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안철수 의원이 내놓은 ‘5-5-2제’ 학제개편안은 교육계 종사자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국의 교육시스템 안으로 아이들을 떠밀어 보내야 하는 엄마들은 참담하다. “어떻게든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대한민국 엄마들 중에는 웬만한 교육전문가 뺨치는 이들이 많다. 생생한 교육정보는 물론 정치와 경제정책, 4차 산업혁명이 몰고올 변화에 대해서도 줄줄이 꿰고 있는 엄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복잡다단한 데다가 수시로 바뀌는 이 입시제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다. 이들이 바라보는 ‘안철수식 학제개편안’은 어떨까. 이 땅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넷을 한자리에 모았다.

일등맘

학원교육의 1번지 목동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목동맘. 첫째 아이는 목동의 초등·중학교를 전교권으로 졸업해 특목고에 재학 중이고, 둘째는 일반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물려줄 재산도 없고, 아이가 특별히 다른 재능도 없으니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특목고 학부모이면서 특목고 폐지론자다.

중도맘

분당은 교육의 선택지가 넓다는 친구 따라 이사한 분당맘. 첫째는 서울의 사립대학교에, 둘째는 경기도 분당의 일반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극성맘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휩쓸리지 않고 ‘내 아이의 선택’을 우선시하는 교육철학을 지녔다. “공부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믿자맘

사교육발의 필요성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성동구맘. 첫째는 국제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고, 둘째는 혁신학교에 재학 중이다. “초등시절엔 독서와 여행 교육이 최고”라며 버티다가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교육에 백기 들고 투항했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지녔다.

놀자맘

사교육, 선행학습 이런 표현만 나오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노원구맘. 첫째는 사립초등학교에, 둘째는 공립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첫째 아이를 프랑스로 유학 보내라는 권유가 많지만 섣불리 진로가 정해지는 데에 반대한다. ‘최고의 교육은 놀이’라는 철학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일등맘 안철수 의원의 학제개편안은 처음엔 상당히 신선했다. 모든 엄마들은 지금의 교육제도는 아니라고 보고 어떻게든 뒤집어엎기를 바라는 열망이 크니까. 그런데 취학연령과 졸업연령을 앞당기는 것에는 반대다. 인간의 발달단계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돌이 되어야 걷지, 6개월에는 못 걷는다. 공부만 잘한다고 크는 것이 아니다. 과학고도 조기졸업자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조기졸업자 비율을 줄이는 추세다. 또 20세에 대학 들어가도 4년 만에 졸업하지 못하는데, 한 학년 당기면 대학 재학 기간만 1년 보탤 것 같다. 취업시장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학제개편은 의미 없다고 본다.

중도맘 나는 찬성한다. 초등학교에서 보면 고학년과 저학년의 차이가 너무 크다. 성장속도가 빨라져서 5~6학년은 반(半)성인이다. 현재의 4학년 연령까지 초등교육, 5학년부터 중등교육으로 묶는 건 좋다.

놀자맘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입학연령이 1년씩 빨라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한 살 당겨지든 늦춰지든 어쨌든 기존의 틀을 확 바꾸는 자체가 의미 있다.

믿자맘 나도 대찬성이다. 무엇보다 사교육이 확 줄 것 같아서 반갑다. 우리 아이들을 멍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교육 아닌가. 줄을 세우지 않고, 내신의 개념이 사라지면 사교육 시장이 대대적으로 줄 것 같다.

중도맘 사교육을 단순하게 보면 안 된다. 사교육은 엄마의 욕심이다. 단순히 교과교육뿐 아니라 줄넘기, 실내스키, 스피치학원 등 별별 것을 다 시킨다. 사교육은 우리 아이에게 더 좋은 경험을 심어주기 위한 엄마의 마음이다. 이 제도가 정착된다고 해서 사교육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다만 사교육의 시장이 대대적으로 재편이 될 것 같긴 하다.

일등맘 모든 사교육은 입시시장과 취업시장을 따라간다. 입시제도와 취업시장에 아울러서 변화를 준다면 굉장히 바람직하다. 큰아이가 얼마 전 현대자동차에 관심을 보이더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서. 고졸자에게도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번 학제개편이 진로탐색학교, 대학, 산업이 유기적으로 소통된다니 반갑다.

믿자맘 학제개편이 되어도 정착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므로 우리 아이들은 적용받지 못하는 세대다. 어떻게든 우리 아이들은 지금의 이 쓰레기 같은 교육제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낀 세대’의 희생양 같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 꼭 바뀌면 좋겠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엄마들의 사고방식은 과거 자신들의 세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문제다. 그러니 무조건 “노력하면 돼” “열심히 하면 돼”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압박한다.

