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49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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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 박 전 대통령과 ‘삼성동 8인방’의 선택

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codel@chosun.com 

▲ 지난 3월 12일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photo 연합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지 91일 만이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5년 임기를 11개월가량 남기고 권좌에서 중도 하차한 박 전 대통령 앞에는 이제 검찰 수사가 기다리고 있다. 검찰이 그를 기소할 경우 앞으로 법원에서 재판도 받게 된다. 권력을 잃은 박 전 대통령은 이대로 계속 어둠의 터널로 떠밀려 갈까, 아니면 정치적 재기의 기회를 도모할 수 있을까.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 결정 이틀 만인 지난 3월 12일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헌재의 파면 결정 효력은 선고 즉시 발생한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3월 13일 퇴임)이 파면을 선고한 3월 10일 오전 11시21분,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잃으면서 법적으로 청와대에 머물 권리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곧바로 퇴거하지 않았다. 삼성동 집을 4년간 비워놓으면서 보일러가 고장 나는 등 손볼 곳이 적잖아 바로 퇴거할 형편이 안 됐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세간에선 ‘탄핵 기각’을 예상했던 박 전 대통령이 인용 결정에 충격을 받아 청와대 참모들이 퇴거 문제를 꺼내기 어려웠던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았다.
   
   3월 12일 오후 7시37분쯤 청와대 경호실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삼성동 자택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예상만큼 어둡진 않았다. 이날 오전부터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날 것이란 소식이 박사모 등 지지자들 사이에 돌면서 삼성동 집 주변엔 박 전 대통령 도착 전부터 지지자 1000여명이 모였다. 헌재 심판 과정에서 매주 토요일 서울 도심 등지에서 열린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도착하자 ‘박근혜!’ ‘탄핵 무효!’ 등을 외치며 환영했다.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허태열·이병기·이원종 등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자유한국당의 서청원·최경환·윤상현·조원진·박대출·김진태·이우현·민경욱 등 친박계 의원 등도 나와 박 전 대통령을 마중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택 도착 후 민경욱 의원을 통해 짧은 메시지를 내놓았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헌재 탄핵 결정 이후 참모들에게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하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의 첫 메시지를 놓고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친박 의원들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말에 다 담긴 것 아니냐”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법정 투쟁이나 사실상의 정치 재개를 통해 명예회복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 삼성동 복귀 이튿날 친박 진영이 정치 세력화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일부 친박계 의원이 이날 “8명의 (친박계) 의원들이 정무·법률·수행·대변인 등을 분야별로 맡아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로 했다”고 말해 “2012년 대선 전에 운영되던 ‘삼성동팀’이 다른 형태로 재가동되는 것이냐”는 관측도 나왔다. 서청원·최경환·윤상현·조원진·이우현·김진태·박대출·민경욱 등 8명이 자택으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을 마중한 뒤 따로 모여서 정무·법률·공보 분야 등에서 박 전 대통령을 돕기로 했다고 복수의 의원이 전하면서다. 이런 소식이 보도되자 해당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을 인간적인 도리 차원에서 돕겠다는 것일 뿐 조직적으로 뭘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이 정치 재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시 세력화·조직화에 나서려 한다”는 등의 해석이 나왔다.
   
   
   친박계가 다시 움직이는 배경
   
   작년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친박 의원들도 정치적 폐족(廢族) 위기에 몰렸다. 최순실 국정농단 세력이란 공격을 받으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이런 가운데 친박 핵심으로 꼽히는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은 지난 1월 친박 계파 활동을 주도해 당 분란을 야기했다는 이유 등으로 당원권 정지의 징계를 받으며 당내 활동에서 발이 묶였다.
   
