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2일 북한은 ‘북극성2’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다음 날인 2월 13일에는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조심할 것만 같던 북한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대항하여 다각적인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김정남 암살로 북한은 테러지원국에 다시 지정될 전망이다. 미사일 발사도 역시 대북제재의 좋은 이유가 된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북한의 행보를 견제할 가장 강력한 카드는 누가 뭐래도 군사력을 앞세운 김정은 정권의 교체다. 3월 1일 개시된 ‘키리졸브·독수리’ 한·미연합훈련이 한반도 정세를 급변시키는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될 수 있을지 촉각이 쏠리는 이유다.

김정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위력적인 첨단무기들이 대거 동원되는 이번 한·미연합훈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칼 빈슨 항모타격전단의 전개이다. 지난 1월 5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출항한 칼 빈슨은 2월에는 남중국해에 전개하여 ‘통상적인 훈련’을 실시했다. 항모전단에는 F/A-18E/F 수퍼호넷 전투기 48대,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5대 등 막강한 전력에 더하여 전단 소속 이지스 순양함 1척과 이지스 구축함 2척도 따라붙고 있다. 이들 이지스함은 수백여 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같은 정밀타격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북한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전력이다. 이런 칼 빈슨 항모전단이 3월 중순 한반도로 전개한다.

일본 요코스카에 전진배치된 7함대의 로널드 레이건 항모(왼쪽)와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는 3함대 소속 칼 빈슨 항모. ⓒphoto 미 해군
일본 요코스카에 전진배치된 7함대의 로널드 레이건 항모(왼쪽)와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는 3함대 소속 칼 빈슨 항모. ⓒphoto 미 해군

칼 빈슨과 로널드 레이건 동시 배치

이미 미 제7함대의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에는 로널드 레이건 항모가 전진배치되어 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항모 10척 가운데 유일하게 전진배치된 항모이다. 현재 로널드 레이건은 1월부터 4개월간 정비 중이지만, 유사시에는 즉각 출동할 수 있는 태세를 취하고 있다. 즉 칼 빈슨과 로널드 레이건 2척의 항모가 한반도 주변에 전진배치되는 셈이다. 칼 빈슨 전단이 무력시위를 맡고 있다면, 로널드 레이건 전단은 유사시에 출동하여 즉각 대응할 수 있다.

전쟁 상황 이외에 미국이 항모전단 2개를 동시에 전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는 IS와 전쟁을 벌이는 중동에도 시퀘스터(예산 감축)로 인하여 오직 항모전단 1개만을 파견한 상황이다. 그런데 한반도 인근에 2개의 항모를 배치한다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시그널이다. 미국이 아시아에 2개의 항모를 동원한 것은 1996년 대만해협 위기 이후로는 처음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특히 올해 초 김정은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시사하면서 미국 내 여론이 끓어올랐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당장 매티스 국방장관의 상원 인준청문회에서도 북핵에 대한 강력한 대책이 요구되었다. 주한미군이 북핵을 제압할 능력이 있는지 대량살상무기를 무력화하고 회수하는 방안을 의회에 보고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지난 2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트럼프는 2월 16일 기자회견에서는 “내가 북한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말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마치 군사작전을 준비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그러나 막상 미군 내부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14년간 이슬람극단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여온 미국은 한숨을 돌리기는커녕 이제 중국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준비해야만 할 형국이다. 위협이 증가하면 응당 국방비의 증액이 있어야 하는데, 2010년부터 15년 사이 예산은 오히려 14% 감소했다. 오히려 시퀘스터 덕분에 군대는 반 토막이 났다. 미 육군은 현역 병력 수가 47만9000여명으로 줄어들어 1940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미 해군은 현재 275척의 함정을 보유하여 99년 만의 최소 함정 수를 기록하며 필요전력의 40%밖에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미 공군은 25년 만에 항공기 수가 5500여대로 줄어들고 항공기들의 평균 기령(機齡)은 27년에 이를 정도로 낡았다.

B-1B 전략폭격기(위)와 훈련 중인 수퍼호넷 전투기.
B-1B 전략폭격기(위)와 훈련 중인 수퍼호넷 전투기.

