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몽골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오른쪽).
지난해 11월 몽골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오른쪽).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의 본명은 라모 돈드럽, 법명은 텐진 갸초이다. 흔히들 달라이 라마를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를,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의미한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불교(라마교)의 수장이자 최고통치자인 법왕(法王)을 말한다. 라마교는 인도의 불교가 티베트의 토속종교와 융합된 종교다. 라마교는 불교 지도자의 환생을 믿는 것이 특징이며, 7세기 중반부터 만주·몽골·부탄·네팔 등에 널리 전파됐다. 몽골의 초원을 통일하고 중국까지 완전히 정복해 원나라를 세운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세조·1215~1294)은 13세기 라마교를 국교로 삼았다. 이후 라마교는 몽골에서 수백 개가 넘는 사원들이 세워지는 등 20세기 초까지 각 가정에서 남자아이 1명을 승려로 출가시킬 정도로 번성했다. 지금도 몽골 전체 국민 300만여명의 90%가 라마교를 신봉하고 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몽골의 최대 라마교 사원인 간단사가 세워져 있고 많은 신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도 몽골을 방문할 때면 이곳에서 열린 대규모 법회에 참석해 설법하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지금까지 몽골을 9차례 방문했었다.

다시는 몽골 땅 못 밟게 된 달라이 라마

하지만 달라이 라마 14세는 다시는 몽골 땅을 밟지 못하게 됐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몽골 정부가 달라이 라마 14세의 입국을 영구 금지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1일까지 몽골을 방문해 간단사와 대형체육관 등에서 대중 강연을 갖고 몽골의 승려들과 청년대표들을 만나는 등 종교 활동을 벌였다. 이에 분노한 중국 정부는 몽골에 강력한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중국 정부는 1951년 티베트를 강제 점령해 자국 영토에 편입시킨 후 시짱자치구를 세우고 지금까지 통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티베트 주민들의 종교 자유를 억압하고 언어를 비롯한 문화를 말살하는가 하면, 경제적 차별과 환경 파괴 등 ‘티베트 지우기’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특히 중국 정부는 티베트 주민들의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해왔다. 중국의 핍박을 피해 1959년 인도로 피신한 달라이 라마 14세는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우고 티베트인들의 희망이자 구원의 상징으로 재임해왔다.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 14세는 각국을 오가면서 비폭력주의를 주창하며 티베트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 14세를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 14세를 초청하는 국가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보복조치를 취해왔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자국 땅이기 때문에 티베트의 독립을 거론하거나 그런 활동을 하는 달라이 라마 14세를 만나는 것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중국의 핵심 이익은 영토주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티베트, 신장위구르, 대만, 남중국해 등을 말한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국제적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경제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몽골에 대한 치졸한 보복

실제로 중국 정부가 인구나 국내총생산(GDP)에서 소국(小國)인 몽골에 가한 보복조치를 보면 경제대국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치졸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 정부는 몽골과의 철도 건설, 광산 개발 등 금융 및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회담 등을 무기연기하고 국경을 통과하는 차량마다 통관비를 징수하고 광산에 전기를 끊었다. 내륙 국가인 몽골은 남쪽으로 4700㎞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특히 몽골의 입장에선 자원을 수출하려면 중국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은 그동안 동북지방의 항구를 개방해 항구가 없는 몽골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만약 중국이 항구 사용을 취소하면 몽골은 자원을 수출할 수 없다. 중국은 또 매년 석탄 수입량의 10%에 해당하는 3000만t을 몽골에서 수입해왔다. 중국이 수입을 중단할 경우 몽골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표적인 자원 수출 국가인 몽골은 최근 들어 원자재값 하락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결국 몽골 정부는 두 손을 들고 중국 정부에 항복했다.

첸드 뭉흐어르길 몽골 외무장관은 지난 2월 19일 베이징을 방문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인하고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이며 다시는 달라이 라마 14세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백기를 든 몽골에 우호적인 대출을 제공하고 150억위안(2조550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연장하는 등 큼직한 ‘선물 보따리’를 주었다.

