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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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검의 마지막 날이었다. 2월 28일 서울 충정로의 특허법인 사무실에서 서영제 변호사를 만났다. 1950년 충남 서천 출생, 사법시험 16회를 거쳐 대검 마약부장과 서울지검장을 역임했다. 대구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서울지검장을 지내면서 노건평씨, 여당 대표였던 정대철씨, 송두율 교수 수사를 지휘했다. 성역이라면 성역 속의 인물들이었다. 모두 기소처리됐다. 서 변호사는 특검 전문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특검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원래 영어 단어(independent counsel)의 직역 표현인 ‘독립 변호사’가 아닌 특별 검사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쓰이게 된 것도 서 변호사 때문이다. “한국 실정상 변호사보다 검사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는 박영수 특검을 지켜본 그의 소감부터 물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검사의 자질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게 됐다”고 답했다.

“특검 측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하지 않았나. 이건 검사가 아니다. 선동가다. 들으며 끔찍했다. 프레임을 만들어 한쪽을 죽이려는 거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도 마찬가지다. 중간 수사 발표를 하며 ‘대통령이 최순실 등과 공모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를 조사 한번 해보기도 전, 더구나 수사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같은 서울지검장 출신으로서 창피했다. 대상이 대통령이든 야당 대표든 말이 안 되는 얘기다.”

- 법조계 일각에선 ‘선특검 후소추’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특검이 2년 동안 조사했다. 완벽하게 수사해 하원에 보고서를 냈다. 그런 후 탄핵이 의결됐다. 아무리 사소한 사건도 경찰 수사, 검찰 수사, 1·2심 재판, 대법원 재판, 때로는 헌재 재판까지 6차례 검토한다. 왜 지루할 만큼 긴 절차를 거치나? 혹시라도 오판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게 법치주의다. 형사사건 수사의 핵심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고인 인권 옹호다. 대통령 대행 체제도 갖춰져 있는데 뭐가 급한가.”

- 박영수 특검은 90일간 13명을 구속했다. 방어권을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인 구속수사가 과연 합당한가 논란이 있다. “중요한 지적이다. 미국에선 중범을 제외하고는 불구속이 원칙이다. 보석 보증금을 내면 99%는 일단 석방된다. 검사가 기소하면 기소 후부터 비로소 법정에서 공방이 시작되는 거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할 말이 있다.”

서 변호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인연이 있다. 1987년 김기춘 전 실장이 법무연수원 원장으로 있을 때 함께 근무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직권남용권리침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핵심 혐의는 블랙리스트 작성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서 변호사는 “직접 수사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미국의 예를 들었다. 그는 지금도 뉴욕타임스를 구독하고 실시간으로 폭스(fox)뉴스를 시청한다. 검찰 재직 시절부터의 습관이다.

“포크배럴(pork barrel)이란 말이 있다. 미국의 정치 용어다. 정치적 배려로 특정 지역에 예산을 더 지원하는 걸 의미한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국민으로부터 공약을 지키라고 위임을 받았다. 공약을 지켜야 하지 않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주는 독립 운동도 벌인단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이게 직권남용인가? 통치행위다. 직권남용이 되려면 뇌물을 받아야 한다. 통치철학과 선거공약에 따라 정책을 폈는데 이게 직권남용인가?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김기춘 전 실장 개인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법무연수원에 함께 있을 때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게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 먹으면서였다. 다른 검사들은 식사 시간마다 외부인과 약속이 있어 나가는데 김 전 실장과 나만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국가보안법 등에 대해 서로 의견 차이가 있어 이틀 동안 토론한 적도 있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찬성 측은 대통령의 무능을 얘기한다. “나도 개인적으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지지는 지지고 법치는 법치다.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이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바보가 우연히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유능한 참모와 시스템만 있으면 된다. 바보를 끌어낼 필요는 없다.’ 정치는 아인슈타인만 해야 하나? 민주적인 제도만 잘 유지되면 설사 대통령 유고 상태라도 상관없는 거다.”

- ‘민심이 헌법’이라는 말도 거론됐다. “아니 민심(民心)을 어떻게 재나? 원래 독재정권일수록 민심을 내세운다. 프랑스대혁명 때도 국민투표를 내세웠다.”

서 변호사는 “상설특검법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주요 국가 중 상설특검법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검제 원조인 미국에서도 1999년에 없어졌다. 특검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폐지한 거다.”

