총장은 “중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라는 것은 학업 공부에 매진하는 시간을 1년 더 늘리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초등학교는 담임이 교실에 상주하면서 거의 모든 일과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자연히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교실 내의 일을 속속들이 알게 되지요. 아이들의 사회성, 도덕성을 기르는 데 적절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면 담임은 하루에 한두 시간만 보는 ‘관리자’가 됩니다. 아이들은 방치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박 전 총장은 반항적인 사춘기를 의미하는 ‘중2병’이라는 신조어를 언급했다. “왜 ‘중2병’이 ‘초6병’이 아니라 중학교 2학년 때 나타나는 걸까요. 중등 교육 방식을 바꾸지 않은 채로 초등학교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주장은 아이들의 인성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입니다.”

목적에 맞지 않는 ‘5-5-2’ 학제개편안

중학교 과정을 5년으로 늘리고 진로에 따라 고등학교 과정을 진로탐색학교 혹은 직업학교 2년으로 하는 방안을 비판하는 교육학자들도 있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목적과 방법이 거꾸로 된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진로 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의 직업 능력을 강화하려면 오히려 고등학교 과정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다음 학교를 위해 준비하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고등학교 2년이 진로 혹은 직업학교로 나누어진다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중학교부터 준비를 시작하겠죠. 시작할 때는 중학교 때도 진로 및 직업 교육을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전 단계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안 교수는 “결국은 직업 교육이 2년으로 축소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데다가 사교육 부담도 좀 더 일찍부터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만약 직업 능력과 진로 교육을 강화하고 싶다면 현재의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학제개편은 무진장의 돈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무작정 학제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학제로도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은 또 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의 학제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교육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평소에 3×5 학제를 주장해 왔다. 이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등학교 전반기 각 3년씩은 보다 인성 교육과 사회성 발달 등 종합적인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사람에 따라 발달 정도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유연한 학제 운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는 유급제도가 유명무실한데 사실은 초반에 발달속도가 다를 때 유급제도를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앞선 학제 6년을 유연하게 운영하면서 개별 아이에게 맞는 학습 과정을 실천시켜줄 수 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후반기 3년과 중학교 3년 과정에서 진로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직업학교 2년, 진로학교 2년의 형식으로 딱 정해놓는 식은 진로와 직업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예체능같이 적성이 빨리 발현되고 직업 전성기가 이른 진로의 경우에는 다른 계열보다 앞서 직업 교육을 받아야 하고 인문 계열은 천천히 받아도 됩니다.” 홍 교수는 “결국 학제란 ‘학생들을 어떻게 묶느냐에 대한 논의의 결론’이라면서 학제를 바꾸고 다른 것을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 정책과 운용에 대한 합의가 있고 나서 바꿀 수 있는 것이 학제”라고 설명했다.

핀란드는 이른바 ‘통합학교’를 운영한다. 우리의 초등학교·중학교에 해당하는 9년을 한 학교에서 보내게 된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3년의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지만 다양한 형태의 직업 전문학교도 존재한다. 학교마다 학기를 나누는 방법도 달라 학기가 없는 학교에서 4~5학기로 나누는 학교까지 다양하다. 학제가 어느 한 틀에 매인 것이 아니라 학생과 학교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번 학제개편안이 “보여주기식 공약”일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박남기 전 총장은 “여러 교육정책 중에서도 학제개편안은 눈에 띄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면서, 가장 급격한 개혁안처럼 보인다”면서 “교육 개혁을 하겠다는 명목 아래 설익은 학제개편안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홍 교수 역시 “학제개편안을 들어보면 솔깃한 점이 많다”면서 “하지만 공교육 약화, 사교육비 부담, 교육 불평등 강화 등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학제개편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짚었다.

이미 지난 10년 동안 학제개편을 실시했던 독일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원래 독일은 4년의 초등 과정을 거쳐 9년의 인문계 중등학교를 가거나 5년제 직업학교, 6년제 실업학교 등을 진학하는 13년 학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이 학제가 국제적으로 봐도 길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001년부터 서서히 12학년제로 개편됐다.

그러나 곧바로 혼란이 시작됐다. 두 개 학년이 같은 해에 대학입시를 치르거나 학교 시설이 부족하고, 교원 양성 과정에 혼선이 오는 등의 혼란이 이어졌다. 결국 최근 독일은 각 주별로 12년제가 아닌 13년제로 다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안선회 교수는 “각 나라마다 문화와 교육 목적에 맞는 학제가 있다”면서 “시뮬레이션을 하듯 학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외국의 학제를 보면 나라마다 다양하기도 하지만 한 나라 안에서도 주별로 매우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의무교육 기간은 만 6세부터 18세로 13년에 달하지만 일리노이주는 만 7세부터 16세로 10년에 그친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가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캐피털 테러토리(Australia Capital Territory)는 만 5세에 입학해 7년의 초등교육과 4년의 고등학교 교육을 거쳐 10학년에 진로를 결정하지만 노선 테러토리(Nothern Territory)는 7년의 초등학교 이후 3년제 중학교, 3년제 고등학교를 거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어느 하나의 방안을 정해 놓고 논의를 시작하는 안 의원의 학제개편안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선회 교수는 “학제개편에는 교육 행정, 교육 정책 한 분야의 전문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유아 교육, 교육 행정, 교수법 등 각 분야의 교육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학제개편이 적절한 방안인지부터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남기 교수도 “학제개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왜 굳이 하나의 방안을 밀어붙이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문가들과 논의하겠다고 하는데 정답을 정해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제개편안의 필요성에서부터 그 방안까지, 전문가마다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2006년에 학제개편안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흐지부지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도 여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름뿐인 교육개혁이 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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