노르웨이는 세계 최대 연어 생산·수출국이다. 특히 노르웨이는 중국에 연어를 대규모로 수출해왔다. 그런데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2010년 10월 8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중국 반체제 인사이자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劉曉波)를 선정하자 중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천안문사건으로 투옥된 경험이 있는 류는 2008년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08헌장’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009년 ‘국가정권 전복선동죄’가 적용돼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08헌장은 유엔 인권 선언 60주년인 2008년 12월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이 인권 개선과 공산당 일당독재 종식, 언론 자유 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 개혁 선언문을 말한다.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에 대해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했다. 중국 정부는 수산업 장관 회담 등 각종 고위급 회담을 취소했다. 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동결시켰으며 노르웨이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도 대폭 강화했다. 중국 정부의 보복은 노르웨이산 연어로 향했다. 당시 중국은 세계 8위의 연어 수입국이었다. 더구나 중국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연어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로부터 연어 수입을 특별검사 등 각종 이유를 들어 제한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산 연어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0년 92%였지만 최근에는 30%까지 내려갔다. 노벨위원회는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본부가 있지만,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독립된 단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노르웨이에 보복조치를 가한 것은 자국의 정치 체제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결국 6년 만에 중국 정부에 굴복했다. 뵈르게 브렌데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지난해 12월 19일 중국을 방문해 리커창 총리와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고 양국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브렌데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노르웨이는 6년 전 노벨상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중국의 핵심이익을 훼손하는 행동을 지지하지 않으며 장차 양자 관계에 미칠 손실을 피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각종 고위급 회담을 비롯해 FTA 협상을 재개하고 경제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자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린 노르웨이가 깊은 반성을 했기 때문에 양국관계 정상화가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노르웨이는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했다”면서 “중국은 핵심이익에 관한 문제에선 다른 나라들이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을 설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의 이런 보도 내용은 노르웨이뿐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노르웨이 출신의 슈타인 링엔 영국 옥스퍼드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인권보호에 앞장서는 국가로 자부했던 노르웨이의 ‘굴욕’이라고 표현했다. 링엔 교수는 중국의 메시지는 “우리와 사업하길 바란다면 우리에게 굽실거리고 우리가 정하는 국익, 우리가 보는 역사와 국제관계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photo 필리핀 스타지
지난해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photo 필리핀 스타지

연어 수입 중지로 노르웨이도 굴복시켜

상투메프린시페는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섬나라다. 상투메와 프린시페라는 두 개의 섬으로 돼 있는데, 면적은 1000㎢, 인구는 18만30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1975년 독립했다. 상투메프린시페는 지난해 12월 26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이에 따라 대만이 수교한 국가는 21개국으로 줄게 됐다.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다른 나라에 수교의 필수조건으로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해왔다. 중국 정부가 느닷없이 상투메프린시페와 수교한 것은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하나의 중국’ 원칙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중국 정부의 의도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독립을 지향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에 대해서도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세계에는 ‘하나의 중국’만 존재하며 대만은 중국 영토 불가분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상투메프린시페에 수교의 대가로 대규모 자금 지원을 약속했을 것이 분명하다. 상투메프린시페가 대만에 단교하지 않는 대가로 2억1000만달러를 요구했던 것으로 볼 때 중국 정부는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원하겠다고 회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레 파트리스 트로바다 상투메프린시페 대통령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라며 “정부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차이나머니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대만은 나이지리아와의 관계에서도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나이지리아가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면서 수도 아부자에 위치한 대만 대표부인 ‘중화민국상무대표단(中華民國商務代表團)’을 상업도시인 라고스로 옮기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는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대표부가 설치되어 사실상 외교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최근 중국으로부터 40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약속받았다.

국익을 위해 경제력 마구 휘둘러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국익에 반기를 드는 국가들을 보복하거나 회유해 굴복시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에도 비슷한 압박이 중국으로부터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밍장 싱가포르 난양기술대 교수는 “중국은 정치·외교적 목적으로 경제력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선진국을 비롯해 상당수 국가들이 이 때문에 인권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로시타 델리오스 호주 본드대 외교학 교수도 “중국이 최근 들어 외교적 목표 달성을 위해 전보다 더욱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레이엄 웹스터 미국 예일대 중국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핵심이익에서 자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막대한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의 외교 전략을 이른바 ‘즈퍄오번(支票本·수표책·Checkbook) 외교’라고 지칭하며 앞으로 중국이 더욱 자주 이런 전략을 구사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은탄외교(銀彈外交)’라고도 불리는 ‘수표책 외교’는 말 그대로 자국의 국익을 위해 경제력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수표책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정부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240억달러에 상당하는 차관과 투자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것을 들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달리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사살하는 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외면했다. 중국은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베네수엘라 등 반미 국가들에 정기적으로 차관과 무상원조를 해주고 있다. 반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수표책’이 아닌 ‘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로버트 블랙윌과 제니퍼 해리스 미국 외교협회 연구원은 공동 저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War by Other Means)’에서 “중국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징벌적 조치뿐만 아니라 경제원조와 차관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수표책 외교가 만사형통은 아니다.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닥칠 경우, 자칫 금전으로 맺어진 외교관계가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게다가 상호 신뢰 구축과 소프트파워 확대를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보완하지 못할 경우 수표책 외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강요할 경우 상대국들이 내심으로 강하게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탕슈문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수표책 외교는 중국이 상대국에 현금을 계속 쥐여줄 수 있을 때까지만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중국이 경제력으로 다른 나라들을 벌주는 것은 국제사회의 반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최근 중국의 패권적인 행태를 볼 때 한 국가의 외교력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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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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