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photo 연합
지난 2월 2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photo 연합

지난 2월 27일 오후 1시.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에 있는 헌법재판소 앞길은 시위대와 경찰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헌재 앞 4차선 도로의 좌우 보도는 ‘헌재는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라’는 시위대와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시위대가 점령했다.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는 현장에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헌재 주변에 배치된 경찰과 이들이 타고 온 대형버스가 헌재 주변을 병풍처럼 막아서 극심한 병목현상까지 빚어졌다.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국민행동) 측 시위대가 헌재 앞을 장악하는 바람에 인근에 거주하거나 사무실을 두고 있는 시민들은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오가는 데 큰 불편을 겪었다. 어떤 시민은 양측 시위대와 이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배치된 경찰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하철 타려고 이 앞을 지나가겠다는데, 왜 못 가게 막느냐” “나는 북촌에 살고 있다. 시위와 아무 상관없는데, 어딜 가느냐고 왜 묻냐”….

이날은 헌재가 정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의 최종변론 기일이었다. 박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인용’의 정당성을, 박 대통령을 변호하는 대리인단은 ‘기각’의 당위성을 헌재 대법정에서 마지막으로 진술했다. 헌재는 재판관 8인의 법과 양심에 따라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그럼에도 양측 시위대는 헌재를 상대로 자신의 입장이 관철되기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부 보수 성향 시위대는 확성기 사용과 도로 점거 등의 이유로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들의 집회는 헌재 심리가 종료된 밤 9시까지 이어졌다.

“헌재의 최종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인용이나 기각 등의 단어를 사용해 기사를 작성하지 말아주십시오.” 헌재 2층에 마련된 브리핑룸에서는 출입기자단 간사가 헌재 측이 요청해온 보도협조 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헌재 최종변론에 대한 기사 작성 시 탄핵 인용이나 기각에 대한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것. 브리핑룸에는 50여명의 기자들로 북적였다.

헌재 출입기자 이외의 취재진은 지하 1층 대강당에 마련된 별도 취재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헌재는 지하 1층 대강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최종변론을 생중계했다. 이날 대강당은 국내 취재기자 외에 AP통신과 같은 외신기자들이 몰려 총 160석 가운데 100여석이 채워졌다. 대강당은 1층 출입기자 브리핑룸처럼 비장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기자들은 서로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탄핵심판이 갖는 정치적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최종변론이 시작되기 5분 전 재판정에는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과 국회 소추위원단이 먼저 입장했다.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은 본인 자리에 착석하기 앞서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 소속 이중환 변호사 등과 악수를 나눴다. 오후 2시 헌재 재판관 8인이 재판정에 들어온 뒤 곧바로 최종변론이 시작됐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국회 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변호인단의 출석을 체크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당초 이중환 변호사 등 3~4명이 주축을 이뤘으나 이날은 김평우 변호사 등이 합류, 총 19명의 변호사가 재판정에 참석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그동안 심리와 제출된 서류 등이 많다. 최종변론은 가급적 1시간 이내에 끝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먼저 변론을 시작한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74분에 걸쳐 차분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첫 번째 변론에 나선 권성동 소추위원장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순실 등 비선실세가 악용하도록 한 부분에 있어서 박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 충분하게 소명되었다. 피청구인 측이 ‘보이지 않는 음모’ ‘재판부 구성 문제’ 등을 거론하지만 그것으로 사안의 본질을 가릴 수 없다”면서 탄핵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소추위원단 측 이용구 변호사는 ‘세월호 7시간’이 “왜 탄핵사유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별도 변론을 진행했다.

반면,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총 15명의 변호사가 변론을 신청했다. 사전에 변론 순서를 정하지 않아 다소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달리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조급해 보였고,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수 변호사가 변론에 나서다 보니, 변론 내용이 중복되는 경향도 있었다. 앞서 지난 2월 22일 변론에서 “아스팔트가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고 주장해 주목 받은 김평우 변호사는 이날 변론에서도 이정미 대행의 지적을 받았다.

김 변호사는 변론에서 “사람을 때려잡으려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비선실세라는 뜻도 모르는 단어로 대통령을 잡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론 내내 국회 소추위원단의 변론 내용에 대해 이의를 걸며 법학 강의하듯 50여분간 변론을 이어갔다. 이중환 변호사는 최종변론 직후 기자들에게 “변호사 3명의 의견 일치를 보는 게 벼룩 10마리를 데리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만큼 힘들다”면서 최종변론을 조율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토로했다. 헌재 측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판결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심판할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말 박한철 헌재소장의 퇴임 이후 8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재판관 6인이 탄핵안 인용에 동의할 경우 그 즉시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3인 이상이 탄핵 기각 결정을 한다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정지됐던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

