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북한 달력 모델로 등장한 고려항공 승무원들. 평양 순안공항 제2청사와 투폴레프 여객기도 보인다. ⓒphoto 연합
2017년 북한 달력 모델로 등장한 고려항공 승무원들. 평양 순안공항 제2청사와 투폴레프 여객기도 보인다. ⓒphoto 연합

김정남 독살(毒殺)에 개입한 용의자 중 한 명은 현재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은신 중인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이다. 북한 국영항공사인 고려항공 현지 주재원 김씨는 2월 13일 김정남이 탑승할 마카오행(行) 에어아시아 탑승자 정보를 빼내고, 쿠알라룸푸르공항 제2청사(KLIA2) 내 이동동선을 체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김정남 암살 직후 북한 출신의 암살조가 타고 달아날 항공편 섭외를 맡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김정남 암살을 동남아 여성 2명에게 직접 지시한 북한 국적의 암살조가 북한으로 도피할 때 최종적으로 탑승한 항공기도 고려항공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자카르타(인도네시아), 두바이(UAE)를 거친 이들이 입북(入北) 전 최종 목적지로 선택한 곳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 베이징·상하이·선양과 함께 고려항공 정기편이 취항하는 곳이다. 암살범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12시20분에 출발하는 평양행 고려항공 JS272편에 탑승한 뒤 평양으로 유유히 돌아갔다. 우리 정보당국은 블라디보스토크 현지에서 이들을 추적했지만 러시아 측과 공조 실패로 용의자를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암살범들이 쿠알라룸푸르에서 가깝고 북한행 항공편도 많은 베이징·상하이·선양 대신 블라디보스토크를 최종 경유한 것은 향후 고려항공에 대해 단행될 제재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해 12월 고려항공을 독자 제재 대상에 올린 바 있다.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가 2013년 북한의 전승절(7월 27일) 열병식 때 군용기로 위장해 참여한 것과 UN이 금수물품으로 지정한 ‘스커드-B 미사일’ 부품 수출에 관여한 사실이 근거가 됐다. 또한 미국의 제재 대상 인사인 김정은 위원장이 고려항공 여객기를 전용기로 이용한다는 사실도 함께 적시됐다.

김정남 암살로 북한 고려항공이 주목받고 있다. 피살된 김정남은 개인적으로도 고려항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첫째부인 신정희는 김정남 본인은 부인했지만 그간 고려항공 사장의 딸로 알려졌었다. 또 마카오 타이파섬에서 동거한 것으로 알려진 셋째부인 서영란(서영라라는 설도 있음)은 고려항공 승무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항공은 1996년 마카오에 직항편을 띄우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역시 고려항공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취항하던 곳이었다.

고려항공은 북한의 국영항공사로 1955년 설립됐다. 조선인민군이 직접 관리하는 항공사로 원래 이름은 ‘조선민항(民航)’이었다. 1992년 고려항공으로 개명한 다음 1996년에야 비로소 IATA(국제항공운송협회)에 가입해 ‘JS’란 두 자릿수의 항공사 코드를 부여받았다. 영문명은 ‘에어고려(Air Koryo)’로 표기하는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비롯해 모두 10곳의 해외지사를 거느리고 있다. 중국에만 4곳(베이징·상하이·선양·단둥)의 지사를 두고 있다. 이 중 선양지사는 지난해 미국 정부가 ‘세컨더리 보이콧’을 단행한 랴오닝성 훙샹(鴻祥)그룹과 북한이 합작투자한 칠보산반점(호텔)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고려항공이 운항하는 국제 정기편 노선은 중국과 러시아가 전부다. 그중 가장 운항이 빈번한 곳은 중국이다. 평양~베이징, 평양~상하이(푸둥), 평양~선양 3곳의 정기노선에 취항하고 있다. 평양~베이징 구간은 월화목금토 주 5회, 평양~상하이, 평양~선양 구간에는 각각 주 2회씩 비행기를 띄우고 있다. 이는 고려항공 이용객 대다수가 중국 관광객인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고려항공 홈페이지에서는 평양~베이징 구간은 1680위안(약 27만7000원), 평양~상하이 구간은 1840위안, 평양~선양 구간은 1140위안에 판매 중이다. 이 밖에 고려항공은 지난해 칭다오, 지난, 광저우 등지로 부정기편도 띄웠다.

4년 연속 1성급 항공사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김정은 위원장은 정권을 승계한 후, 고려항공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였다. 2013년 영국의 항공서비스평가기관인 스카이트랙스(Skytrax)가 세계 600여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 평가에서 고려항공만 유일하게 최하등급인 ‘1성(星)급’ 항공사로 선정된 것이 큰 충격을 줬다는 후문이다.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유니폼 교체가 시작이 됐다. 당시 지시로 상하의 투박한 붉은색이던 스튜어디스 유니폼은 세련된 감색으로 바뀌었다. 무릎을 살짝 가리던 치마 밑단은 무릎 위로 올라오고, 상의는 여승무원들의 목선이 드러나는 U자 형태로 바뀌었다. 같은해 교체된 중국동방항공의 스튜어디스 유니폼과 유사한 색상과 느낌이다. 빈약하기 짝이 없던 기내식의 품질도 좋아졌다.

또한 2015년에는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에 맞춰 고려항공 허브로 쓰이는 평양 순안공항 제2청사를 개장하는 등 대대적인 시설개선에도 나섰다. 제2청사는 기존 제1청사의 7배 크기로 알려져 있다. 1청사는 국내선, 2청사는 국제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선은 함경북도 청진의 어랑공항에 취항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항공은 취항 도시가 네 곳에 불과하고, 항공기 주종이 구(舊)소련제 노후 기종이라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 고려항공 최악의 항공사고로 기록된 여객기도 구소련제 일류신이었다. 고려항공의 전신인 조선민항 시절인 1983년, 평양에서 아프리카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로 향하던 조선민항 소속 ‘일류신 IL-62’ 여객기가 산과 충돌 후 추락한 사고였다. 당시 사고로 기내에 탑승했던 23명이 전원 사망했다. ‘일류신 IL-62’는 구소련에서 생산한 제트엔진 4개를 단 장거리 여객기로, 김정은 전용기로 사용하는 기종이다. 김정은 전용기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조선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대남담당비서 3인방이 방한했을 때 인천공항에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보잉이나 에어버스 항공기를 구입하는 데 제한이 있어 고려항공이 현재 보유한 항공기 역시 러시아제 투폴레프와 우크라이나제 안토노프 기종이다. 북한을 비롯한 옛 사회주의 국가에서 애용하는 항공기다. 고려항공은 가장 운항이 빈번한 평양 순안공항~베이징 수도(首都)공항 구간에도 투폴레프 TU-204, 안토노프 AN-148을 번갈아 투입하고 있다. 고려항공의 정기 해외노선 중 가장 장거리인 2시간20분 거리의 평양~상하이 구간에 투입하는 기종도 투폴레프 TU-204다. 고려항공 소속 투폴레프 여객기는 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 때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간의 이미지 개선 노력에도 고려항공은 2016년 스카이트랙스 평가에서 재차 세계 유일 ‘1성급’ 항공사에 선정됐다. 2013년 첫 선정 이후 벌써 4년 연속이다. 참고로 2016년 평가에서 아시아나항공은 5성급, 대한항공은 4성급을 획득했다. 고려항공 현지 주재원이 김정남 암살에 개입한 사실로 고려항공의 1성급 항공사 불명예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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