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전직 검찰총장과 대법원 판사를 지낸 사람이 ‘힘세고 돈 많은 사람 변호하겠다’며 법정에 나타나면 후배 검사들이 정말 소신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요. 후배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부담감 없이 판결할 수 있을까요. 후배 판·검사들이 법과 양심대로 수사하고 판결했다 해도 세상 사람들이 공정한 수사와 판결이었다고 과연 믿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이들이 변호사로 법정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법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큰 상처를 낸 것입니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뿐 아니라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와 비슷한 악습에 대해, 이제는 무엇이 공정한 사회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2월 27일 대한변호사협회장직을 퇴임한 하창우(63) 변호사가 꺼낸 말이다. 하창우 변호사는 지금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혼란이 결국 ‘법을 무시한 권력자들의 공정성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검찰과 법원에서 승승장구했던 전관과 대형로펌 출신들이 버티고 있는 법조계에서 30년간 변호사 한우물을 팠던 그는 2015년 한국 최대 변호사 단체 수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법조계에선 하 변호사의 대한변협 회장 당선을 ‘토종의 승리’라고 불렀다. 그 토종 변호사가 지난 2년간 대한변협을 이끌며 전직 검찰총장의 변호사 개업 신고를 반려시켰다. 또 검사평가제를 도입해 서슬 퍼런 검찰 권력을 견제하며 법조 권력의 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검찰과 변호사 업계의 개혁’을 말해온 2년의 임기를 마친 하 변호사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법조 사회 공정성 회복의 시작점이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대한변협 회장에서 물러나고 1주일이 지난 3월 6일, 하 변호사가 자신의 서초동 사무실에서 퇴임 후 처음으로 기자를 만났다. 하 변호사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법조인이나 정치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며 “그런 국민들이 지금 바라는 건 공정함”이라고 했다. 그동안 사회 곳곳에서 벌어져온 불공정함, 법을 무시한 채 기득권 지키기와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던 힘 있는 자들에 대한 실망이 지금 국민의 분노로 터져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신뢰 잃은 검찰의 구조적 문제

하 변호사와 주고받은 대화 중 강한 인상으로 남은 건 탄핵 정국 속에서 무기력했던 검찰과 법조계 문제다. 탄핵 정국은 하 변호사가 대한변협 회장으로 있던 때부터 시작됐다. 2만1000여명에 이르는 변호사들의 대표자였던 그에게 “막강한 권력기관이라는 검찰이 탄핵 정국 속에서 왜 그렇게 작아졌고 무기력했는지”를 물었다. 하 변호사는 “권력기관이지만 그들 위 더 강한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말했다.

“(탄핵 정국 초기부터) 권력 최상층에 있던 김기춘·우병우씨 수사에 대해, 검찰이 ‘소신껏 수사할 수 있을까’라는 중립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 의혹과 의심이 최순실 사태 속에서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느냐는 문제로 확산된 겁니다. 결국 검찰이 보여준 이런 모습이 특검이라는 별도의 수사기구까지 만들게 했지요. 이것이 국민에게 비쳐지고 있는 지금 검찰의 민낯입니다.”

하 변호사는 정치적 문제에 있어 늘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지 않다고 의심받아온 게 현실이라고 했다. ‘공정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이기에, 권력자와 정치적 문제에 얽힌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민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왜 이런 상황을 맞게 됐을까. 하 변호사는 우리 사법제도의 후진성과 권력자들의 기득권에 대한 강한 욕구가 원인이라고 했다. 법과 양심에 따른 검찰의 수사 의지를 억누르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결국 인사권의 문제입니다. 검찰총장을 누가 임명합니까. 대통령입니다. 검찰 총수의 인사권을 움켜쥔 청와대와, 그 대통령과 연결된 정치권력에 대해 검찰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을 검찰이 떨치지 못하는 구조의 핵심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 변호사는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권력자가 움켜쥐고 있는 인사권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일선 검사들의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장들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방안으로 ‘검사장 선출제’ 도입을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을 예로 들었다. “일본은 검찰총장의 권한이 크지 않습니다. 일본의 검사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국민들에 의해 뽑힌 ‘검사장’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깁니다. 그 명예는 일본 도쿄지검이 현직 총리를 구속시켰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또 권력으로부터 법과 양심, 공정성을 지켜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검찰이 일본처럼 신뢰받으려면 결국 청와대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한 가장 현실적 대안이 바로 국민이 검사장을 직접 선출하는 것입니다.”

검찰 인사권 놓지 않으려는 권력자들

그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검찰 지휘부라야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기득권 권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탄핵 정국과 최순실 사태 같은 정치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공정하지 못했다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아온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 변호사는 이런 대안이 있음에도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실질적 독립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지금 한국 검찰의 현실이라고 했다. 권력을 쥔 자, 또 그와 연결된 기득권층의 강한 저항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권력자들은 합리적 법 개정이 진행돼 검찰의 실질적 독립성과 공정성이 보장되면 언젠가 그 칼날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 두려움이 결국 권력자들의 강한 저항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하 변호사의 설명이다.

“검찰총장 등 검찰 핵심부에 대한 권력자의 인사권이 없어진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권력자의 부정부패를 향해 검찰이 언제든 화살을 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권력자가 두려워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자신이 기득권을 내려놓았을 때 자칫 자신을 향할 수 있는 칼날, 그리고 그 칼날에 응원을 보낼 국민의 목소리가 권력자의 두려움을 키우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잡고 있는 권력과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겠습니까.”

하 변호사는 검찰을 눈치보게 만드는 권력자의 기득권을 이제는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하 변호사는 이번 최순실 사건이 한국 사회를 갈등과 혼란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갈등과 혼란 속에서 우리가 고치고 반성해야 할 게 무엇이고, 또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됐다고 했다.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득권자들이 보여온 수많은 병폐들이 곪아터지며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 탄핵 정국 속에서 하창우 변호사는 ‘공정한 사회’를 말했다. 부당하고 불공정함에 지친 국민의 분노가 더 나은 대한민국과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점이자 힘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키워드

#인터뷰
조동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