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52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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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 덜 미운 후보 미는 전략적 투표할까? 30년 만에 ‘심심한’ 선거 맞는 TK의 선택

이동관  매일신문 편집부국장 dkdk@msnet.co.kr 

▲ 지난 3월 18일 홍준표 경남지사가 대구 서문시장에서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골라 먹는 재미가 있을 정도로 메뉴가 다양할까? 선뜻 손이 가는 음식이 없는 김빠진 잔칫상일까?
   
   TK(대구·경북) 유권자들이 5·9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지역 출신 후보가 없는 것도 아닌데 표심이 방황 중이다. 협의로 보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1명, 광의로 보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까지 더해 2명이나 지역 출신이다. 게다가 이들 둘 다 보수를 대표한다고 나선 이들이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찍을 데가 없다”고 고민한다. 또 어떤 이들은 “찍어도 될 것 같지 않아 표를 주기가 주춤거려진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보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한국당 홍 후보와 바른정당 유 후보의 세(勢)가 선두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보다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거다. 하나로 합쳐도 게임이 안 될 것 같은데 갈라져 있으니 더 안 될 것 같다. 게다가 시간도 얼마 없는데. 그러니 표를 주려고 해도 되지도 않을 후보에게 표를 던져 결국 소중한 한 표를 사표(死票)로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들을 한다.
   
   그렇다고 앞서가는 후보들에게 표를 주려니 영 체질에 맞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더 그렇다. 동네 어디든 대선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문재인이 대통령 되는 건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TK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태극기집회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은 “아무나 돼도 상관없지만 문재인만은 안 된다”는 말까지 한다. 물론 문재인 후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TK 유권자들로부터 역대 민주당 후보들이 얻은 지지율(최고는 2002년 대선 노무현 후보의 20%, 김대중 후보는 1997년 13%)을 훨씬 상회하는 지지를 받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TK지역에서 1위를 한 적도 있다. 반면 확고한 반(反)문재인파도 두껍게 형성돼 있다. 전국적으로 1위를 기록 중이지만 TK에서 지지율이 제일 낮은 건 팩트다.
   
   
   아직 몰빵 대상 못 찾아
   
   지금과 같은 상황은 TK 유권자들이 생전 처음 겪는 일이다. 직선제 대통령선거가 도입된 이래 30년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다. 7번째 직선 대통령선거를 맞이하지만 이번처럼 대구·경북이 ‘심심한’ 선거를 하게 된 적은 없었다. 항상 몰표로 정권의 향배를 갈랐다고 자부해온 대구·경북이었는데, 이번에는 영 그럴 것 같지 않아 섭섭하고 허전하다고 한다.
   
   1987년 13대 대선부터 2012년 18대 대선까지 TK 표심은 늘 집단적으로 움직였다. 90%를 넘게 몰빵을 하는 호남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보수 우파를 상징하는 후보에게 절반이 훨씬 넘는 표를 몰아준 대구·경북이었다. 지역 출신이 없으면 차선을 택했다. 김영삼·이회창 후보처럼 될 것 같은 후보라면 차선에게도 표를 몰아주었다. 때문에 TK가 아니었다면 보수가 무너졌을 것이라며, TK표의 ‘존재 이유’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이곳 대구·경북 지역에는 많이 있다. 그래서 보수를 내건 후보들은 늘 대구·경북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TK에서 인정받지 못한 보수 후보는 보수의 대표선수가 될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TK가 움직이면 판이 바뀐다’는 말이 금과옥조였다. 과거에는 정말 그랬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양상이 영 딴판이다. TK는 아직 ‘몰빵’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가 ‘딱’이었을 텐데 아무래도 둘 다 너무 약하다. 두 후보 지지율을 합해도 15%가 안 되니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한숨을 쉴 만도 하다. 보수 후보 결집 현상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언제나 대선은 보수든 진보든 한쪽이 51%면 나머지는 49%라는 틀이 있다고들 하지만 이번에는 영 아닐 것 같다. 특히 TK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이야기가 실감이 나는 대선 구도다.
   
   그런데도 홍·유 두 후보는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보수 적자 논쟁이다. 후보 자격 공방이다. 선두권의 2강인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는 저만치 앞서 가는데 두 사람은 아직 제자리다. 표를 줄 데가 없어 고민하는 TK 유권자들은 이런 장면들을 보며 안타깝기만 하다.
   
   홍준표·유승민 두 후보 진영도 할 말은 있다. 상대방이 존재하는 한 말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안다. 보수의 대표선수가 돼야 TK를 먹고, 여세를 몰아 중도를 흡수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볼 텐데. 그래서 지금은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세는 홍 후보 쪽이 더 많다. TK 정치권 무게중심이 아직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 후보 진영은 보수 적통임을 강조하려다 ‘박근혜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형국이 돼버렸다. “홍준표 정부를 만드는 것이 박근혜를 살리는 길”이라고 해버렸다. TK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안타까워는 하지만 지지는 오래전에 철회했음을 간과한 것이다.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것도 흠이다. 결국 홍 후보는 보수 적자 논쟁에서 우위를 잡으려다 자기 발목을 잡아버린 격이 됐다.
   
   그렇다고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에 TK 보수의 주도권이 넘어간 것은 절대 아니다. 홍 후보에 비해 확실히 열세다. 박 전 대통령이 쳐놓은 ‘배신자 프레임’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몰락했는데도 박 전 대통령의 말은 여전히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논리로 설득이 되는 부분이 아니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의로운 보수, 개혁 보수를 내걸고는 있지만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홍 후보도, 유 후보도 TK표를 자기 쪽으로 확 몰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2012년보다 투표율 훨씬 낮을 듯
   
   그렇다면 남는 건 TK가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이다. 전략적 투표란 찍어주고 싶은 후보가 딱히 없을 때 지지 성향과 무관하게 될성부른 후보 밀어주기, 더 미운 후보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덜 미운 후보 찍어주기 같은 투표 성향이다. 지금 분위기 같으면 TK가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사표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는 늘 강해지는 법이다. 될성부른 후보와 더 미운 후보를 막아줄 덜 미운 후보가 일치한다면 금상첨화다. 표는 그곳으로 몰리게 돼 있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서 그 가능성을 엿보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이런 수치에 고무돼 SNS상에서 선전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안철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미워서라고 설명한다. TK에서는 문재인 대세론이 아니라 안철수 대망론이 뜨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아직 한 달. 속단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역대 선거에서 투표 30일 전이라면 TK 표심은 벌써 굳어진 상태였지만 이번만은 안 그렇다. 역대 선거에서 지금쯤이면 대구·경북 선거가 재미없어지고 난 뒤였다. 그래서인지 틈만 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구·경북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후보도 오고, 후보 부인도 온다. 보수는 보수의 적통을 잇는다고 오고, 진보는 박근혜 리더십이 비워놓은 자리를 메우겠다고 온다. 체면치레로 마지못해 오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각 후보 진영의 핵심 실세들도 발길이 잦다.
   
   5·9 대선에서 TK지역 투표율은 4년 전보다 많이 낮아질 것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입맛에 꼭 맞는 후보가 없어서일 것이다. 덜 미운 후보를 밀어주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고 해도 4년 전 ‘오매불망 박근혜’라고 하던 때의 80% 선에는 훨씬 못 미칠 것이다. “이번 선거는 재미없어 투표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7년 5·9 대선이 TK에는 ‘참 찐맛 없는 선거’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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