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6일 열린 군 장성(대장급) 진급 및 보직신고식. ⓒphoto 뉴시스
2015년 9월 16일 열린 군 장성(대장급) 진급 및 보직신고식. ⓒphoto 뉴시스

“이런(군내 사조직) 일이 불거진 것에 매우 분노하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은 작심한 듯 평소에 보기 힘들 정도의 단호한 어조로 군내 사조직 ‘알자회’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알자회는 육사 34기부터 43기까지 기수별로 10명씩 120명으로 구성된 사조직이었지만 1992년 노출돼 해체된 뒤 회원들은 한동안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으며 상당수가 진급을 포기하고 영관장교로 전역했었다. 지난해 말 일부 언론은 ‘최순실 비선을 활용한 군 인사개입 관련 의혹 보고’란 제목의 문건에 알자회 세력화 동향 등이 나와 있다고 보도했다.

한 장관은 이에 대해 “25년 전에 조치를 취해 유명무실해진 것을 최근 국내 상황이 혼란기라는 데 주목해 다시 부각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몇몇 장군급 장교들이 이런 제보를 모측에 하고 그런 데서 문건이 만들어지고 하는 것이 우리 장병들에게 정신적으로 못할 짓을 하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장관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문건 등에 대해 “그 진위를 정확하게 확인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이날 간담회의 상당 시간을 알자회 문제를 해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만큼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알자회 출신으로 군내 핵심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내 알자회 출신은 임호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사 38기·대장), 조현천 기무사령관(육사 38기·중장), 장경석 항공작전사령관(육사 39기·중장), 조종설 특전사령관(육사 41기·중장),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육사 41기·소장)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특전사령관과 국방부 정책기획관, 12사단장 등은 알자회 출신끼리 대물림한 정황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알자회 출신들이 이미 진급에서 한두 차례 불이익을 받았고, 알자회원 120명 중 장군으로 진급한 사람이 11명인데 이는 육사 출신 평균 장군 진급률과 비교해 봤을 때 오히려 낮은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 일부 요직에 알자회 출신들이 임명된 것도 능력에 따라 발탁한 것이며 과거 강력한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회의 경우 대통령부터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 기무사령관 등 군 안팎의 요직을 독차지하다시피 했었다.

최순실·우병우 군 인사 개입설의 진실

이와 함께 정치권 일각과 일부 언론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군 장성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군 일각, 특히 진급을 앞둔 일부 장교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영관장교는 “알자회원들이 일부 요직에 대해 대물림을 했다거나 최순실·우병우의 군 인사 개입설에 대해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장교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고 5월 9일 조기대선 실시가 결정됨에 따라 군내 관심은 대선 직후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군 수뇌부 및 후속 장성 인사에 쏠리고 있다. 군 수뇌부 중 이순진 합참의장과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은 2015년 9월에, 엄현성 해군참모총장은 지난해 9월에 각각 취임했다. 군 수뇌부 임기는 2년이지만 1년6개월 만에 교체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오는 5월이면 이 합참의장과 장 육군총장 등은 재임 1년6개월이 넘기 때문에 이들 수뇌부 인사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보통 군 수뇌부 물갈이 인사를 단행해왔으며 재임 1년밖에 안 된 수뇌부를 교체한 적도 있다.

군내에선 이번 군 수뇌부 인사를 통해 인사적체로 복잡하게 얽힌 육사 38기와 39기 진급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되길 기대하고 있다. 육사 38기는 지난해 9월 임호영 당시 합참 전략본부장이 처음으로 대장으로 진급하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임명됐다. 육사 38기에선 중장 5명이 추가 대장 진급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은 올 상반기 중 진급하지 않으면 대부분 전역해야 한다. 중장의 계급정년은 4년이지만 인사적체를 막기 위해 보통 3년 내에 대장 진급이 되지 않으면 옷을 벗도록 해왔다. 문제는 육사 39기 중장들도 올해 말까지 대장 진급을 하지 못하면 대부분 전역해야 한다는 점이다. 육사 기수별 진급 시기가 조금씩 늦어지다 보니 육사 38기와 39기가 동시에 경합을 벌이게 된 것이다. 때문에 대선 이후 수뇌부 인사가 단행될 때 육사 38기와 39기 2~3명이 함께 대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육군 야전군사령관 3명 중 누가 육군참모총장이 될지도 관심사다. 현재 전방지역을 담당하는 1·3군 사령관과 후방지역을 담당하는 제2작전사령관은 모두 육사 37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 동기로 유명한 육사 37기는 매우 이례적으로 8명이나 되는 중장을 배출했고 이 중 3명이 대장으로 진급해 야전군사령관으로 있다. 육사 37기의 대장 진급 때엔 신원식 전 합참차장,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등 선두주자 3명이 모두 배제돼 논란이 됐다. 이들 중 이재수 전 사령관은 박지만씨와 아주 가까워 최순실 측의 견제로 낙마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현 야전군사령관 중 한 명은 대장 진급 뒤 모교를 방문했을 때 헬기를 타고 학교 운동장에 내리는 구시대적 행태로 물의를 빚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관계자들은 현 정부의 군 인사에서 참신한 발탁도 있었지만 일부 문제가 있었던 사례가 다음 정부에서 되풀이돼선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9월 전역한 김현집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사 36기)의 경우가 그런 예로 꼽힌다. 2015년 9월 당시 육군 대장급 중 가장 역량이 뛰어나고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평가받았던 김 전 사령관은 군 수뇌부 인사 때 합참의장 진출이 기대됐었지만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임명됐고, 취임 이후에도 군내 역학관계 때문에 1년 만에 전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훈 해병대사령관의 임기가 4월 중순 끝남에 따라 후속 인사 여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사단장·군단장 등 군 중·소장급 장성 정기인사는 매년 4월에 단행해왔지만 수뇌부 인사가 예상됨에 따라 수뇌부 인사 후 6월쯤 사단장·군단장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군 소식통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한민구 장관은 법적으로 임기연장이 어렵거나 대북 전투준비 태세에 심각한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어 꼭 인사를 단행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고위급 장성 인사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