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6일 대구 동성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김진태 의원.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1월 26일 대구 동성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김진태 의원.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후보선거 비전대회’에서 첫 연설에 나선 후보는 김진태 의원이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러다가 박근혜 대통령 구속돼도 괜찮겠습니까, 여러분? 박근혜 대통령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다 잊어버리고 갈까요, 여러분?”

김진태 의원의 지지자들은 그가 ‘여러분’을 외칠 때마다 큰소리로 ‘김진태’를 연호하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김 의원은 5분 연설 시간이 초과돼 마이크가 꺼질 때까지 자신이 탄핵정국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입장을 보인 정치인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다음번에 배지를 다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고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이번 탄핵 사태 때는 또 어땠습니까. 촛불에 놀라서 다들 어디로 숨어버렸습니까.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거기에 대항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의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 결과에서 김진태 의원은 지지율 6.6%로 전체 대선주자 중 6위에 올랐다. 홍준표 경남도지사(7.7%)의 지지율에 바싹 다가간 수치였다. 특히 김 의원은 한국당 지지층에서 36.8%로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35.6%의 지지율을 기록한 홍 지사를 근소하게 제친 것이다.

재선에 불과한 김 의원이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의 유력한 후보로 나설 수 있게 된 원동력은 태극기집회다. 그의 연설처럼 처음부터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탄핵 반대를 외친 정치인은 김진태가 유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갈 길을 잃은 태극기가 김 의원의 주변에 몰린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탄핵정국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김진태 의원이 다가오는 19대 대선에서 보수의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꼽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막상 주변의 출마 권유를 받고도 본인도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대선 캠프도 꾸리지 못한 그는 출마 직전에 자신의 결심을 주변에 알리며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김진태 의원은 초선이던 19대 국회 때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침없이 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과거에 그를 알던 사람들은 ‘정치인 김진태’에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학 선후배로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이웃 지역구의 현역 의원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연수원 시절도 그렇고 검사 시절에도 그렇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놓고 주장하는 타입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진태 의원은 2009년 춘천지검 원주지청장을 마지막으로 검사를 그만뒀다. 그의 20년 검사 인생의 절반은 공안 수사를 담당했다. 그러나 공안 검사로서도 김 의원은 이념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를 겪어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았을 뿐 줄곧 현재의 정치인 김진태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2013년 8월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자유통일 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김진태 의원의 발언이다.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 노무현 정권 당시 과거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파견을 나갔다. 이때 좌파들이 어떻게든 이승만 잘못으로 발표하고 싶어 난리가 났는데 제가 여기에 맞서 사건 기록을 다 뒤져 봤다.”

김진태 의원의 한 측근은 “김진태는 공과 사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자신의 의견이 있었다 하더라도 공직에 몸담은 입장에서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며 2011년에 펴낸 책 ‘법대로 살까? 멋대로 살까?’를 보면 어떤 태도로 검사 생활에 임했는지가 나온다.

“검찰의 첫 번째 존재 이유는 체제 수호다. 부정부패 척결, 국법질서 확립 등 다른 존재 이유도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가장 큰 존재 이유다.”

그의 부친은 경북 성주 출신의 군인이었다. 6·25전쟁 당시 지리산 공비 토벌에 참가해 전과를 올려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춘천에서 북파공작원 부대장으로 근무했다. 외조부가 강원도 춘천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어머니 역시 교사 출신이다. 김 의원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활동무대인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춘천성수고 동창들에 따르면 김 의원은 어릴 적 리더십이 있는 친구였으며 골목대장 노릇도 곧잘 했다.

“순수하고 열정적”

서울대 법대 동창들은 그를 “얌전했던 친구”로 기억한다. 다른 친구들이 민주화 시위에 참석할 동안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이 대학 동기들의 기억이다. 한 동창은 “그 역시 친구들이 읽는 책을 함께 읽는 것을 봤지만 특별히 토론에 참여한다거나 하진 않았다”고 기억했다. 김 의원은 2013년 10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 시절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책에서 어지간히도 이승만 욕을 해댔었다.… 철들고 보니 ‘해전사’란 책은 좌파 학자들의 의식화 교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춘천에 공천됐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자신의 정치적 ‘은사’로 여기며 고마움을 자주 표했다. 그의 정치 입문 과정을 지켜본 한 보수 인사의 말이다. “정치인 김진태는 태생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참 한결같이 한길로 걸어온 정치인인 셈이다.”

그는 주로 SNS를 통해서 박 전 대통령과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발언을 했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그는 “보수 정치인이 국민들과 소통능력이 부족하다”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제대로 사용하는 의원이 많지 않아 내가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 김 의원과 같은 강원도 지역구 의원을 지낸 한기호 전 의원은 “장담하건대 김 의원의 발언과 행동은 순수한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들은 몸 사리고 눈치를 볼 때 김 의원은 ‘내가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꾸준히 실천해왔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것일 뿐 그는 오히려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다.”

김 의원의 측근 또한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다. “김진태 의원을 두 마디로 설명하자면 ‘순수한 의도’ ‘열정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이라면 고집이 있기 마련인데 김 의원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가 태극기집회를 처음부터 참석한 이유가 바로 ‘순수성’ 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한 친박 의원은 “태극기집회 참석은 그의 정치적 생명을 끝낼 수도 있었던 일인데 굴하지 않고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15일 국회에서 출마 선언을 하며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고 역사에서 진실을 밝히겠다” “분열된 애국보수를 재건하겠다”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겠다”라는 3가지 약속을 했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진실과 자유에 대한 투지만큼은 자신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포부다. 한 친박 의원은 “당의 화합과 통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편들지 말자는 게 서청원 전 대표를 비롯한 우리의 생각”이라면서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통할 것이라고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사의뢰기관:인터넷언론 데일리안

조사기관:알앤써치

조사기간:3월 19~21일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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