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 일본 도쿄 나리타공항에서 얼굴이 공개된 김정남의 본부인 신정희(오른쪽)와 그 아들 김금솔(가운데), 왼쪽 선글라스 쓴 여성은 신정희의 친척으로 알려진 리경희이다.
2001년 5월 일본 도쿄 나리타공항에서 얼굴이 공개된 김정남의 본부인 신정희(오른쪽)와 그 아들 김금솔(가운데), 왼쪽 선글라스 쓴 여성은 신정희의 친척으로 알려진 리경희이다.

2001년 5월 1일 일본 도쿄 나리타(成田)국제공항. 싱가포르에서 출발한 일본항공(JAL) 편으로 입국한 도미니카공화국 여권을 소지한 남녀 관광객 4명이 일본 입국관리국에 억류됐다. 일행 대표인 ‘팡슝(Pang Xiong)’이란 이름의 남자는 “도쿄 디즈니랜드를 구경하러 왔다”고 입국 목적을 밝혔다. 하지만 이내 이들이 소지한 도미니카공화국 여권이 모두 위조임이 밝혀졌고, 이들은 이바라키현 우시쿠시에 있는 동일본입국관리센터로 옮겨졌다.

이들은 3일간 집중조사 끝에 5월 4일, 일본 국적기인 전일본공수(ANA)편에 태워져 중국 베이징으로 강제출국됐다. 이들이 탄 중국행 비행기에는 일본 외무성 직원이 동행했다. 베이징 수도(首都)공항에 도착하자 중국 공무원들이 이들을 인계받아 공항 귀빈실로 안내했다. 공항 귀빈실에는 주중 북한대사관 직원이 나와 이들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2001년 사건 당시만 해도 이들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팡슝’이란 남성이 과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됐다. 언론의 추궁에도 일본 법무성 입국관리국 측은 “남성 팡슝 1971년 5월 10일생, 여성 신정희 1971년 9월 7일생, 여성 리경희 1968년 7월 2일생”이라며 “팡슝과 신정희는 부부관계”라고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들의 정체는 무려 5년 뒤인 2006년에야 비로소 확인됐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김정남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우회적으로 인정하면서다. 자연히 당시 김정남과 동행한 이들이 그 일가족인 신정희(부인), 김금솔(아들), 리경희(신정희의 친척)임이 드러났다.

당시 사건이 있은 지 16년이 흘렀지만 김정남의 신원확인은 재차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북한 당국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에서 암살된 ‘김철(Kim Chol)’이란 남성이 김정남과 동일인임을 극구 부인하면서다. DNA 대조를 통한 신원확인과 시신인수를 위해 나타나야 할 가족들마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에 16년 전 전 세계에 얼굴이 공개된 김정남의 친자(親子) 김금솔의 행방에 관심이 집중된다. 김정남과 본처인 신정희 소생의 아들로 2001년 나리타공항에서 엄마 손을 꼭 붙들고 있던 그 어린아이다. 당시 야구점퍼와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던 4살의 어린아이로 북한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귀티가 흘렀다.

하지만 김금솔은 2001년 이후 16년간 언론에 단 한 차례도 드러난 적이 없다. 2012년 10월, 핀란드의 공영방송 ‘YLE’와의 인터뷰로 주목을 받은 김정남과 둘째부인 이혜경 소생의 아들 김한솔과 달리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는 김금솔이 북한에서 신성시하는 백두혈통의 ‘적자(嫡子)’이기 때문이다.

