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26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2월 26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김정남 독살이 김정은이 지시한 북한 정권의 조직적 테러라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암살 배경을 둘러싸고 관측이 무성하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격 때문”이라고 암살 배경을 분석한 반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월 20일 국회 국방위에서 “국제사회에 김정은 정권 교체 시도를 미리 차단한다는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3월 1일자에 소식통을 인용 “백악관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 군사력 사용과 북한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포함한 새로운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도 김정남 암살 배경에 대한 분석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3월 4일자 슈칸겐다이(주간현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미·중·러 3국에 의한 북한 신탁통치 계획이 김정남 암살의 배경이라는 요지다. 슈칸겐다이는 55만부를 발행하는 일본의 유력 시사주간지이다.

슈칸겐다이에 실린 4쪽 분량의 기사 제목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 전복 계획의 전모-김정남 암살 배후는 이것’. 곤도 다이스케 슈칸겐다이 특별 편집위원이 작성한 기사다. 곤도 편집위원은 중국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취재를 하고 글을 써왔다. 그의 저서 ‘시진핑은 왜 김정은을 죽이려 하는가’는 2015년 한국어판으로도 번역 출간됐다.

곤도 위원이 기사에서 주장한 내용은 놀랍다. ‘미·중·러 3개국이 북한을 신탁통치한다는 계획하에 미국이 김정은을 제거하고 김정남을 지도자로 앉히려고 했다. 이를 눈치챈 김정은이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는 국방부가 김정남 암살 배경으로 분석한 ‘김정은 대안세력 사전 제거’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곤도 위원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취재한 내용이라며 ‘지난해 12월 일본을 비밀리에 방문한 대니얼 러셀 미 국무차관보가 일본 정부 고위 간부를 만나 북한 정권 전복 계획을 비롯한 대북 플랜을 전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기사에 적고 있다. 러셀이 만난 고위 간부가 누구인지 구체적인 이름은 없다. 기사의 주요 부분을 옮겨 보자.

‘이야기는 2개월 전 트럼프 정권이 탄생하기 바로 전인 12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미 국무부의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대니얼 러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국무차관보가 일본에 비밀리 입국했다.

63세인 러셀 차관보는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 키맨이다. 러셀의 일본 방문 목적은 트럼프 정권 발족 전에 향후 미국의 대북 정책에 관해 일본 정부에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러셀은 “트럼프 정권은 오바마 정권보다 한발 앞선 대북 정책을 취할 것이다. 일본은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러셀은 “워싱턴이 아무리 압력을 넣어도 북한의 핵개발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군사 능력은 워싱턴이 간과할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면서 핵심 내용을 전달했다. “워싱턴은 가까운 미래에 미·중·러 3개국에 의한 북한 신탁통치를 할 생각이다. 머지않아 김정은은 폭발할 것이다. 김정은이 폭발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사는 러셀의 말을 전하면서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 이후 미·소가 한반도를 신탁통치하려고 했던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한반도를 되돌려 놓을 계획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셀, 일본에 신탁통치 비용 지원 요구”

기사에 따르면, 러셀은 또 김정은 정권 전복 플랜에서 일본의 역할을 주문했다고 한다. 북한의 신탁통치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경제적 부담을 해줄 것을 일본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북한을 방문해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에 경협자금을 약속했다. 고이즈미 방북 당시 취재를 위해 평양에 갔던 곤도 편집위원은 당시 일본이 제시한 경협자금이 1조엔 규모였던 만큼 미국이 요구하는 액수가 비슷한 규모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러셀은 대북 플랜을 말하기에 앞서 한국 정계의 혼란 상황을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돼야 할 한국이 경제력으로는 월등히 북한을 능가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고 정치적 혼란만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대사관에도 근무한 바 있는 러셀은 1993~1994년 북한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던 북핵 위기 때도 현장 책임자였다. 오바마 정권에서도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속해 일관되게 북한을 담당했다. 트럼프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도 케리 국무장관 등 국무부 간부들은 전부 사라졌지만 러셀 차관보는 유임됐다.

곤도 편집위원은 미국의 ‘북한 신탁통치 계획’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2013년 12월 4일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바이든은 3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곤도 편집위원이 당시 두 사람의 대화라며 옮긴 내용이다.

‘“김정은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지 않겠나? 이제 미국과 중국에서 북한 현 체제 붕괴 이후의 통치 방법을 협의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바이든의 돌연한 제안에 시진핑은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로 얼버무렸다. 이때 미국은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이라는 정권 최대의 도박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실제 8일 후 장성택은 처형당했다.’

곤도 편집위원은 바이든이 위세 있게 제안은 했지만 오바마 정권은 북한과 전쟁을 할 각오는 돼 있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트럼프는 다르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 내용이다.

‘“트럼프 정치는 고용 내셔널리즘이다. 미국 국내 고용을 늘리기 위해 뭐든 한다. 군수산업의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동의 IS와 동아시아의 김정은 정권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주변국에 비싼 무기를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월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군사훈련이 예정돼 있다. 언제든 실전에 옮기기 위한 연습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입장은 어떨까. 기사는 중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진핑이 원하는 것은 지역의 안정이지 김정은 정권의 안정이 아니다. 김정은 정권의 안정을 바란다면 지난 4년 동안 한 번쯤 회담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북한에 전쟁이 발발해 김정은 일가가 중국에 망명을 요청해와도 황장엽 방식의 대처를 하는 선에서 정해져 있다”고 적고 있다.

북한 유사시 ‘포스트 김정은’에 대한 전망도 언급했다. 김정남이 죽은 현재 차남 김정철이 김정은의 대안으로 가장 유력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곤도 편집위원은 중국에서 김정철과 10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김정철은 정치에 관여할 의사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곤도 편집위원이 그 다음으로 꼽은 사람은 김평일(62) 주체코 대사다. 김평일은 김일성 주석과 후처인 김성애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인민군 총참모부 요직을 거쳤지만 김정일 정권이 시작되면서 해외로 방출됐다. 기사에 따르면, 1994년 북한 핵 위기 때 김일성이 김정일을 잠시 감금한 후 김평일을 불러들여 방북한 카터 전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 동석시켜 후계자 인상을 심어준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김정일이 부활하고 김평일은 다시 외국에 방출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과거사를 감안하면 트럼프 정권이 북한 유사시 내세울 인물로 김평일 주체코 대사를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곤도 위원은 “다시 말해 김평일이 지금 목숨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경고하면서 기사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향후 트럼프 정권은 김정은 암살도 옵션에 넣어둘 것이다. 북한과의 전쟁은 벌써 시작됐다.”

황은순 차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