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발(發) 나비효과’는 과연 있을까.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지나 5월 조기대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정치권이 현재 가장 주목하는 정치 이벤트는 3월 27일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 호남 경선이다. 이날 광주에선 민주당 호남지역 대의원 순회투표가 실시된다. 대의원들은 현장에서 후보들의 연설을 듣고 난 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진다. 이 현장 투표 결과와 이미 실시한 ARS 투표 결과 등을 합쳐 호남 경선 최종 승자가 발표된다.

‘호남 나비효과’라는 말이 정치권에 회자되는 이유는 이날 경선 결과가 2017 조기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변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호남의 선택이 민주당 내 경선 판도뿐 아니라 대선판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단 이날 승자는 민주당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당심(黨心)을 좌우하는 전통적인 텃밭이 호남일 뿐 아니라 호남 경선이 민주당 경선 레이스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50% 지지율을 달리는 제1당의 심장이라 불릴 만한 곳에서 누가 첫 승자가 되느냐에 따라 ‘대세론’이 굳어질 수도, 대선판 전체가 흔들리는 ‘이변’이 시작될 수도 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대세론’을 꺾으며 노풍(盧風)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광주 경선에서였다.

2017 민주당 경선은 3월 27일 호남권을 시작으로 29일 충청권, 31일 영남권, 4월 3일 수도권·강원·제주 현장 투표 순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권역별 순회 현장 투표 결과에, 3월 22일 치른 전국 동시 투표소 투표와, ARS 투표 결과가 합산돼 승자가 가려진다. 4월 3일 수도권 현장 투표에서 누계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최종 후보가 확정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4월 8일 현장 결선 투표에서 최종 후보를 가린다. 지난 3월 13일 등록을 마친 경선 후보들은 22일 전국 동시 투표소 투표 전까지 종편과 지상파 등을 통해 4차례의 TV토론회를 갖고 이와는 별도로 4차례의 권역별 TV토론도 갖는다. 유권자 누구라도 등록이 가능한 민주당 경선인단은 3월 12일부터 21일까지 2차 모집에 들어갔는데 최종 220만~250만명이 등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50만명은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경선인단의 2.3배에 달하는 숫자다.

대세론 유지냐, 이변의 시작이냐

전국 순회 경선 방식을 택한 이번 레이스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첫 승부처인 호남에서부터 타격을 받으면 대선판 전체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우선 ‘친문(親文) 패권’을 명분으로 삼는 제3지대론은 승부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워진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 여론의 관심을 빼앗기면서 동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민주당 경선이 대선의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또 다른 이유에서 민주당 호남 경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세론에 맞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꼽힌다. 특히 호남에서는 높은 지지로 안철수를 문재인 대항마로 꼽고 있다. 하지만 ‘연정(聯政)’을 주장하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호남에서부터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할 경우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에게는 어려움이 닥친다. 안희정 지사가 안철수 전 대표와의 양자대결에서 문재인 전 대표보다 득표율이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1~12일 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안철수 양자대결 결과는 45% 대 32%로 나온 반면, 안희정·안철수 양자대결은 50% 대 27%로 나왔다. 중도 확장성이 강한 안희정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될 경우 안철수 전 대표뿐 아니라 다른 제3 후보 역시 설 자리가 별로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안희정 캠프 역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호남 승부에 사력(死力)을 다하고 있고, 어느 정도 승산도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한 캠프 관계자는 “문재인 대세론이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서는 확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탄핵 이후는 좀 다를 것이다. 특히 정치의식이 높은 호남에서는 이전과 같은 흐름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호남 여론은 확실히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이제 정권교체 능선 50부는 넘었다고들 생각한다. 앞으로 관심은 누가 정권교체를 하느냐가 아니라 정권교체 후 누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낼 것이냐가 아닌가 싶다. 지긋지긋한 분열과 대립이 아닌 연정과 통합을 내건 안희정 지사에게 호남 여론이 쏠릴 수 있다고 우리가 보는 이유다. 이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다. 호남 여론은 지지율 50% 이상의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고 본다.”

안희정 “호남도 통합의 대통령 기대”

안희정 지사는 지난 3월 13일 경선 후보 등록을 하면서 새롭게 하나 되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세 가지 전략으로 대개혁, 대연정, 대통합을 제시하면서 “대연정만이 대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해법이며 사분오열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길”이라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열릴 TV토론 등에서도 민주당이 고립과 분열이 아닌 확장과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승남 전 의원을 비롯한 광주전남 전·현직 공직자, 정치인 60여명도 지난 3월 7일 광주시의회에서 안희정 지지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권교체의 의미를 넘어 통합과 협치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대개조의 시대적 과업을 이룩할 소신의 정치인은 안희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희정 지사가 강조해온 대통합과 대연정은 양날의 칼이다. 그의 개혁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오면서 호남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호남에서 그의 지지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한 ‘선한 의지’ 발언 이후 눈에 띄게 추락했다. 지난 2월 27~28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호남에서 한때 최고 21%를 넘어서며 문 전 대표를 위협하던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급락했다. 이 틈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리얼미터의 2월 27~28일 조사에서 이재명 시장의 호남 지지율은 13.8%를 기록하며 안희정 지사(9.1%)를 3위로 끌어내렸다. 이 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41.5%였다. 지난 3월 3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이 시장은 호남에서 15%로 치고올라가 8%에 그친 안 지사를 앞섰다.