중도맘 나는 엄마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우리 세대에는 대학만 나오면 무언가 손에 얻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대학을 졸업해도 여전히 불안하고 허전하다.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느끼기 힘들다. 해도 안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많이들 지쳐 있다.

놀자맘 지쳐 있어서 다 놔 버리고 싶다. 다들 원치 않는데 내 아이만 안 하면 상대적 피해를 입으니 어쩔 수 없이 시키는 것 아닌가.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바뀌면 엄마들이 ‘이때가 기회다’ 하며 다같이 사교육을 놔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믿자맘 엄마 마음도 불안하고 억울하다. 매달 사교육에 200만원이 드는데, 비용대비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 불안감에 시키는 거다. 그 돈을 여행이나 외식 등에 쓰면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지겠나.

놀자맘 심란하다. 한국을 뜨고 싶다. 우리 아이가 미술천재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외국에서 키우고 싶다. 사립초등학교를 보낸 이유도 우리 아이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길 바라서였다. 이 학교는 공부, 공부하기보다 자기주도학습과 체험 중심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럽다. 사립초는 말하자면 예술에 재능 있는 아이를 위한 첫 번째 바람막이 환경이었다. 일반중학교에 가면 어떨지 굉장히 걱정된다.

믿자맘 나 역시 그런 이유에서 국제중학교를 보냈다. 그 학교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교육 효과가 없고, 수업에 충실한 시스템 때문이었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보다 우리 아이가 자유로운 발상을 하면서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놀자맘 첫째 아이는 사립초등학교에, 둘째는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는데, 교사의 질적 차이가 크다. 사립초 교사들은 정말 좋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교사들이 많고, 방학 때에도 자비를 들여서 연수를 받는 교사들도 꽤 된다. 틀에 가두기보다 아이의 소질과 성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공립에서는 그런 교사를 만나기 쉽지 않더라.

일등맘 교사들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물론 훌륭한 선생님도 많지만 학생들 가르치는 것보다 내 아이 공부시키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교사들이 간혹 있다. 학부모 상담하면서 ‘무슨 학원이 좋아요?’ 하며 학원 상담 받는 교사도 있다더라.

놀자맘 내 아이의 소질은 공부가 아니라 예술인데, 공부로 줄을 세우면 중학교에 가서 자존감이 훼손될 것 같아 걱정된다.

믿자맘 과거에 비하면 줄세우기가 많이 없어지지 않았나. 우리 학창 시절에는 1등부터 60등까지 매겨서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놀자맘 겉으로는 그렇지만 교묘하고 잔인하게 줄세우기를 하는 것 같다.

일등맘 그래도 옛날에는 학생 능력만으로 공부도 잘하고 출세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지금은 공부를 잘해도 주변의 서포트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첫째의 경우 대입을 준비하느라 이번 방학을 바쁘게 보냈다. 수시를 통해 대학에 가려면 학생부를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다 엇비슷하니까 특화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제학과를 지망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준비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경제 동아리 활동도 하고, 경제 관련 자격 시험을 보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한 과정에 150만원 정도 드는데, 한 반 20명 중에서 3~4명 정도가 이 시험을 준비한다. 이 외에도 수학학원, 국어학원, 영어학원, 제2외국어학원을 다녔다.

믿자맘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부모세대는 학력제일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 암암리에 학력 차별의 그늘에서 자란 부모들은 아이 세대에게도 명문대를 강요할 수밖에 없다. 엄마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일등맘 엄마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현실적인 감각을 가진 똑똑한 엄마들이 많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고, 미래사회에 우리 아이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며 자료도 많이 찾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교육을 시키는 건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우리 아이가 “엄마, 우리나라 교육은 잘못됐다”라고 한다. 나도 이런 사교육이 잘못된 건 안다. 하지만 잘못됐다고 넋놓고 있으면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이한테 “실력을 키워서 불합리한 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돼라. 지금 마음에 안 든다고 안 하면 나중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중도맘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범은 엄마도, 사교육 시장도 아니다. 교육제도와 시스템이 문제다. 엄마들은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을 할 뿐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학교의 교육시스템 안에서 성실하게 자라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고등학교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보니 교육은 없고 무조건 대입만 준비한다. 그게 진짜 싫었다. (울컥하며) 인성교육도 없다. 입학 후 처음 담임과 면담 자리에서 “어느 대학 갈래? 수시 위주로 할래, 정시 위주로 할래?”를 물어본다. 고3은 더 가관이다. 교과서는 아예 안 보고 EBS 수능교재로 수업한다. 수업계획안은 형식적이다. 수능시험과 관계없는 과목이라면 공부 안 해도 터치를 안 한다. 아이도, 교사도 신경 안 쓴다. 미친 나라다.

