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제주공항 2층 서편 국제선 출국장.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28일 제주공항 2층 서편 국제선 출국장.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28일 제주공항 2층 서편 국제선 출국장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평소 같으면 오후 7시30분, 상하이 푸둥(浦東)공항으로 떠나는 중국동방항공 MU2544편 출발을 앞두고 쇼핑백을 짊어진 중국인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했을 시간이다.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전후로 단행된 중국의 관광 보복 조치로 제주공항 국제선은 개점휴업 상태다. 제주공항의 만성 포화 상태가 순식간에 해소된 듯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사가 지난 3월 26일 제주공항 하계 운항계획을 접수한 결과, 제주에 한때 취항한 적이 있는 8개 중국항공사가 4월 한 달간 취항 중단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중국의 4대 대형 항공사(FSC)에 속하는 중국국제항공, 중국남방항공, 하이난항공 등도 포함됐다. 지난해 제주~항저우 구간에 취항했던 하이난항공은 차기 대선이 예정된 5월이나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경부터 운항재개 계획을 밝힌 다른 항공사들과도 달리 아예 운항계획 자체를 접수하지 않았다. 유채꽃이 만발하는 제주 관광 최대 성수기인 4월을 맞아 중국 관광객에 크게 의존해온 제주에 미칠 충격파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우리 항공 당국은 뾰족한 맞대응 카드가 없어 고심 중이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사의 한 관계자는 “제주가 오픈스카이 지역이라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취항을 중단해도 별다른 페널티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중국의 관광 보복에 맞설 유력 대응카드 중 하나로 제주도 ‘오픈스카이’ 철회가 떠오른다. 제주 오픈스카이는 제주도가 입도(入島) 관광객 증대를 목적으로 1998년 일방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말 그대로 항공자유화 조치로 양국 항공 당국 간 항공협정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항공사가 취항횟수와 취항기종 등을 결정할 수 있다. 항공 경쟁력이 강한 측은 가격덤핑과 대형 항공기를 투입해 항로를 독점할 수 있어 선호한 반면, 항공 경쟁력이 약한 측에서는 조심스러웠다.

제주도는 이 같은 염려에도 불구하고 관광수입 증대를 목적으로 오픈스카이를 선포했다. 오픈스카이 결과 제주도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일정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오픈스카이 선포 이듬해인 1999년 24만여명에 그쳤던 제주도를 찾은 입도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360만여명으로 15배 급증했다. 특히 1999년 4만6247명에 그쳤던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306만여명으로 66배 이상 급증한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하지만 일방 오픈스카이에 따른 부작용 역시 심각하다. 특히 알짜노선으로 꼽히는 제주~중국 간 항로를 중국항공사가 독식했다. 거리가 가깝고 수요가 탄탄해 황금노선으로 꼽히는 제주~상하이(푸둥) 노선은 중국동방항공, 길상항공, 춘추항공 등 중국계 항공사가 독식했다. 이 구간에 취항하는 한국국적사는 진에어 한 곳이 전부다. 또 오픈스카이 덕분에 제주~중국 간 항로에는 중국국제항공, 중국남방항공, 중국동방항공 등 대형 항공사를 비롯해 하이난항공, 선전항공, 톈진항공, 샤먼항공, 쓰촨항공, 길상(吉祥)항공, 춘추항공, 오케이항공, 상붕항공(럭키에어), 수도항공 등 지역·저가항공사들마저 중구난방 취항하면서 ‘국제항공사’ 흉내를 내왔다. 제주~중국 노선은 안전성조차 의심되는 중국 저가항공사가 국제선을 띄우는 주요 노선이다.

