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열린 입시설명회에서 한 참석자가 복잡한 입시전형 자료집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12월 열린 입시설명회에서 한 참석자가 복잡한 입시전형 자료집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즉 SKY 대학 재학생을 소득 형태로 나누어 보면 와인잔 형태가 나온다는 조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국가장학금 신청 인원을 바탕으로 계산한 지난해 서울대 저소득층 재학생은 1804명이다. 전체 재학생의 10%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자격이 안 돼 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고소득층으로 분류된 인원은 1만2339명이다. 전체 재학생의 75%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산층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중 소득분위가 중상·중하에 속하는 학생은 2368명으로 전체의 15%도 되지 않았다.

와인잔 형태가 나타나게 된 이유로는 고소득층에 유리한 대입제도가 꼽히고 있다. 최근 대학입시에서 수능과 내신 점수로만 당락을 가르는 정시 전형의 비중은 줄어들고 다양한 수시 전형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2017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 비중은 전체 정원의 69.9%에 달했다. 이 중 29.5%나 차지하는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 문제가 된다. 원래는 평소 학교 생활에 충실한 학생을 뽑겠다고 도입된 전형이지만 오히려 사교육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보와 돈이 충분한 고소득층에만 유리하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나온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실이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전형으로 학생부 종합전형이 1순위로 꼽혔다. 학종에 대비하기 위해 매달 사교육비를 30만원 이상 쓴다는 학부모가 79.8%에 이를 정도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설문조사에서도 학종은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전형’으로 꼽혔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교육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가면 이처럼 심화된 교육불평등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대치동의 한 ‘학종 컨설팅’ 업체에서 상담받는 데 드는 돈만 75만원이다. 이 학원 상담실장은 “다른 학원에 비해 25% 저렴한 가격이다”면서 “정기적으로 관리받을 경우 1회 70만원까지 할인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에서 해주는 일은 어떤 과목의 점수를 올리고, 어떤 비교과활동에 신경을 쓸 것인지 지도하는 것에 그친다. 컨설팅받은 대로 수학 점수를 올리고 경시대회를 준비하려면 또 다른 사교육비가 든다.

대치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산층·비수도권 학생들은 전체 대입 정원의 25%가 넘는 학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기회도 줄어든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의 61.9%가 수도권 학생이었다. 강남·서초·송파구, 이른바 ‘강남3구’ 출신 학생은 15%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현장의 교육불평등에 대한 위기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른 무엇보다 교육불평등을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32.5%에 달했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현재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에는 교육불평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입시제도가 교육불평등을 강화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입니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게 가능했는데,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안 교수는 “아무리 해도 돈 있는 부모를 둔 친구를 따라갈 수 없다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 학원 강사보다 떨어진 교사의 권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인성교육 등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교육불평등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가오는 대선에서 대선주자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교육불평등 해소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대선을 앞두고 교육 개혁에 대한 공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몇몇 공약은 비용과 노력만 들어갈 뿐 교육 현장을 개혁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전 총장뿐 아니라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이번에야말로 입시제도를 개혁해 최소한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떻게 교육불평등을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주장은 엇갈린다. 안선회 교수는 “정시 확대”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격시험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일본은 센터 시험, 미국은 SAT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로운 교육 현장이라고 본받고 싶어 하는 핀란드에도 대학입시를 위한 시험이 있어요. 시험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안 교수는 수능에서 선택과목의 수를 늘리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은 전공에 맞춰 다양한 선택과목을 조합한 전형을 내놓으면 됩니다. 학생들은 특정 전공을 하기 위해서 특정 과목을 중심으로 공부하면 됩니다. 전형은 전공별로 명료해지고 사교육은 지금보다 줄어듭니다.”

그러나 학종이 교육불평등을 유발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유은혜 의원 측은 수능 중심의 대입제도로 돌아가는 것은 오히려 교육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재고·특목고·자사고의 수능 상위권 학생 비율이 일반고보다 현저히 높은 상황에서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면 고등학교 서열화를 부추길 뿐”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불평등 구조가 중학교까지 앞당겨지게 되고 일반고는 지금보다 더 ‘슬럼화’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현 방식의 수능을 폐지하고 서술형 문제가 중심이 되는 한국형 바칼로레아(프랑스 논술시험)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이 시험 제도에서 한 문제에 답하려면 자신의 관점과 논거가 있어야 한다. 이 소장은 “시험을 바꾸면 수업 방식은 물론 사교육시장도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입시제도를 주장하든 우리 교육 현실에 적합하고 교육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든 교육 주체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국가미래연구원이 20~40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노력한 만큼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교육불평등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 또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전면적인 개혁을 하는 것보다 “지금 있는 제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