일등맘 중학교도 점점 그렇게 돼 간다. 국·영·수 공부만 시키라고 말하는 엄마들도 있다. 대입 시험을 위한 과목만 공부시키라는 거다. 기술·가정, 음악, 미술 같은 기초 소양과 일반 상식도 얼마나 중요한가.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이 평생 교양과 상식이 된다. 그런데 일부 선행학습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잠을 자거나 주로 수학·과학 학원 숙제를 한다. 학교에서 낮에 자 둬야지 밤에 학원 가서 수업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학교에서도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기본 소양 수업을 다 끊어버리고 학원 수업에만 올인하며 미리 대입을 준비하는 것이다.

중도맘 이과 지망 학생들은 특히 수학과 과학만 공부한다. 오로지 시험을 위한 공부다. 기본 소양 과목은 필요 없다는 것이 아이들 인식에 뿌리 깊다.

믿자맘 특목고 가서 명문대 나온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지도층이 되지 않나. 일그러진 엘리트들이 양산되는 거다.

일등맘 이미 법조계에는 특목고 출신들이 꽉 잡고 있는데 문제가 많다고 들었다. 판사는 사회의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사정을 헤아리면서 판결을 내리는 사람 아닌가. 법조문대로만 판결을 내린다면 차라리 AI가 더 잘할 것이다. 특목고 출신 판사들은 사회적 약자 입장을 잘 모를 것 같다. 약자를 보호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으니까. 교조적인 법해석만 할까봐 젊은 판사 만나는 걸 무서워한다고 한다.

중도맘 고등학교까지는 제대로 된 교양교육이 골고루 이뤄져야 성숙한 인간이 형성되는데, 지금 제도는 점점 그걸 막는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교육만 시킨다.

놀자맘 충격적이다. 중·고등학교 현장을 들어보니 더더욱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진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바뀌었으면 좋겠다.

일등맘 중도맘 동감이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확 바뀌면 좋겠다.

일등맘 아이를 특목고에 보낸 것은 특목고가 좋아서라기보다 일반고에 보내기 싫은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학 하나만 보면 일반고에 보내는 게 더 쉬운 길일 수 있다. 특목고는 수업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집중 안 하면 얄짤없다. 토론수업이 활성화돼 있고, 자기들끼리 스터디하고 동아리 활동도 활성화돼 있다. 이상적이다. 그런데 정작 평가는 결국 줄세우기다. 내신 등급을 매겨야 하는 제도에 묶이는 거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온 아이보다 암기왕이 영어에서 높은 등급을 받는다.

중도맘 맞다. 일정 부분을 달달 외우고 실수를 안 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교사 입장에서는 등급을 매기려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과목별로 등급 매기는 제도가 최악이다.

일등맘 내 아이를 특목고에 보냈지만,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에 찬성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모범생과 날라리가 같은 공간에서 어울리며 수업받고, 전교 꼴찌가 나중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해 전교 1등과 만나서 술도 한잔 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믿자맘 나 역시 내 아이를 국제중에 보냈지만 국제중 폐지에 찬성한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강자와 약자, 부자와 가난한 자 등 다양한 세상을 접하면서 균형감 있게 자라면 좋겠다. 일찌감치 특권의식을 가질까 봐 지원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그럼에도 지원한 이유는 일등맘의 이유와 같다. 국제중과 특목고를 폐지하기보다 공교육 전반을 이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좋겠다.

중도맘 엘리트들은 자기네들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 같다. 그 아래는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듯하다.

놀자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핀란드 편’이 생각난다. 핀란드 교육을 다루면서 미국 교육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핀란드의 교육 수준이 최하위권이었다가 새로운 시도 끝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이 ‘숙제 폐지’와 ‘동등한 교육’이었다. 핀란드는 사립학교가 거의 존재하지 않더라. 사립은 돈 많은 아이들이 다니기 때문에 사회가 양분된다는 거다. 돈 많은 사람도 똑같이 지역 학교에 보내면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우리 학교와 우리 지역에 투자를 한다.

놀자맘 부럽다. 우리 아이들 세대는 이미 글렀고, 교육개혁이 성공해서 아이들의 아이들은 꼭 그런 교육을 받는 세상에서 자랐으면 좋겠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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