헌재는 재판관들의 비공개 회의인 평의(評議)와 평결(評決)을 거쳐 오는 3월 10일 또는 13일경 탄핵소추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쪼개진 대한민국을 위해 헌재가 솔로몬의 선택을 내릴지 주목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 정치평론가는 “만약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다면 만장일치로 처리할 공산이 크다. 그래야 탄핵 결정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수의견 개진이 필요할 경우 1~2명의 재판관이 탄핵안 자체의 문제가 아닌, 탄핵 절차와 과정에 대해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8인의 재판관이 결정할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만장일치 탄핵 인용’ ‘6 대 2로 인용’ ‘5 대 3으로 기각’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해두고 있다고 한다. 국회 탄핵안을 가결한 야 4당(바른정당 포함)은 탄핵 결정 이후 국론분열을 이유로 만장일치, 즉 헌법재판관 8인 모두가 탄핵 인용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특정 개인의 사익 추구를 위해 대통령 비서실과 정부 부처를 악용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남용한 게 탄핵의 가장 큰 이유”라며 국민주권주의(헌법 1조)와 대의민주주의(헌법 67조1항) 위반을 탄핵사유로 꼽았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대통령 변호인단은 “탄핵안 기각에 대한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만장일치로 탄핵안이 인용되는 것은 불복(不服)의 빌미가 될 수 있다”면서 탄핵 반대 여론을 고려해 최소 재판관 3인 이상이 탄핵 기각에 동조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법조계는 헌재의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탄핵안 처리 과정의 절차적 문제와 태극기집회를 비롯한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1~2명의 재판관이 소수의견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헌재가 탄핵 찬반 여론이 크게 엇갈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방적 탄핵 여론이 불러온 ‘탄기국’

최순실 사태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온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 시작됐다. 이때부터 매주 토요일(3·1절 집회 포함) 이어진 17차례의 촛불집회에 연인원 130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는 게 국민행동 측 주장이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3일 전국적으로 연인원 232만명(주최 측 추산)이 촛불집회에 참가하며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최경환 의원을 제외한 299명이 참석, 23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반대는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가 나왔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탄핵안 가결 여론은 압도적이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9일 발표한 12월 둘째 주 여론조사 결과 탄핵 찬성은 81%, 반대는 14%로 조사됐다. 결정을 유보한 여론은 5%였다. 특히 야당 지지층에서 탄핵 찬성 의견이 90%를 넘었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도 탄핵 찬성 여론이 34%, 반대가 61%로 조사됐다. 이 시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는 부정평가 91%, 긍정평가 5%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30% 안팎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했던 박 대통령은 그해 11월 들어 4~5%의 국정운영 지지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2016년 10월 25일, 11월 4일과 29일 등 모두 3차례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지만 여론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대국민담화문에서 “대통령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면서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 카드를 던졌지만 야당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12월 1일부터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특검조사가, 12월 6일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가, 12월 9일에는 헌재의 탄핵안 심리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보수정당과 우파 진영은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이때부터 우파 진영을 대변해온 조갑제닷컴, 신혜식의 ‘신의한수’, 그리고 변희재씨 등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증폭시킨 종편 JTBC의 태블릿PC 입수 경위와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3일에 박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탄기국 집회가 처음 열렸다. 최초의 탄기국 집회는 박 대통령의 팬클럽인 박사모 등이 주축이 되었으며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탄기국 집회에 일반 시민의 참여가 늘면서 점차 규모가 커졌다. 탄기국 측은 태블릿PC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마타도어식 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때부터 탄기국 집회를 일부 언론에서 태극기집회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유일하게 초기부터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현역의원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월간중앙 1월호 인터뷰에서 “탄핵 기각 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이 발언은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분노케 해 결과적으로 태극기집회 참여를 자극했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 방송에 실망했다. 태극기집회의 행진을 지상파들이 일절 보도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서 언론이 일방적으로 촛불세력의 편을 들고 있다고 여겼다.

양측의 집회 참석인원이 처음으로 역전된 건 지난 1월 7일이었다. 경찰 추산 결과 이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인원은 2만4000명, 탄기국 집회 참가자 수는 3만7000명이었다. 박 대통령은 올 초부터 본격적으로 여론전에 나섰다. 지난 1월 1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신년인사회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면서 뇌물죄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1월 25일에는 팟캐스트 정규재TV에 출연, “최순실 사건에 기획 세력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27일 헌재에 낸 최종의견서에서는 “주변 관리를 못 한 건 불찰”이라면서도 나머지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태극기집회에 참가하는 인원이 늘면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탄핵 인용 여론이 낮아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지난 2월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탄핵될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57.7%, ‘탄핵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자는 17.1%로 나타났다. ‘아직 모른다’는 응답률은 25.2%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영태 파일’의 등장은 ‘최순실 사태’가 사실은 ‘고영태 기획’이었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고영태와 그 측근의 육성이 담긴 녹음 파일은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태극기집회가 매주 서울광장과 남대문 일대를 가득 메우면서 지난해 연말보다 탄핵 기각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탄기국 측의 해석이다.

3·1절을 맞아 열린 태극기집회는 촛불집회에 비해 확실한 수적 우위를 보여줬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 중 일부는 박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탄핵소추안의 절차상·법적 하자 등을 들어 탄핵은 기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태극기집회에 단골 연사인 김평우 변호사는 2월 말부터 “헌재가 소추안을 각하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각하 주장은 참가자들에게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참가자들 중에는 좌익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탄핵 찬반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는 좌우 대결로 양상이 확산되었다.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 정치 상황도 급격하게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조기 대선이 불가피하고, 기각된다면 박 대통령은 권위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국정에 복귀해야 한다. 어떤 결정이 나오든 어느 한쪽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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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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