반면 우리 국적기는 제주~상하이(푸둥) 같은 한·중 알짜노선에 마음대로 항공기를 투입할 수 없다. 중국이 자국의 하늘을 개방하지 않아서다. 제주공항을 모항으로 하는 제주항공의 경우 제주~중국 간 직항노선이 단 한 곳도 없다. 제주항공의 송경훈 홍보팀장은 “제주~중국 직항노선 운항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것”이라며 “운수권 신청을 해도 배분 자체가 안 됐고 다른 국적항공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형 항공사 중 아시아나항공도 제주~중국 간 직항노선이 한 곳도 없고, 대한항공은 제주~베이징 노선 한 개가 전부다. 그나마 구걸하다시피 배정받은 노선도 제주~췐저우(이스타항공), 제주~난닝(티웨이항공)으로 항공수요가 부족한 지방노선에 불과했는데, 사드 사태 여파로 모두 운항이 중단됐다.

일방 오픈스카이의 부작용

제주~중국 간 직항노선의 방만한 개설이 국가 항공산업의 골간인 인천공항의 동북아 허브화정책과 충돌하는 점도 문제다. 인천공항의 최대 경쟁력은 다양한 중국 노선이다. 중국의 저가항공사가 인천공항으로 더 몰려와야 중국 네트워크 경쟁력이 강화된다. 반면 제주도의 오픈스카이 정책으로 제주~중국 간 직항노선 개설이 무제한 허용되면서 인천공항으로 더 투입돼야 할 중국계 항공사가 제주도로 발길을 돌렸다. 인천공항이 아닌 제주공항이 대중(對中) 허브 역할을 하는 역전현상도 목격됐다. 인천공항을 거쳐 중국으로 가야 할 승객들이 제주공항을 거쳐 중국 저가항공편을 타고 중국에 입국하면서다.

하지만 제주공항은 허브 역할을 감당할 여건 자체가 안 된다. 24시간 운용이 안 되고 적정 여객처리 인원보다 많은 여행객으로 여객터미널은 만성 포화 상태다. 대당 수용인원이 적은 B737이나 A320급 중소형 항공기가 주력인 중국계 저가항공사가 활주로를 차지하는 통에 활주로도 미어터진다. 결국 오픈스카이를 철회할 경우 항공기 이착륙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제주공항의 포화 상태를 일시해소할 수 있다. 4조87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서귀포시 성산읍의 제2공항 건립도 재검토해 볼 여지가 생긴다.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온평리 일대는 ‘제2공항 반대’ 현수막으로 뒤덮인 지 오래다. 공항 건립과 진입도로 등 지원시설 건설이 예정대로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럽다.

중국 국적항공사들 역시 자국 정부의 한국 상품 취급중지 방침에 겉으로 호응하지만 속으로는 상당한 타격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은 807만명, 중국을 찾은 한국인은 444만명으로 각각 외국인 방문객 1위다. 중국 국적항공사들은 그간 저가 운임을 앞세워 한·중 양국의 관광객을 모두 쓸어담으면서 수익을 올려왔다. 지금은 자국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 탓에 1200만명의 항공시장이 송두리째 날아갔고, 텅 빈 비행기로 날아와 텅 빈 비행기가 되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제주 취항 중국항공사 중에는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산하의 국영항공사도 있다. 제주도가 오픈스카이를 철회할 경우 그간 쏠쏠하게 올린 수익선을 바꿔야 한다. 중국 항공사들은 한국 노선에서 추가타격을 감수해야 하고, 물밑에서 자국 정부에 한국여행금지 조치 철회를 요청할 일말의 가능성도 열린다.

제주로서는 1998년 선포한 오픈스카이 철회를 재검토할 절호의 기회다. 오픈스카이를 유지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사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전까지는 중국인 관광객을 볼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의 복잡성으로 최소 6개월에서 1년가량은 이상 국면의 해소 자체가 어렵다. 중국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올 때 오픈스카이를 철회하면 타격이 크겠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어차피 사라진 지금은 철회해 봤자 밑져야 본전이다. 오픈스카이 철회로 타격받는 국적항공사와 제3국 항공사는 사실상 전무하다. 밑져야 본전이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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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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