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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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 오전 자유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황 대행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는 이날 예정에 없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소집했다. 비대위원들과 일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1시로 예정된 비대위에서 당내 대선후보 선출규정인 이른바 ‘경선룰’ 논란을 종식시킬 계획이었다. 그러자면 황 대행 대선 출마 여부가 결정되어야 했다. 이에 앞서 당 지도부는 황 대행에게 이날 오전 중으로 대선 출마 여부를 확정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당 지도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재에서 인용된 지난 3월 10일 직후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룰을 마련했다. 3월 18일 1차 경선을 거쳐 본경선에 참여할 3명의 후보를 확정 짓겠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황 대행의 경선 참여를 의식해서인지, 한국당은 특례조항을 끼워넣었다. 후발주자의 경우 예비경선을 거치지 않고 본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게다가 사실상 여론조사에 의해 대선주자를 선출하도록 해 황 대행을 위한 경선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그 결과 이인제 전 의원, 김문수 전 지사,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일부 대선 출마자들이 강력 반발하며 경선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황 대행을 위한 경선 규정에도 불구하고 만약 황 대행이 불출마할 경우 당내 경선마저 엉망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 지도부가 경선 등록 마지막날인 3월 15일을 황 대행 출마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건 이런 당내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출마 저울질한 황 대행

이날 오전 3·15의거 기념식 참석차 경남 창원을 방문한 황 대행은 전용기를 타고 서울로 상경하며 오후 2시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아침까지 임시 국무회의 일정은 잡혀 있지 않았다. 일부 총리실 관계자는 국무회의 소집 소식을 언론 보도로 접하고 부랴부랴 회의 준비에 착수했다.

오후 12시30분경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황 대행이 국무회의에서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힌다”는 소식을 출입기자들에게 전했다. 이날 스케줄로 미뤄 볼 때 황 대행이 대선 불출마를 최종 결심한 건 3월 15일 오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황 대행은 국무회의에서 “저의 대선 참여를 바라는 국민들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국정 안정과 공정한 대선 관리를 위해 출마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대선일은 5월 9일로 확정됐다.

황 대행의 출마 소식을 기다렸던 한국당 지도부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당은 황 대행을 문재인 후보에 맞설 보수 대항마로 내세우고 그 원심력을 통해 보수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정당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바람을 접어야 했다. 한국당 비대위는 이날 오후 1시 회의를 열고 지지율 1% 전후의 후보를 중심으로 당내 경선을 치르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은 경선 특례규정을 폐지하는 대신 일반인과 당원의 참여를 보강하는 경선안을 확정했다.

황 대행의 대선 출마 의지는 예상보다 강했던 것으로 얘기된다. 친박계와 한국당 지도부가 줄곧 황 대행의 대선 출마를 종용했고, 한때 출마할 수 있다는 얘기가 그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황 대행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여의도 일각에서는 연일 정치 현안 보고서를 작성해 황 대행 측에 전달하는 비선모임까지 등장했다. 황 대행의 팬클럽인 ‘황대만’(황교안대통령만들기)의 가입 회원 수도 급증했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 보자. “그동안 당내 유력 정치인과 지도부 일부 인사가 꾸준히 황 대행을 접촉해온 건 사실이다. 그 결과 (대선 출마) 의지를 갖고 있는 걸 확인했다. 욕먹을 각오로 황 대행을 위한 경선룰까지 만들었는데, 오늘 황 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본인은 이날 아침까지 출마 여부를 두고 고심한 것으로 안다.”

지지율 10%의 수혜자는 누구?

황교안 대행이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힘에 따라 그를 지지해온 보수 유권자들이 ‘황교안의 대안’으로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가 5·9 대선 초반 변수로 떠올랐다.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지난 3월 15일 발표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34.5%로 1위에 올랐고, 그 뒤를 이어 안희정 충남지사 15.3%,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11.3%, 황교안 대행 10.2%, 이재명 성남시장 9.6%, 홍준표 경남지사 3.3%, 유승민 의원 3% 순으로 나타났다. 황 대행의 지지율은 보수 성향 후보 가운데 1위(10% 전후)였다.

