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신 개인블로그인 ‘전도된 흑백’에 올라온 사드 개념도.
웨이신 개인블로그인 ‘전도된 흑백’에 올라온 사드 개념도.

중국 인터넷상에서 ‘사드 위기의 5대 의혹’이란 글이 화제다. 주한(駐韓)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전후로 중국의 한국에 대한 파상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의 사드에 대한 오해를 논박하고 이성적 대응을 촉구하는 글이라 눈길을 끈다. 한국의 사드 도입에 관해 중국인들이 주로 범하는 오해를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눠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동아시아의 최대 안보 위협은 사드가 아닌 조선(북한)의 핵폭탄과 미사일 위협”이란 것을 분명히 밝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글 전체적으로 중국의 파상공세 이후 코너에 몰린 한국 정부와 롯데 등 한국 기업의 입장을 상당 부분 대변하고 있다. 중국의 파상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 설명보다 훨씬 더 명쾌하고 시원해 한국의 외교가와 학계에서도 반향이 크다.

지난 3월 3일 작성돼 바이두(百度)와 소후(搜狐)를 비롯한 중국 인터넷상에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는 이 글의 출처는 웨이신(微信) 개인블로그인 ‘전도된 흑백(顚倒的黑白)’이고, 필자는 ‘레이거(雷歌)’다. 중국에서는 집권 공산당이나 정부 입장에 반하는 민감한 정치나 군사 관련 글을 작성할 때 흔히 필명(筆名)을 사용한다. ‘레이거’ 역시 이 같은 필명으로 보인다.

또한 이 글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풍자하는 뜻으로 흔히 사용하는 ‘싼팡(三胖·셋째 뚱뚱이)’이나 지적으로 저능한 사람을 풍자하는 ‘나오찬(腦殘)’ 등 중국의 젊은 네티즌들이 즐겨 사용하는 유행어나 비속어도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어 한국 사정을 잘 아는 중국 현지인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글은 요즘 중국 네티즌들의 북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상당 부분 공유한다. 필자는 북한을 지목하면서 ‘삼대세습의 김가왕조(世傳三代的金家王朝)’,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싼팡’ ‘전쟁 미치광이(戰爭狂人)’라고 지목하는 등 거침이 없다. 반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해를 보여준다. 이런 식이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경제가 도약했다. 20년 전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다. 10여년간 백성들의 생활은 풍족했다. 한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나?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분가(分家)한 이웃 형제인 조선(북한을 지칭)이다. 조선이 (한국을) 때리고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수십 년간의 경제성장이 전쟁통에 가루로 변해 날아가버리고 전화 속에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필자는 중국 정부가 앞세우는 ‘역내 전략적 균형 파괴’ 등의 논리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지적한다. “한국이 자국 영토에 사드 방어체계를 배치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그들의 주권(主權)이다.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린다’고들 얘기하는데, 한국의 각도에서 보면 무슨 전략적 균형이 있는가. 중국의 무력은 한국의 몇 배인지도 모를 정도다. 중국은 동풍(東風)미사일, 항공모함, 선진전투기, 게다가 동북(東北)지역에 지은 대형 전략 레이더까지 두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전략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결국 “한국은 중국과는 원한이라고 할 것이 없고, 고려하는 것은 단지 조선(북한)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필자는 한국의 자위적 조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난사군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때 중국 정부가 취했던 입장과 모순됨을 지적한다. “중국이 남해제도(난사군도를 말함)에서 군비를 확충할 때, 다른 국가들이 비판했다. 이때 중국 정부의 대답은 ‘내가 내 영토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였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한국은 왜 사드를 배치할 수 없다는 얘기냐. 그것도 조선(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이토록 현실로 다가왔는데?”

필자의 직업적 배경은 명확하지 않지만 사드와 주변국에 대한 상당한 군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방어용 무기인 사드가 공격용 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는 중국 측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심지어 이 같은 주장을 펴는 군사 ‘전문가(專家)’를 ‘돌팔이 전문가(磚家)’에 비유하기도 한다. 전문가(專家)와 돌팔이(磚家)는 중국어로 발음이 같다. “요격미사일은 가볍고, 속도가 빠르고, 폭약을 장착하지 않는다. 반면 개조하려면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미국에 숱하게 널린 것이 공격용 무기인데 굳이 공격하려면 이런 노력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드 레이더의 탐지거리가 최대 2000㎞에 달해 중국 동북(東北)지방과 화북(華北)지역 전역이 미국의 감시망에 놓인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러시아를 예로 들어 공박한다. “지난해 러시아가 중국 변경지대에 감시범위가 5000㎞에 달하는 첨단 레이더 시스템을 배치했다. 탐측범위가 사드를 훨씬 뛰어넘고 중국 전역을 덮는다. 파리 한 마리가 날아올라도 아주 또렷이 보인다는데도 중국은 한마디도 항의하지 않는다.”

필자는 한국의 현실적 위협요소인 북한을 도외시한 채 사드를 도입한 한국을 무턱대고 공격하는 사람을 ‘지적장애인’이란 뜻의 ‘나오찬’이란 말로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중국인들의 사드에 대한 과민반응은 북한을 ‘한 참호 안의 전우(一條戰壕里的戰友)’ ‘좁은 강물 하나를 사이에 둔 동지(一衣帶水的同志)’로, 미국은 ‘1호 적국’으로 보는 오랜 냉전적 사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중국인들이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불가피하게 경북 성주골프장을 사드부지 제공에 동의한 롯데를 비이성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수단은 대국(大國)의 신분에 맞지 않고, 종종 그 결과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이 의도한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실익이 없다고 주장한다. “사드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한국의 국가이익이 걸려 있는 것이다. 이미 피하기 어렵다. 중국과 한국의 결렬, 경제관계부터 외교관계까지 단절하는 것은 ‘적 800명을 죽이고, 스스로 1000명을 잃는 것(殺敵八百,自傷一千)’이다.” ‘적 800명’ 운운 부분은 손자병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는 ‘적 1000명을 죽이고, 스스로 800명을 잃는다’는 말로 쓰인다. 즉 중국의 손해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필자는 “중국의 경제가 현재 취약하다. 경제전쟁을 벌이는 것은 중국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필자가 한·중 관계 악화로 인한 최종 수혜자로 지목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북한의 김정은이다. “지금까지 이런 국면에서 승리자는 바로 조선(북한)이다. ‘싼팡’(김정은)이 보고자 했던 것이 바로 중·한 결렬, 중·미 대립이었다. 이래야 틈을 탈 기회가 생기고, 노래를 부를 무대가 주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위험이 어디 있고,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 사드 위기가 파국에 봉착한 근본원인이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는 올해 한·중 양국 모두 깊이 새겨볼 만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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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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