이재명 캠프에서 특히 기대를 거는 건 실제 투표를 할 적극적 지지층에서 상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캠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선의 메커니즘은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적극적인 투표 참여의사를 가진 사람들의 의사와 행동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와는 결과가 다를 수 있다. 특히 우리는 문재인·안희정 지지층과 비교해 적극적 지지층이 두껍다.”

이러한 자신감은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3월 13일 발표한 민주당 경선 참여 의향층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68.7%)에 이어 이재명 시장(14.6%)이 2위를 차지했고 안희정 지사(13.0%)는 3위에 그쳤다.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와는 달리 2, 3위가 바뀐 것이다. 또 문재인 지지층과 이재명 지지층에서는 경선참여 의향자가 각각 64.1%와 54.7%로 과반을 넘은 반면, 안희정 지지층에서는 47.5%에 그쳤다. 박근혜 탄핵 직후인 지난 3월 12일 STI 여론조사에서도 대선 후보 지지도는 1위 문재인(32.6%), 2위 안희정(15.1%), 3위 안철수(12.3%), 4위 이재명(11.4%) 순으로 나타났지만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촛불집회 참여 경험자’만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는 문재인(47.6%), 이재명(18%), 안희정(10.9%) 순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캠프 측은 호남 경선에서 최소 2위를 자신하며, 이 목표가 실현될 경우 이변이 시작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캠프 관계자의 말이다. “지금까지 이재명 시장에 대한 가장 큰 회의는 ‘이재명으로 되겠느냐’였다. 하지만 호남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하면 그런 회의감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 이재명으로도 정권교체가 될 수 있다는 확신만 심어주면 그 다음은 우리가 상승세를 타면서 역전이 가능해진다. 시정(市政) 업적, 정책, 말솜씨 등 모든 면에서 다른 후보들을 앞설 자신이 있다.”

이재명 “투표 참여층서 우세, 이변 자신”

특히 이재명 후보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재 심판 결과를 사실상 부정하면서 친박 세력들과 재기를 모색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적폐세력 청산의 이유가 분명해지면서 대연정을 주장해온 안희정 지사보다는 적폐 청산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이재명 시장으로 민주당 지지층의 마음이 더 기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재명 시장은 지난 3월 1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에 승복하지 않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지지자를 규합하고 있다. 반성 없이 화해 없고, 청산 없이 통합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대세론을 이어오고 있는 문재인 후보 측은 두 후보의 추격에 대해 “이변은 없다”는 입장이다. 호남 민심의 흐름이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 그대로 문재인 쪽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캠프 쪽에서는 그동안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왔다. 캠프의 주요 자리가 거의 대부분 호남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핵심인 비서실장(임종석 전 의원), 종합상황실장(강기정 전 의원), 총괄본부장(송영길 의원)이 모두 호남 출신이고 총무본부장인 김영록 전 의원, 미디어본부장인 박광온 의원, 방송토론본부장을 맡은 신경민 의원도 출신지가 호남이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전윤철 전 감사원장도 전남 목포 출신이다. 한 캠프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 호남 차별론에 시달렸던 문재인 후보로서는 캠프 구성에서부터 호남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경선과 본선 모두 호남의 표심이 중요하다. 대선 레이스의 시작인 호남 경선에서부터 압도적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송영길 본부장도 “문 전 대표와 호남을 연결하고 보증하는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자신의 역할이 호남 민심을 붙잡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 본인 역시 그동안 틈만 나면 호남으로 달려가 민심을 붙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지난 2월 15일 여수엑스포 박람회장에서 열린 동서창조 포럼 간담회에서 “다시는 호남 홀대라든지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확실히 해나가겠다”고 강조하면서 ‘호남 총리론’을 역설하기도 했다.

문재인 “과반 자신, 호남 홀대 우려는 없다”

그의 이런 호남 구애는 이제 어느 정도 민심을 파고들었다는 것이 캠프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실제 그의 호남 지지율은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50%에 육박한다. 지난 3월 10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그의 호남 지지율은 45%로, 인천·경기(36%)나 부산·울산·경남(33%)보다 높았다. 한 캠프 관계자는 “문재인 후보에 유보 방점을 찍던 호남 홀대론은 이제 오해가 많이 가셨다. 호남 유권자 중 괜히 미워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문재인 캠프는 호남 경선에서 과반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고 전망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위원장 등 조직력에서 앞서고 있고 경쟁 후보에 비해 호남 지지율도 10%포인트 차로 높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득표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2위 후보와는 일단 20%포인트 이상 차를 목표로 하고 있다. 40% 전후를 차지하는 당내 비주류 표가 안희정·이재명 두 후보에게 쏠린다고 해도 과반 득표가 어렵지 않다는 판단이다. 특히 문 후보 측은 호남에서 대세론을 위협하던 안희정 바람이 일단 수그러진 것에 안도하고 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호남 민심은 뭐라 해도 개혁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느냐를 중시한다.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 대통합론은 거부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문재인 후보가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5년으로도 부족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 호남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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