황 대행의 대선 불출마는 앞서 지난 2월 1일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례에서 보듯 새로운 인물의 부상에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 1월 말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15% 안팎이었다. 그가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상승하며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대선후보 지지율 2위로 부상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전 총장의 지지율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안희정에게 갔고, 문재인과 이재명에게도 일부 흡수됐다”고 분석했다.

황 대행은 보수 성향이 강한 국민의 지지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한국당 대선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난 3월 16일 MBN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 따르면 황교안 지지층 가운데 32%는 홍준표 지사에게, 14%는 안희정 충남지사, 11%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8%는 남경필 경기지사에게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 지지층이 문재인 지지로 옮겨간 건 1%에 불과했다.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리얼미터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가 37%로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안희정(16%), 안철수(12%), 이재명(10%), 홍준표(7%), 유승민(4%)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당 소속 홍준표 경남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가장 눈에 띈다. 홍 지사는 3월 1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이 컨벤션 효과로 이어진다면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선출 경쟁에서 홍 지사가 우위를 점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 지사는 주간조선 2446호 인터뷰에서 “나는 우파 진영의 후보가 되고 싶다”면서 “지금 우파에 영남 대표성을 갖는 후보가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오는 3월 31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황교안 대행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수혜자로 손꼽히는 안철수 전 대표(왼쪽)와 홍준표 경남지사. ⓒphoto 뉴시스
황교안 대행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수혜자로 손꼽히는 안철수 전 대표(왼쪽)와 홍준표 경남지사. ⓒphoto 뉴시스

시장에서 주목받는 안철수 테마주

황 대행의 불출마 여파로 야당 일부 인사도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경우 황 대행 불출마 선언 직후 안랩 주가가 9%포인트 가까이 상승하며 이날 주식시장에서 화제가 됐다. 안철수 전 대표가 설립한 안랩의 주가는 3월 15일 주당 4800원이 오른 7만1800원에 장을 마쳤다. 다음날인 3월 16일에도 장중 5%포인트(3600원 상승) 이상 급등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안 전 대표가 황 대행 불출마에 따른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은 결국 안 전 대표가 반(反)문재인 진영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현재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에 있는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지사, 이재명 시장의 경우 모두 민주당 후보들이다.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문 전 대표의 승리가 유력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각 정당의 후보가 결정되는 4월 초에는 문재인 후보에 이어 2위를 달릴 경쟁자는 안철수 전 대표가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국민의당 경선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조선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초 조사한 국민의당 후보 적합도에서 안 전 대표는 44.2%를 얻어 8.9%를 얻는 데 그친 손학규 후보를 크게 앞섰다.

바른정당 유승민·남경필 후보의 경우 황교안 대행의 불출마에 따른 수혜를 입기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황 대행의 지지층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을 주도하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한 유승민·남경필 후보와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문재인의 대항마로 부상할 경우 대선 막바지에 바른정당 대선후보와 연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한국당 내 진박 세력이 정리되지 않는 한 후보단일화는 불가능하다.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국민의당과 당의 스탠스가 더 가깝다”고 인정했다.

일부 보수 성향의 정치분석가들은 황 대행을 지지해온 표심이 당분간 판단을 유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보수 성향 한 전략가는 “황 대행 지지기반은 수도권과 대구경북(TK)의 강경보수들이다. 이들은 문 전 대표를 꺾을 만한 후보가 등장하기 전까지 판단을 유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황 대행 불출마에 따라 5·9대선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었지만 선거 막판 후보단일화 변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문재인 대 반문재인의 1 대 1 구도로 대선이 치러지길 바라는 반문(反文) 세력의 바람이기도 하다. 바른정당 측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표가 경선에서 호남을 장악하는 데 실패하고 홍준표 지사가 10%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면 문재인 대 반문재인으로 프레임이 재편될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 남아 있는 유일한 변수는 이것뿐”이라고 말했다. 반문 진영 형성에 앞장서고 있는 김종인 전 대표가 안철수·홍준표·유승민 후보 등을 하나로 묶어낼지 여부도 이번 대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편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황 대행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보수 진영이 완패한다면, 보수의 전열을 가다듬을 새로운 인물로 황 대행이 부상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황 대행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보수 진영을 대표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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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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