   그런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의 자택 복귀를 계기로 ‘다시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이유는 대구·경북(TK 지역)과 ‘태극기집회’ 세력 등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이 여전히 견고하게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대구매일신문과 TBC가 탄핵 결정 직후인 3월 11~12일 TK 지역 주민 1366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헌재의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1.4%로 나타났다. 당 관계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친박 ‘태극기 세력’과 TK 지지층을 묶어 재기를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지층을 결집해 앞으로 있을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나아가 대선 과정에서 일정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효과도 노린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과 TK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지지층을 기반 삼아 대선 국면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 활로 모색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 친박 핵심 인사들은 작년 연말부터 물밑에서 활로를 모색해왔다. 친박계는 최순실 사태로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될 때까지 손 한번 못 써보고 밀렸다. 하지만 이후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가 확대되면서 김진태·조원진·윤상현·이우현 의원 등은 이 집회에 참석해 탄핵 반대를 적극 주장했다. 또 친박 핵심 인사들이 수시로 회동하거나 전화를 주고받으며 탄핵 결정 이후 정치적 진로 문제를 상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 중진 의원은 “친박계가 이대로 소멸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공감대가 있다”며 “대선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을 단단히 묶어 일정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라며 “대선에서 보수 진영의 독자 승리가 어렵다면 친박계가 지지층을 단단히 묶어 대선 이후 정계 개편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대선 결과에 따라 있을 당 지도부 재편 때 친박계가 계파 차원에서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간접적인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친노처럼 폐족에서 부활?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당장 정치 재개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선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검찰이 곧바로 소환 조사 방침을 밝히며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나선 것이 걸림돌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3월 21일 검찰청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등과 관련해 받고 있는 혐의는 13가지. 검찰 주변에선 검찰이 수사 상황에 따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일부 지지층을 상대로 정치 재개로 비쳐질 수 있는 활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헌재 결정 승복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섣부르게 외부 활동에 나섰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그가 재판에 회부될 경우 상당 기간 법정 투쟁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 일각에선 과거 ‘폐족’을 자처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던 친노(親盧) 세력이 정치적으로 재기한 것을 들어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계도 반전의 계기를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친노와 친박계는 계파의 성격과 결집도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친노 정치인들의 경우 이념을 중심으로 뭉친 경우가 많았고, 진보 시민사회 진영과 네트워크 저변이 넓었다. 반면 친박계는 박 전 대통령 1인을 중심으로 그를 따르는 정치인들이 모인 경우라 결속도나 지지층 조직화 정도 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당 내의 친박계 의원은 50여명 정도로 분류된다.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56명이었다는 점이 근거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친박계에서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로 분류됐던 한 재선 의원은 “탄핵에 반대했다고 친박 핵심부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하는 건 아니다”라며 “강성 친박계는 10명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한국당 의원 93명 가운데 초·재선 의원이 72명에 달한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초·재선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부채감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노선을 통해 보수 정치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했다. 다른 한 재선 의원은 “정치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끝난 것 아니냐”며 “언제까지 박 전 대통령에 붙잡혀 있어야 하느냐”라고 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등 한국당 지도부가 헌재 결정 불복 움직임 등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온 것도 의원들의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다.
   
   
   범보수 재편 과정서 운명 갈릴 듯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 15일 대선 불출마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친박계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황 권한대행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와중에 범보수 대선주자군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정치권에선 그가 출마하더라도 독자 힘으로 당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15%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해온 그가 박 전 대통령에 동정적인 보수 지지층을 묶어두는 효과는 있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친박 관계자는 “황 권한대행을 저수지 삼아 재기를 모색하기는 어려워졌다”고 했다. 황 권한대행의 불출마로 그를 지지하던 유권자는 흩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의 홍준표 경남지사나 중도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등에게 이동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들은 친박계에 비판적인 인사들이란 점에서 대선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계의 입지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한국당 지도부는 오는 5월 9일 치러지는 대선에서 개헌 연대 등을 고리로 ‘반(反)문재인’ 연대에 참여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일차적으론 탄핵 찬성파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해 만든 바른정당과의 연대를 우선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한국당이 연대 대상으로 고려하는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탄핵 책임이 있는 친박계와는 손 잡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한국당이 친박 색채를 빼지 않고는 반문 연대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국당 지도부는 몇몇 친박 핵심 의원의 탈당 등을 다시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72명에 이르는 한국당 초·재선 그룹 일각에서도 “친박계는 이번 대선에서 완전히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흐름 속에서 친박계는 당장 목소리를 높이진 않고 있다. 다만 물밑에선 “가뜩이나 보수 진영의 대선 전망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통합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안을 부심하고 있다. 한 친박계 인사는 “한국당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보수 대선주자들이 노골적으로 박 전 대통령 때리기에 나서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지지층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방패 삼아 대선 과정에서 불어닥칠 ‘친박 청산’ 파고를 넘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수층 내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도 약화할 가능성이 커 친박이 재기를 도모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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