- 특검제의 문제가 뭔가. “첫째,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번 특검이 무슨 짓을 했든 박영수라는 사인(私人)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민간인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나? 클린턴 전 대통령 탄핵 때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그야말로 스타가 됐다. 이 사람도 특검제 유지에 반대했다. 본인이 해보니 문제가 많다는 거다. 둘째, 특검은 결국 죄가 나올 때까지 특정인을 ‘털게’ 된다. 안토닌 스칼리아 미국 연방대법관은 특검을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검은 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사람을 수사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 수사 당시에도 본래 사안이었던 화이트워터 게이트(토지개발 관련 비리 혐의)의 증거가 안 나오자 ‘성추문 스캔들’로 수사 방향이 바뀌었다. 스타 특검은 1994년부터 특검이 끝난 2001년까지도 수사권을 무소불위로 휘두르다시피 했다. 서 변호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셋째,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 한국에선 국회가 특검을 지명한다. 스칼리아 판사의 표현을 빌리면 ‘국회가 행정권한을 찬탈한 것’이다. 미국은 법무부 장관이 법원에 특검 발동을 요청하도록 했다. 그러니 삼권분립 위배 소지가 적다. 우리나라의 상설특검법 자체에 위헌 소지가 큰데, 이번 특검은 야당이 지명했다. 공정한 수사가 가능하겠나?”

- 특검법에 대해 헌재는 2008년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 재판관들이 공부를 좀 해야 한다. 위헌 소지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특검법은 상당히 엉성하게 만들어졌다. 미국의 특검제는 특검이 수사를 넓히려 할 때, 그때마다 원래의 수사 사안과 얼마만큼 관련성이 있는지 연방항소법원의 판사가 판단한다. 우리는 특검이 알아서 하고 있다.”

- 특검 시효가 끝나자 검찰 특별수사본부 부활 얘기가 나온다.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남발하고 있다. 전가의 보도로 남용하지 말라. 성완종·진경준 등 주요 사건 때마다 특별수사본부를 만드는데, 왜 검찰이 직접 조사 못 하나? 뭐가 무섭나?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특검, 특본 만들 거면 검찰은 왜 있나?”

- 검찰이 나약해졌다는 말인가. “검사의 자격을 늘 생각한다. 검사 뽑을 때 인성검사를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FBI 요원 선발할 때 거짓말탐지기를 쓴다고 한다. 머리가 좋으면 뭐하나, 수사 결과를 허위로 보고하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나. 검찰에 있으면, 거의 모든 사안에서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 잘 수사하면 출세하고, 용돈도 생길 것 같은데….’ 이때 망설임 없이 공익과 법치를 택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머리만 좋으면 정계와 언론을 상대로 수싸움을 해가며 고차원 방정식을 풀려고 한다. 우직한 단세포 쪽이 낫다는 말이다.”

- 결국 검찰 독립은 스스로 찾아야 하나. “형사법은 ‘검사는 범죄 혐의가 발견되면 수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때 검찰이라고 하지 않고 검사라는 표현을 썼다. 각개 검사가 독립기관이라는 의미다. ‘수사해야 한다’는 건 수사가 의무라는 뜻이다. 부장검사도 무혐의 만들어라, 기소해라 개입할 수 없다. 사건을 재배당하는 방법으로 개입할 순 있지만 다음에 사건을 맡은 검사가 다시 제대로 수사하면 그만이다. 법은 이미 검찰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는 말이다.”

- 상당한 신뢰를 받는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와 ‘정치 검찰’로 불리는 한국 검찰이 비교된다. “제도 차이도 한몫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를 하면 그 위 기수는 나가야 한다. 일본은 아니다. 철저한 연령 정년이다. 법무장관 아래 사무차관이 검찰 인사를 하는데, 이 사무차관이 검사 출신이다. 총장은 기수별로 내려가면서 한다. 차례가 돌아오면 기수 동기들이 서로 논의해 검찰총장을 결정한다. 힘든 자리라 서로 안 하려고 한다. 그러니 검찰이 외부 눈치를 안 본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수사에 들어갔다면 정계도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서 변호사는 일본의 전직 검찰총장을 만난 일화를 들려줬다. “전임 검찰총장이랑 식사를 했다. 옷차림이 무척 수수했다. 셔츠 칼라가 해지고 넥타이도 나일론이더라. 일본은 검사장이 개업을 안 한다. 법으로 금지한 건 아니지만 개업을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다. 대신 공증인 자격이 주어진다. 법원장이나 검사장만 공증인을 할 수 있다. 개업을 못 하는 대신 생업을 보장해주는 거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써내린 왕년의 ‘칼잡이’는 딱 잘라 말했다.

“머리 쓰려 하니 힘든 거다. 최순실이고, 박 대통령이고 뭐고 사실만 찾으면 된다. 촛불이니 태극기니 신경 쓰지 말고 법대로 수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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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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