‘코리아 시나리오’ 관련 증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 의회도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의 군사대비 청문회에서는 현재 미국이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원에서는 현 병력 수준으로 다른 지역의 방어와 ‘코리아 시나리오(Korea Scenario)’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다는 군 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 코리아 시나리오란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군사적 충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청문회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분명 미군의 태세가 이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계 제1의 군사강국이다. 국방예산도 최근 가장 줄어든 것이 2017년 예산 기준 5490억달러였다. 2개 전쟁이 어렵다는 미군의 호소도 결국은 시퀘스터의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일종의 기만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또 미군이 충분한 전력을 확보한다고 한들 명백한 도발이 없다면 북핵 선제타격을 할 이유는 없다. 특히 트럼프는 스스로도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발언하면서, 명백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없는 전쟁 개입에는 반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칼 빈슨 항모가 한반도에 전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그 목적이 북한 선제타격일까?

힌트는 아주 사소한 곳에 있다. 즉 칼 빈슨 항모가 3함대 소속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미 해군의 함대 구성을 알아야만 한다. 미 해군은 전통적으로 관할구역에 따라 함대를 운영해왔다. 예를 들어 2함대는 서대서양, 3함대는 동태평양, 4함대는 남미, 5함대는 인도양, 6함대는 동대서양, 그리고 7함대가 서태평양이라는 형식이었다. 이에 따라서 같은 배라도 미국의 서해안에서 출항하면 3함대 소속이 되었다가, 한반도 인근으로 넘어오면 7함대가 되고, 중동 지역에서 IS를 상대로 전쟁을 할 때는 5함대가 된다. 따라서 칼 빈슨 항모는 국제 날짜변경선을 넘는 순간 7함대 소속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미 태평양사령부는 칼 빈슨이 7함대가 아니라 3함대 소속으로서 서태평양지역에서 활동하게 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미 해군이 작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3함대 전진배치(3rd Fleet Forward)’ 전략에 따른 것이다. 3함대 전진배치는, 요컨대 7함대가 책임지던 서태평양에 3함대도 같이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즉 기존에는 7함대 하나만으로도 서태평양의 위협을 막기에 충분했지만 이제는 서태평양의 위협이 너무도 증대하여 함대 하나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의미다.

남중국해에서 작전 중인 칼 빈슨 항모 소속 수퍼호넷 전투기. ⓒphoto 미 해군
남중국해에서 작전 중인 칼 빈슨 항모 소속 수퍼호넷 전투기. ⓒphoto 미 해군

왜 굳이 3함대를 전진배치해야만 할까? 이유는 당연하다. 바로 중국 때문이다. 과거 중국의 해군력이 약하던 시절에는 7함대 하나만으로도 극동지역부터 남중국해까지 모두 커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해군을 비약적으로 증강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은 이미 2012년 자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을 취역시켰고, 스프래틀리군도(群島)와 파라셀군도를 군사기지화하면서 역내 안보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인공섬 구축에 대응하여 자유항행작전을 실시했다. 미국의 군용기를 인공섬 상공으로 지나가게 하고, 군함은 인공섬 12해리 이내로 접근시키는 것이 작전의 핵심 내용이다. 즉 인공섬은 영토로 인정될 수 없으므로 영공도 영해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국제법적 사실을 중국에 인식시키자는 것이다. 2015년 하반기부터 7함대의 구축함들이 이곳으로 파견되고 있다.

그러나 7함대 작전구역 내에는 또 다른 악동(惡童)이 있다. 바로 북한이다. 겨우 5년 넘게 집권한 김정은이 김정일 집권 17년보다 핵실험은 2배, 미사일 시험발사는 4배 가깝게 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명백한 군사위협이다. 한마디로 7함대 혼자서 중국과 북한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2016년 4월부터 3함대 전진배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범적으로 구축함 전대를 파견하여 남중국해 인근에서 자유항행작전을 실시하다가 올해 들어서 전진배치의 규모가 항모로 격상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한·미연합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에 ‘3함대’의 칼 빈슨 항모가 배치되는 의미는 남다르다. 유사시에는 3함대와 7함대가 동시에 한반도로 출동할 수 있는 태세가 갖춰져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달리 생각해 보면 결국 미국의 핵심적 이익은 중국의 진출을 막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칼 빈슨은 잠깐 전개하여 ‘사상 최대의 한·미연합훈련’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지만, 중국 견제가 본격적인 목표라고 본다. 최근 우리 국방부의 사드 배치 결정을 두고 중국은 국내 기업에 대한 보복을 외치고 있다. 중국과 직접적 대결이 어려운 것이 우리의 상황이라면, 미국의 대중 전략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합참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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