김정남은 오랫동안 교류한 일본 도쿄신문 편집위원 고미 요지(五味洋治)와 나눈 이메일에서 “내게 여자가 많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아내가 여러 명이라니 웃음만 나온다”며 “제가 사랑하는 아내는 한 사람뿐입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그리고 “제 아내는 당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여성”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김정남은 “저와 잠깐 동거하다가 아이가 생긴 여성이나 교제하던 여성은 많지만 결혼한 아내는 한 사람”이라며 “북한은 일부다처제가 아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김정남의 답변을 종합하면, 그의 아내는 2001년 같이 일본에 입국한 신정희 한 사람이다. 둘째부인으로 알려진 이혜경은 ‘동거녀’에 불과한 셈이다. 실제 김정남 피살 이후 마카오의 한 방송사가 확보해 공개한 이혜경이 2002년 취득한 마카오 주택의 등기기록에는 혼인상태가 ‘이혼(離婚)’이라고 적시돼 있다. 그렇다면 김한솔과 김솔희는 법률적으로 부부가 아닌 이혜경과 동거하다가 생긴 ‘사생아(私生兒)’란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해 ‘일부일처제’인 북한 사회에서 이혜경은 ‘첩(妾)’, 그 소생인 김한솔은 비록 나이는 김금솔보다 두 살 많지만 첩의 소생에 불과한 ‘서장자(庶長子)’인 셈이다.

‘사생아’인 김한솔이나 김솔희가 김정남의 DNA를 가진 ‘친(親)혈육’이 아닐 일말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남의 모친 성혜림도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할 당시 이미 딸(이옥돌)이 있는 유부녀였다. 게다가 김한솔이 YLE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으로 생년이라고 밝힌 ‘1995년’은 김정남이 베이징으로 거주를 옮긴 바로 그 해다.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거주를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할아버지 되는 김정일도 장손(長孫)인 김한솔의 존재를 몰랐거나 끝내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한솔은 핀란드 YLE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김정일)를 만나 본 적도 대화해 본 적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20살 성년의 김금솔은 어디에

반면 김정남이 중국으로 옮겨간 직후인 1997~1998년쯤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본처 소생 김금솔은 김정남은 물론 김정일도 끔찍이 아낀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김정일 사망 때 눈밖에 난 김정남 대신 신정희와 김금솔만 평양에 들어가 조문을 하고 왔다는 얘기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김정남 역시 본처 소생의 친아들 김금솔을 애지중지했다. 당시 29살의 ‘아빠’ 김정남이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 밀입국을 감행했던 까닭도 아이를 데리고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서였다. 2001년 베이징으로 강제출국된 직후 베이징 한 호텔의 미용실에서 김정남이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결국 김정남의 정확한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김정남이 직접 “아내와 아들”이라고 공식인정한 신정희와 그 소생 김금솔이 나서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신정희와 함께 베이징에 체류 중으로 알려진 김금솔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거처가 최종 확인된 곳은 2001년 일본에서 강제출국될 당시 밝혀진 베이징 수도공항 동북쪽 올림픽조정경기장 인근의 ‘용원(龍苑)별장(드래곤빌라)’이다. 하지만 이후 김정남은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의 이메일에서 “베이징 시내 다른 곳에도 아파트를 빌렸다”고 밝힌 바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UWC 모스타르 분교에서 수학한 뒤 프랑스 파리정치대를 졸업한 김한솔과 달리 김금솔은 어디에서 교육을 받았는지조차 알려진 바 없다.

김금솔의 신병을 중국 정부가 확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유력한 카드로 잡고 있던 김정남이 제거된 이상, 김금솔은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 시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됐다. 김정남은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의 이메일에서 “중국 정부가 저와 제 가족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은 이웃 국가지도자의 가족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고 생각한다”며 중국 정부의 신변보호설을 인정한 바 있으나 처참히 피살당했다. 김한솔과 김솔희는 특별행정구인 마카오에 머물고 있어 아무래도 중국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심지어 김금솔은 현재 정확한 얼굴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일본에서 강제출국당한 2001년 당시 일본 측이 공개한 김금솔의 나이는 4살이었다. 16년이 지난 지금 20살 어엿한 성년이 됐을 나이다. 부모 손 잡고 디즈니랜드에 놀러간다고 들떠 있던 천진난만했던 얼굴도 변했을 것이다. 부친 김정남의 DNA를 물려받았다면 지금은 뚱뚱하게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아버지를 비명에 보낸 김금솔이 삼촌(김정은)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