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49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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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이 본 탄핵심판

“만장일치 인용은 예상 밖 결과 세계적 사건 판결 너무 서둘러”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발표된 지난 3월 10일. 남색 베레모를 눌러쓰고 검은 반무테 안경을 걸친 노신사가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출입구에 설치된 한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다. 당시 마이크를 잡은 기자는 그를 서울 부암동에 사는 방청객 이시윤씨라고만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1988년 출범한 헌법재판소의 초대 상임재판관으로 재직한, 현재 헌법재판관들의 대선배 격인 이시윤(82) 전 헌법재판관이다. 제11대 감사원장으로도 재직한 그가 쓴 저서 ‘민사소송법’은 사법시험 준비생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지난 3월 14일 오후 4시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을 서울 역삼동의 법무법인 대륙아주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대륙아주의 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대법전과 자신이 쓴 저서 ‘신(新)민사소송법’, 그리고 헌법재판소 변론 방청권을 가지고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그는 세 차례의 변론준비기일을 제외하고 17차례 열린 공개변론기일 중 10번을 참석해 직접 공개변론을 참관했다. 전직 재판관인 그에게 헌재 측이 제공한 방청권을 가지고 있어 횟수에 제한 없이 변론을 방청할 수 있었다.
   
   - 절차법의 대학자로서 이번 탄핵심판을 참관하신 소감이 궁금하다. “2월 27일 열린 최종변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날 변론이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장장 7시간 동안 열렸다. 우리나라 재판 사상 하루에 그렇게 오랫동안 공개변론이 진행된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대(大)변론에 소송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관을 했다는 것은 나에게 아주 큰 기회였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 방청만 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일 텐데. “공개변론이 이어지는 7시간 동안 중간에 딱 10분 쉬었다. 그동안 재판관들은 단 한 차례도 이석을 하지 않고 앉아 변론을 정시하더라. 그것은 놀라운 일이요, 기록해둘 만한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변호인석에 앉아 있던 변호사들은 부지런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더라.”
   
   - 국회의 탄핵심판청구가 8 대 0으로 인용됐다. 결과를 예상했나. “예상 밖이었다. 소수의견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재판관 세 명 내지 네 명은 소수의견(탄핵 인용 반대 의견)을 낼 줄 알았는데, 전원일치로 인용에 동참을 하더라. 예상 밖의 결과에 놀랐다.”
   
   - 왜 반대 의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나는 결정문에 이념 대결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 세 분은 소수의견을 낼 줄 알았다.”
   
   - 결정문에 이념 대결이 나타난다는 건 어떤 얘기인가. “나는 이번의 탄핵소추 사건을 우파정권 타도를 위한 좌파적인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 이유는 장외의 촛불집회가 장내에 들어와 결국 대통령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는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 타도, 퇴출 운동이고 이 집회에 일부 극단주의 세력이 섞여 이념적인 색채를 띤 것도 사실이다.”
   
   - 안창호 재판관이 결정문에 보충의견으로 “이 사건은 이념 문제가 아니다”라고 적었는데. “과거의 적폐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탄핵은 반드시 인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충의견으로 낸 것으로 안다. 안 재판관 견해대로 이 사건을 본다면 이번 결정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엄청날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의 하나의 큰 혁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적폐청산이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또 그런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 이번 탄핵심판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 “나는 이 사건이 단순히 박근혜라는 한 사람을 축출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우파정권의 도괴(倒壞)를 의미하는 사건이라고 본다. 국내적으로는 우파정권에서 좌파정권으로 선회하는 기점이 될 뿐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반도 주변의 4강(미국·일본·중국·러시아) 간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고 본다. 그 근거는 중국의 방송사들이 뉴스를 보도하다 갑자기 중단하고 속보로 한국의 탄핵심판 결과를 긴급보도했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이념적인 색채가 섞여 있는 사건인데, 거기에 이념적으로 좌파일 수 없는 세 분이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아 놀란 것이다.”
   
   - 결정문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평의나 평결 과정에서 재판관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을 수도 있다. 전직 헌법재판관으로서 이를 어떻게 보나. “아마 (의견 대립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재직했을 때 전교조 설립의 합헌 여부를 결정한 사건이나 국가보안법 사건의 고무찬양죄 합헌 여부를 결정한 사건의 경우가 재판관 사이에 이념 대결이 있었던 대표적 사건이다. 고무찬양죄 조항 사건의 경우 내가 주심이었는데, 재판관 중 두 분이 처음에는 전면합헌이라는 의견을 내셨다가 평의 과정에서 한정합헌 의견에 가담했다.”
   
   - 리더십의 공백이 우려된다고 결정문에 나왔는데. 재판관들이 시간에 많이 쫓긴 것 같다. “나는 결정이 너무 빨리 나왔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있지 않나. 브라질의 경우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소추당한 상황에서 테메르 부통령이 직무를 대행해 리우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번 탄핵 사건의 경우 법적으로 정해진 심리기간이 180일인데 약 80일 만에 선고가 나왔다. 변론종결 후 선고 시까지 보통 2주에서 4주가 걸리는데 11일 만에 선고를 했다는 것은 너무 빠르지 않았나 싶다.”
   
   -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물론 이 재판관의 퇴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동료 간의 의리를 고려했다고도 볼 여지가 있다. 이 재판관은 재직 시에 의견만 내고 선고는 이후에 해도 관여재판관으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국제적 대사건을 심리하는 데 신중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은 가능하다고 본다.”
   
   - 헌법재판관 사이에 직업적 동료로서의 의리가 끈끈한 편인가. “사실 그렇지는 않다. 우리 1기 때는 재판관 사이의 이념 대립이 심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심지어 재판관이 다른 재판관을 고발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 헌법재판관끼리는 모이지를 않는다.”
   
   -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다. “박 전 대통령은 마일드한 편이다. 브라질의 호세프 전 대통령은 탄핵 결정이 나자 ‘이건 의회 쿠데타’라고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심판 결과를 수용한다고 해서 좌우 이념 대립이 진정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 박 전 대통령이 승복 선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탄핵심판은 한판 승부다. 재심도 안 되고 불복도 안 된다. 재판을 세 번쯤 하고 계속 졌을 때 승복하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무리하지 않지만, 재론을 할 수 없는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으면 침묵할 자유 정도는 있다고 본다. 내가 헌법재판관에 재직하던 시절 ‘사죄광고를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위헌 결정한 적도 있다.”
   
   - 어려운 결정을 마친 후배 재판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재판관으로서 일생일대에 있을 수 없는 대사건을 다뤄왔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결정 주문은 좀 부드러웠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심판청구를 인용한다’는 정도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주문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건 내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시느라 그랬겠지만, 그런데까지 더 세심한 배려를 했으면 더 좋았을 뻔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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